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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6권, 세종 1년 11월 28일 무진 2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의정부·육조·대간에서 올린 절의 노비를 혁파하라는 상서

의정부에서 상서하기를,

"석가천축국(天竺國) 정반왕(淨飯王)의 아들로서, 성(城)을 넘어 출가하여, 설산(雪山)에서 도를 닦고 성중(城中)에서 걸식하였으매, 초조(初祖) 달마(達摩)와 6조 혜능(惠能)이 혹은 장삼을 입고 벽을 향하여 좌선하였으며, 혹은 웃옷을 벗어 메고 방아를 찧었으며, 종을 두고 공양하였다는 것은 듣지 못하였습니다. 국가에서 회암사는 불교의 수법 도량(修法道場)이요, 진관사는 수륙 도량(水陸道場)이므로, 노비를 넉넉하게 주어 공양하게 하였으니, 여기에 있는 자는 진실로 마음을 깨끗하게 가지고 욕심을 적게 하여, 불조(佛祖)의 임금을 수(壽)하게 하고 나라를 복되게 하는 정신을 계승하고, 국가의 무거운 은혜에 보답하여야 할 것인데, 이제 회암사가휴(可休)·정후(正厚)진관사(津寬寺)사익(斯益)·성주(省珠) 등 수십여 인은 항상 절의 계집종과 음욕을 방자히 행하여 삼보(三寶)를 더럽혔고 국법을 범하였습니다. 이름난 절로서 이와 같을진댄, 딴 절 중들의 더럽고 행실이 없음은 단정코 알 수 있습니다. 여러 절에 노비가 있는 것은 대개 예부터 내려오는 폐습에 기인한 것이므로, 갑자기 개혁하지 못하던 것이나, 이것은 중들을 죄에 빠지게 하는 것으로서, 불도의 수치일 뿐만 아니라, 또한 국법의 결함이라 하겠습니다. 공손하게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께서는 총명하고 슬기로운 자질로서, 천명을 받고 왕위에 오르시어 정신을 가다듬고 정치를 하고 계시니, 옛날의 폐습을 개혁하고 새로운 정사를 선포함이 마땅합니다. 신 등은 원컨대 여러 절의 노비를 다 없애어 중들로 하여금 음란한 행동으로 죄에 빠지는 잘못이 없고 청정 과욕(淸淨寡欲)하는 아름다움이 있게 하면, 이 위에 더 다행이 없을까 합니다."

하고, 육조에서도 상서하기를,

"불씨(佛氏)의 도는 청정으로써 종지를 삼고 음욕을 경계한다고 들었습니다. 석가설산에서 고행하여, 그 도를 이루었고, 6조 혜능은 자신이 방아와 친하면서 힘써 마음113) 을 구하여, 드디어 조파(祖派)를 계승하였습니다. 대개 근골(筋骨)을 괴롭히고 음식을 험하게 먹는 것은 수도를 증진시키는 방법입니다. 지금 각 절의 중은 노비를 부려서 배부르게 먹고 따뜻하게 거처하여 편안하므로, 음탕하고 더러운 행동을 멋대로 하고 있으니, 어찌 그 스승의 가르침이겠습니까. 회암사진관사는 청정하다고 하는 절인데, 그 절 중이 계집종을 간음하여 혹 두세 사람에 이르기도 하였습니다. 음양이 서로 구하는 것은 이치의 떳떳한 것이라, 밤낮으로 친근하니, 어찌 범하지 않겠습니까. 회암사진관사가 이러할진대, 하물며 딴 절이리오. 각 절의 노비를 모두 관에 이속(移屬)시키고, 중들로 하여금 괴롭게 수행하게 하여, 그 도를 바르게 하기를 비나이다."

하였으며, 대간의 상소에는,

"가만히 생각하건대, 석씨의 교는 청정과 과욕을 으뜸으로 삼는 까닭에, 고행 걸식(苦行乞食)하고, 안일과 포식을 구하지 않는 것이 그 도입니다. 주지(住持)된 자가 전지와 백성에게서 수입한 것으로 방자스럽게도 안장 차린 말과 의복·주식비(酒食費)로 쓰고 있으며, 도징(道澄)·설연(雪然)과 같이 스승의 가르침을 배반하고 절의 계집종을 간음한 자도 있어, 스스로 그 도를 파괴하였으니, 진실로 그 노비를 혁파하여, 그 도를 다하게 함이 마땅하오나, 적년(積年)된 폐습을 갑자기 개혁할 수 없어서, 다만 절을 줄이고 그 노비의 수를 정하여, 10리 밖에 살게 하되, 비자는 〈절에〉 들어가서 일하는 것을 금하여야 합니다. 이것은 중들을 음욕에 빠지지 않게 하고자 함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회암사진관사는 이름난 절이라고 부르는데, 이제 사익성주(省珠)는 그 절의 비자와 간음하다가 일이 발각되어서 도망하였고, 정후(正厚)신각(信覺)·가휴(可休)도 또한 비자를 간음하였으니, 그 음욕을 자행한 것은 도징설연보다 심한 것입니다. 회암사진관사에 있는 자가 이러할진댄, 하물며 다른 절 중이겠습니까. 또 중은 이미 어버이[親]를 이별하고 애정을 끊었으니, 비록 부모의 노비라 할지라도, 부려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원컨대 절의 노비는 혁파하고, 중들의 노비도 본집으로 돌아가게 하여, 그 스승의 청정한 가르침에 부응하게 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3의정 및 대사헌을 불러서 명하기를,

"서울과 지방의 사찰 노비를 혁파함이 가하다. 개경(開慶)·연경(衍慶)·대자암(大慈菴)의 노비도 또한 혁파할 것이나, 오직 정업원(淨業院)은 과부(寡婦)들이 모인 곳이고, 또 노자(奴子)가 가까이 하는 곳이 아니니 면하라."

하고, 또 말하기를,

"이번 사은(謝恩)은 부왕께서 하는 것이 예나, 나는 다만 하례하는 표문만 보내고 사례를 하지 않는 것은 옳지 못한 듯한데, 힘이 넉넉하지 못하여 걱정이다."

하니, 유정현 등이 아뢰기를,

"사례를 행하는 것이 옳습니다."

하였다. 임금이 상왕께 아뢰니, 상왕이 말하기를,

"당초에 경녕(敬寧)을 보낸 것은 내가 명한 것이고, 또 세포(細布)가 부족할까 염려되니, 주상은 하례만 하여도 통할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6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46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신분-천인(賤人) / 외교-명(明) / 사법-법제(法制)

○議政府上書曰:

釋迦天竺 淨飯王之子, 踰城出家, 修道雪山, 乞食城中。 初祖達摩、六祖惠能或被衲面壁, 或袒爲舂役, 俱未聞以臧獲奉養者也。 國家以檜巖作法之場、津寬水陸之所, 優給奴婢, 以資供養。 居是者, 誠宜淸淨寡欲, 以續佛祖, 壽君福國, 以報重恩。 今檜巖寺可休正厚, 津寬寺斯益省珠等數十餘人, 常與寺婢恣行淫欲, 汚染三寶, 以干邦憲。 號爲名刹, 尙且乃爾, 其他寺社僧徒汚穢無行, 斷可知矣。 諸寺之有奴婢, 蓋因舊弊, 未能遽革, 是使僧徒陷於罪戾, 非徒有愧於釋道, 抑亦有虧於國典。 恭惟, 主上殿下以聰明睿智之資, 受命踐阼, 勵精圖治, 宜革舊弊, 以布惟新之政。 臣等願盡除諸寺奴婢, 俾僧徒無淫穢陷罪之累, 有淸淨寡欲之美, 不勝幸甚。

六曹上書曰:

竊聞佛氏之道, 以淸淨爲宗, 淫欲爲戒。 釋迦 雪山苦行, 以成其道; 六祖惠能身親碓杵, 勵行求心, 遂承祖派。 蓋苦其筋骨, 麤其飮食, 乃所以增益修進之術也。 今之各寺僧人役使奴婢, 飽煖安逸, 肆行淫穢, 豈其師敎哉? 檜巖津寬號爲淸淨, 今其寺僧姦其婢子, 或至二三。 陰陽相求, 理之常也。 日夜親近, 安能不犯哉? 檜巖津寬尙且如此, 況其他乎? 乞將各寺奴婢, 悉令屬公, 令僧徒苦志修行, 以正其道。

臺諫上疏曰:

竊惟釋氏之敎, 以淸淨寡欲爲宗, 故苦行乞食, 不求安飽, 乃其道也。 爲住持者, 以田民所收, 恣爲鞍馬衣服酒食之費, 至有如道澄雪然者背其師敎, 淫其寺婢, 自毁其道, 固當革其奴婢, 使盡其道也。 第以積年之弊, 不可遽革, 只令沙汰寺社, 定其奴婢之數, 處於十里之外, 禁其婢子入役, 是欲使僧徒不陷於淫欲也。 檜巖津寬號爲名刹, 今斯益省珠姦其寺婢, 事覺在逃。 正厚信覺可休等亦姦其寺婢, 其爲恣行淫欲, 又有甚於道澄雪然者矣。 居此者, 尙且如此, 況其他乎? 且爲僧者, 旣已辭親割愛, 雖父母奴婢, 不宜役使。 願革寺社奴婢, 僧人奴婢, 亦令歸宗, 以副其師淸淨之敎。

上召三議政及大司憲, 命曰: "可革京外寺社奴婢。 其開慶衍慶大慈菴奴婢, 亦當革之, 唯淨業院, 寡婦所聚, 又非奴子所昵近也, 宜免之。" 又曰: "今謝恩, 父主行之禮也。 然吾只修賀表, 不行謝禮, 似乎不可, 但恐力不贍也。" 廷顯等曰: "行之爲可。" 上以啓于上王, 上王曰: "初遣敬寧吾命也。 且恐細布不足, 主上只修賀禮亦通。"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6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46면
  • 【분류】
    사상-불교(佛敎) / 신분-천인(賤人) / 외교-명(明) / 사법-법제(法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