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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8권, 세종 2년 4월 12일 경술 1번째기사 1420년 명 영락(永樂) 18년

사신이 순효 대왕 혼전에서 제를 올리다

사신이 제문과 제물을 받들어 풍악으로 전도(前導)하게 하고 순효 대왕 혼전에 도착하므로, 두 임금이 먼저 혼전에 나아가 흰옷과 검은 띠와 익선관 차림으로 대문 밖에 나가서 영접하였다. 사신이 들어와 자리에 나아가서, 조양(趙亮)이 서서 술을 잔에 따라 집사자에게 주어 영좌에 드리게 하고, 축(祝)이 제문(祭文)을 읽으니, 그 제문에,

"황제는 예부 원외랑(禮部員外郞) 조양행인(行人)021) 역절(易節)을 보내어 조선국(朝鮮國) 전 권서 국사(前權署國事)022) 이모(李某)에게 제사하노니, 오직 그대는 온순(溫純)하고 독후(篤厚)하며, 지극한 정성으로 선한 것을 즐겨하며, 조정을 존경하여 오래 되어도 변치 아니하더니, 나이 많으므로, 일을 쉬고 집에 물러가 영화와 부귀를 누릴새, 수하고 강녕하니, 정히 편안히 노니어 늙은 처지에 이 태평 시대를 즐길까 하였더니, 어찌하여 한 번 병들자 자는 듯 길이 갔단 말인가. 옛일을 더듬고 먼 데의 신하를 생각하면, 슬프고 아픔이 진실로 깊도다. 특별히 융숭한 휼전(恤典)을 베풀어서 그대에게 시호(諡號)를 공정(恭靖)이라고 하사하고, 사람을 보내어 희생과 단술로 제사하게 하노니, 구원(九原)에서라도 모르지 아니하거든 이것을 흠향하라."

하였다. 그 제물이 모두 30여 반(盤)인데, 《예전(禮典)》에 기록된 것과는 같지 아니하여, 밀가루로 인물(人物)과 기린·코끼리·사자·사슴·새우·게의 형상으로 만든 것이 있고, 마른 나물을 썰어 침향(沈香)으로 삼고, 색종이로 폐백을 삼았다. 제사가 끝나고, 두 분 왕이 대문 밖에 나아가 장차 절하여 전송하려 하니, 양(亮) 등이,

"절하지 마소서."

하되, 상왕이,

"예법대로 불가불 절하여야 한다."

하므로, 등이 강권하므로, 그대로 절하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79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

  • [註 021]
    행인(行人) : 사자(使者)의 통칭.
  • [註 022]
    조선국(朝鮮國)전 권서 국사(前權署國事) : 명나라의 승인을 받아야 정식으로 임금이 되는 것인데, 정종은 명나라의 승인이 있기 전에 왕위에서 인퇴(引退)하였으므로, 권서(權署)라는 말이 붙었음.

○庚戌/使臣奉祭文奠物, 鼓吹前導至順孝大王魂殿, 兩上先詣魂殿, 以白衣烏帶翼善冠, 出迎于大門外。 使臣入就位, 立酹酒, 以爵授執事者, 使奠靈座, 祝讀祭文。 其文曰:

皇帝遣禮部員外郞趙亮、行人易節, 諭祭于朝鮮國前權署國事某曰: 惟爾溫純篤厚, 至誠樂善, 尊敬朝廷, 久而不替。 頃以年高, 休致于家, 克享榮貴, 壽考康寧。 政期優游暮景, 樂此太平, 胡爲一疾, 奄然長逝! 撫念遠臣, 良深悼痛。 特隆恤典, 賜爾諡曰恭靖, 遣人祭以牲醴。 九原不昧, 尙克享之。

其奠物凡三十餘盤, 不類禮典所載, 有以𥸴爲人物麟象獅鹿蝦蟹之形, 鐫乾菜爲沈香, 以染色紙爲(弊)〔幣〕 帛。 祭訖, 兩上出大門外將拜送, 等曰: "可勿拜。" 上王曰: "禮不可不拜。" 等强之, 乃不拜。


  • 【태백산사고본】 3책 8권 3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79면
  • 【분류】
    외교-명(明)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