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6권, 세종 1년 11월 27일 정묘 1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동지 망궐례를 행하고 의식대로 조하를 받다
동짓날이라, 임금이 면복차림으로 군신을 거느리고 망궐례(望闕禮)를 마친 다음, 원유관(遠遊冠)과 강사포(絳紗袍)를 입고 인정전에 나아가 의식대로 조하를 받았다. 여러 도에서 전문과 방물을 진상하였는데, 사예(司藝) 신장(申檣)이 법대로 전문을 읽지 아니하고, 전문 펴는 것을 기다리지 않고 먼저 외워버렸다. 예를 마치고 임금이 편전에 들어와 말하기를,
"신장은 사리를 아는 선비인데, 전문 펴는 것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외워서 읽었으니, 비록 자그마한 실수이기는 하나, 어찌 잘못이 아니겠나. 오늘의 예는 모두 잘 되었는데, 다만 이것이 실수였다."
고 하였다. 임금이 백관을 거느리고 수강궁에 나아가, 임금은 면복, 백관은 조복(朝服)을 입고 진하(陳賀)하고, 양전(兩殿)에게 겉 옷감과 안찝을 진상하여 헌수(獻壽)하고자 하니, 상왕이 중지시키고 내전에 술자리를 베풀었는데, 의정부와 육조가 입시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46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의생활-관복(官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