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왕이 송계원평에서 박은·이원·허조 등과 석실의 제도에 대해 의논하다
상왕이 장차 낙천정에 거둥하려고 송계원평(松溪院坪)에 이르러서 유정현·박은·이원·허조·원숙을 불러 석실(石室)의 제도를 의논하기를,
"전석(全石)을 사용하여 덮개를 하면 백성의 힘도 어렵고, 큰 일이니 반드시 두 조각을 내어 쓸 것이요, 또 네 모퉁이에 쓸 돌도 두 개나 세 개의 돌을 연합(連合)하여 쓰는 것이 가하다. 나의 백세(百歲) 뒤에도 마땅히 이 제도를 쓰라."
하고, 또 말하기를,
"석실 밑바닥에는 돌을 쓰지 말고 다만 석회(石灰)와 세사(細沙)를 쓰라."
고 하였다. 조(稠)가 계(啓)하기를,
"근래에 주현(州縣)의 아전이나 백성들이 그의 수령(守令)의 범(犯)한 것을 고하는 자가 흔히 있으니, 풍속(風俗)이 박하고 악해지는 것이 이렇게 심할 수가 없어서, 신은 일찍이 통분하게 여겼으므로, 앞서 옛날 일을 인용하여 글을 올려 진청하였으나, 그 사이에 이의(異議)가 있어 윤허하심을 받지 못하였습니다. 만약 이를 막고 금하지 아니하면 장차 아내는 그 남편을 배반할 것이고, 아들은 그 아비를 배반할 것이고, 노비(奴婢)는 그 주인을 모해할 것이니, 이것을 당옥(堂屋)에 비한다면, 들보와 기둥은 군부(君父)이요, 창문과 지게문[戶]은 신자(臣子)인 것입니다. 차라리 창호(窓戶)를 상할지언정 어찌 동량을 보호하지 않겠습니까. 만일 윤허하심을 얻게 되면 신은 죽어도 뉘우침이 없겠습니다."
하고, 사모를 벗고 머리로 땅을 부딪치며 아뢰기를,
"신이 일찍부터 통분하게 여겼던 것을 오늘에야 계달(啓達)하게 된 것입니다."
라고 하였다. 상왕이 말하기를,
"일찍이 분하게 여긴 것을 어찌 이제야 아뢰는가. 이것은 경의 과실이다."
하니, 조가 아뢰기를,
"가운데서 이의(異議)가 있어서 감히 상계(上啓)하지 못하였나이다."
하였다. 은(訔)도 아뢰기를,
"조가 아뢰려고 한 지는 오래되었습니다. 신 등의 따위로는 이러한 피혐(避嫌)될 일에 어찌 감히 계(啓)하오리까."
하였다. 조가 또 청하기를,
"친히 올리는 졸곡(卒哭) 뒤에 석복(釋服)하려 한다는 주상(主上)의 상소를 상왕께서 받으소서."
하였고, 은은 아뢰기를,
"최이의 사람됨이 단정하고 평순하여 해됨이 없으니 지금 관찰사가 되어도 또한 크게 근신할 것입니다. 그 범죄한 것이 비록 과오라 해도 마땅히 자각(自覺)하는 것으로 논할 것입니다."
하니, 상왕이 말하기를,
"나도 또한 그의 사람됨을 알고 있으므로 죄받을 예(例)는 아니니, 다만 파직(罷職)하는데 그친 것이다. 비록 죄가 없는 사람에게도 가다가 보면 면관(免官)되는 일이 있다. 하물며 자각(自覺)하게 된다는 것이 아침에 행한 것을 저녁에 고치는 것이 아니고 한 달은 지내야 그 문첩(文牒)을 거두게 되는 것이다. 또 의손(義孫)도 그 아비의 죄에 관련된 것은 오히려 가하나, 김훈(金訓)의 범죄는 더 심한 것인데, 어찌하여 식구에 대한 양식까지 대어주었는가."
고 하였다. 주선(晝饍)을 올리니, 공녕군(恭寧君) 이인(李䄄)과 조연(趙涓)·홍부(洪敷)·이교(李皎)·이명덕·윤회(尹淮)·허조·원숙 등이 시선(侍饍)하고, 드디어 낙천정으로 거둥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4책 9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9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행행(行幸) / 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윤리(倫理)
○上王將幸樂天亭, 次于松溪院平, 召柳廷顯、朴訔、李原、許稠、元肅, 乃議石室之制曰: "用全石爲蓋, 則民力艱大, 須用二片。 且四隅石, 亦皆連合二三片可也。 我百歲後, 當用此制矣。" 又曰: "室底勿用石, 只用石灰細沙。" 稠進啓曰: "近州縣吏民, 告其守令所犯者, 比比有之, 風俗薄惡莫甚, 臣嘗憤憤。 曩引古事, 上書陳請, 間有異議, 未蒙兪允。 若不防禁, 將至於妻背其夫、子背其父、奴婢謀其主。 比之堂屋, 棟樑, 君父也; 窓戶, 臣子也。 與其傷窓戶, 孰若護棟樑哉? 如得蒙允, 臣死無悔。" 脫帽叩頭曰: "臣嘗憤憤, 今日乃得啓達。" 上王曰: "旣常憤憤, 何至今乃啓? 此乃卿之過也。" 稠曰: "中有異議, 未敢上啓。" 訔曰: "稠之欲啓久矣。 如臣等輩, 安得啓如此避嫌之事?" 稠又請主上卒哭後釋服, 親進疏, 上王受之。 訔曰: "崔迤爲人, 端平無害, 今爲觀察使, 亦大謹愼。 其所犯雖誤, 當以自覺論。" 上王曰: "予亦知其爲人, 然非受罪之例, 止罷職耳。 雖無罪者, 往往免官, 況其自覺, 不是朝行夕改, 經月乃收其文牒。 且義孫連父罪, 猶云可也, 金訓罪犯有甚, 豈可給口糧乎?" 進晝膳, 恭寧君 䄄及趙涓、洪敷、李皎、李明德、尹淮、許稠、元肅等侍膳。 遂幸樂天亭。
- 【태백산사고본】 4책 9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97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행행(行幸) / 정론(政論) / 사법-탄핵(彈劾) / 윤리(倫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