거제에 병선을 모으는 일과 구류한 왜사를 돌려보낼 지에 대해 의논하다
임금이 장차 낙천정에 나아가려고 견여(肩輿)가 이미 들어왔을 때에, 허조(許稠)를 불러 보니, 허조가 거제도에 병선(兵船)을 모으는 것이 부당함과 왜사(倭使)를 구류함이 불가하였다는 뜻을 극진히 말하고, 다시 일본에 사신을 보내어 정탐하기를 청하였다. 임금이 곧 낙천정에 나아가 상왕을 모시고 별실(別室)에 들어가, 우박(禹博)과 성달생·황상·원윤·박초·홍상직(洪尙直)·김점(金漸) 등을 전송하려고 두 임금이 친히 잔을 잡아 술을 주었다. 또 박은·이원·조연(趙涓)·조말생·허조·홍부(洪敷)·이명덕·원숙 등이 입시(入侍)하여, 차례로 술이 돌아가서 잔치가 벌어졌다. 상왕이 말생과 원숙을 먼저 불러서 명하기를,
"지금 수군 절제사를 보니 마땅히 왜적을 제어할 방책을 강론해야 하겠다. 지금 주상(主上)으로부터 허조의 말을 들으니, 거제도에 병선을 모으는 것이 불가하다 하고, 또 일본에 사신을 보내자고 청하나, 이것은 잘못 생각하는 것이다. 병선을 모으려는 것은 왜적을 치려는 것이 아니고, 그들이 와서 항복하기를 기다리는 것이며, 또 불의의 변을 예비하려는 것이니, 무엇이 불가한가. 일본 국왕이 영락 연호 쓰는 것을 책한다면서 사신을 보내어 우호(友好)를 맺자는 것은, 글을 읽고 의리를 아는 사람의 말이 아니다. 그 중에 왜사(倭使)를 구류하는 것이 불가하였다는 의견은 당연한 것이니, 대신들과 극진히 의논하여 계하라. 만약 왜사와 만나서 말할 경우에는 마땅히 지나간 일과 소이전(小二殿)의 오만 무례한 태도와 도도웅수(都都熊壽)의 절교한다는 말을 역역히 들어서 말하되, ‘너희들이 먼저 이러하기에 지금 모든 장수를 각도에 보내어 수군을 신칙하여, 만일 폐단을 짓는 자가 있으면 곧 잡을 것이고, 혹은 대마도까지 쳐들어가 곧 농사를 못 짓게 할 것이나, 너희들이 성심으로 돌아와서 항복한다면 어찌 반드시 이렇게 하겠는가. ’라고 하라."
하니, 유정현과 변계량 등이 대답하기를,
"왜사를 구류하는 것은 신들도 불가하였다 하였습니다."
하고, 박은·이원은 아뢰기를,
"만약 그들이 속히 항복하도록 하자면 그 사신을 구류하는 것보다 더 좋은 방법이 없습니다."
하였다. 박은 등이 이미 잔치에서 나가니, 상왕이 친히 그 일을 물으니, 박은·이원이 역시 앞에 올린 말과 같게 대답하였다. 상왕이 말하기를,
"왜사를 돌려보내는 것 보다 더 편한 방법이 없다. 구류하여 두면 우리가 먼저 쟁단(爭端)을 일으키는 것이니 불가하다."
하니, 계량이 아뢰기를,
"원창청(原昌淸)이 보내온 사인(使人)이 입국증명[行狀]이 없으므로 지금 해포(海浦)에 머물고 있으니, 서울에 올라오거나 돌아가거나 저의 소원에 따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니, 상왕이 그대로 따랐다. 상왕이 또 말하기를,
"능실(陵室)의 두 방석(傍石)과 개석(蓋石)을 전석(全石)으로 쓰려면 운반하기가 매우 어려워서, 죽은 사람에게도 도움이 없고 백성에게만 해가 되니, 오늘 정한 일을 길이 법으로 이룩하여 헌릉(獻陵)의 형지안(形止案)에 명백히 기록한 후, 후세 자손으로 하여금 다 이 법을 따르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10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12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병법(兵法) / 왕실-의식(儀式)
○壬戌/上將詣樂天亭, 肩輿已進, 召見許稠, 稠極陳巨濟島不宜聚泊兵船與不可拘留倭使之意, 仍請更遣使臣于日本詗之。 上遂詣樂天亭, 奉上王御別室, 餞禹博、成達生、黃象、元胤、朴礎、洪尙直、金漸, 兩上親執盃賜之。 朴訔、李原、趙涓、趙末生、許稠、洪敷、李明德、元肅等亦入侍, 以次行酒。 將開宴也, 上王先召末生、元肅命曰: "今見水軍節制使, 當講論制倭之策。 今因主上聞許稠之言, 巨濟島, 不宜聚泊兵船, 且請遣使日本者誤矣。 兵船聚泊, 非欲擊倭, 乃待其來降, 且備不虞, 何爲不可? 日本國王責用永樂年號, 而欲遣使結好, 非讀書識理者之言也。 其曰不可拘留倭使則宜矣, 其與大臣極論以啓。 若與倭使言, 則當歷擧往事及小二殿侮慢無禮、熊壽絶交之言曰: ‘爾旣如此, 今遣諸將於各道, 大飭水軍, 如有作耗者, 則掩捕之, 或入攻對馬島, 使不得耕種, 如其誠心歸附, 何必如此乎?’" 廷顯、季良等對曰: "拘留倭使, 臣等亦以爲不可。" 朴訔、李原曰: "如欲速其降, 不如留其使者之爲愈也。" 訔等旣赴宴, 上王親問之, 訔、原對之如前, 上王曰: "不如放還之便也。 拘留則我先生釁, 不可。" 季良曰: "原昌淸所使人, 今以無行狀, 留在海浦, 其上京與回還, 宜從其願。" 上王從之。 上王又曰: "陵室兩傍石及蓋石, 若用全石, 則轉輸甚難, 無益於死者, 有害於生民。 今日之事, 永爲成法, 於獻陵形止案, 明白載錄, 俾後世子孫咸遵此法。"
- 【태백산사고본】 4책 10권 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412면
- 【분류】외교-왜(倭) / 군사-병법(兵法)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