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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6권, 세종 1년 12월 15일 을유 3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경녕군을 총애해 준 것 등에 감사하는 사은표와 방물표

상왕이 평양군 조대림(趙大臨)을 시켜 표문을 받들고 북경에 가게 하였다. 임금이 대림에게 옷 한 벌과 갓·신·털옷·털갓을 하사하였다. 사은표에 말하기를,

"마음 크시어 작은 것을 사랑하고 먼 나라를 어루만져 편하게 하신 덕이 이미 높고, 덕화가 흡족하여 어린 것도 포용하시매 우리를 돌보심이 더욱 지극하시니, 몸을 어루만져 감격함을 알고 뼈에 새겨도 〈그 은혜〉 갚기 어렵나이다. 엎드려 생각하건대, 신이 다행히도 성스럽고 밝은 조정을 만나 일찍부터 번선(藩宣)의 맡기심을 지켰으나, 오직 직무를 수행할 줄만 알았을 뿐이요, 실오라기만큼도 도움이 되지 못하였나이다. 한가롭게 거처함에 이르러 외람하게도 다시 우로(雨露)의 은혜에 젖었으므로, 이에 천한 자식을 보내어 밝으신 조정에 사례하였더니, 똑똑지도 못한 아이가 비상한 총애를 거듭 받을 줄 어찌 기대하였으리오. 황제의 은총이 우악(優渥)하여 황제의 정녕(丁寧)한 말씀을 가까이서 듣고, 진기한 물품의 하사를 거듭 받고, 또 화려한 연석(筵席)에 가까이 모셨으매, 또 경서의 보배로운 가르침을 주시어 유교와 불도(佛道)의 아름다운 말씀을 펴게 하였으니 특별한 은혜가 이에 미치심은 옛날에도 드문 것입니다. 이것은 대개 황제께서 어진 마음을 미루어서 〈모든 것을〉 하나같이 보시고 도량을 넓혀서 〈모든 것을〉 겸해서 용납하는 것을 만난 까닭입니다. 신이 일찍이 작은 수고로움에 힘썼음을 기억하시고, 신의 절의가 더욱 굳다고 이르시어, 유치(幼稚)한 것까지도 광영을 받게 하였으니, 신은 삼가 맹세코 자손에 이르기까지 영세토록 제후로 복속하겠으며, 부로(父老)와 더불어 성수(聖壽)가 하늘 같기를 축수하겠나이다."

하였다. 방물표(方物表)에 말하기를,

"황제의 돌보심이 깊으시어 비상한 은혜를 거듭 입사와 변변치 못한 토산물로 겨우 사례하는 정성만 표하기 위하여, 삼가 황세저포 20필, 백세저포 30필, 흑세마포 1백 필, 만화방석(滿花方席) 10장, 황화석 10장, 잡채화석 10장, 인삼 1백 근, 잣[松子] 2백 근, 잡색 말 30필을 준비하였는데, 위에 적은 물건은 제조가 정하지 못하고 명목이 매우 적으나, 중심에서 나온 신의인 줄 알고 윗사람에게 바치는 예의로서 용납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51면
  • 【분류】
    외교-명(明) / 무역(貿易)

    ○上王遣平壤君 趙大臨, 奉表如京師, 上賜大臨衣一襲及笠靴、毛衣、毛冠。 謝恩表曰:

    心敦字小, 懷綏旣隆, 德洽包蒙, 眷顧尤極, 撫躬知感, 銘骨難酬。 伏念, 臣幸遭聖明之朝, 嘗守藩宣之寄。 惟知述職, 諒無補於絲毫; 及在居閑, 復叨霑於雨露。 乃遣賤息, 入謝明庭。 豈期不慧之童, 荐荷非常之寵? 睿恩優渥, 昵承天語之丁寧; 珍貺稠重, 且侍華筵於密邇。 又錫經書之寶訓, 俾宣儒釋之嘉言。 殊私及玆, 在昔所罕。 玆蓋伏遇皇帝陛下仁推一視, 度擴兼容, 記臣曾効於微勞, 謂臣益堅於素節, 至令幼稚, 獲紆光榮。 臣謹當誓至子孫, 勤侯度於永世; 嘉與父老, 祝聖壽於齊天。

    方物表曰:

    天眷悉深, 荐蒙殊渥, 土宜不腆, 聊表謝忱。 謹備黃細苧布二十匹、白細苧布三十匹、黑細麻布一百匹、滿花方席一十張、黃花席一十張、雜彩花席一十張、人蔘一百觔、松子二百觔、雜色馬三十匹。 右件物等, 製造匪精, 名般甚寡。 冀諒由中之信, 俯容享上之儀。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51면
    • 【분류】
      외교-명(明)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