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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6권, 세종 1년 11월 3일 계묘 1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상왕이 임금과 강원도에서 대규모로 강무하다

임금이 수강궁에 나아갔다. 상왕이 임금과 더불어 강원도에서 강무하였는데, 양녕 대군 이제(李禔), 효령 대군 이보(李𥙷), 공녕군(恭寧君) 이인(李䄄), 우의정 이원, 한평군(漢平君) 조연(趙涓), 곡산군(谷山君) 연사종(延嗣宗), 판도총제부사(判都摠制府事) 이화영(李和英), 장흥군(長興君) 마천목(馬天牧), 병조 판서 조말생, 도총제 이담(李湛), 홍부(洪敷), 광록시 경(光祿寺卿) 권영균(權永均), 소경(少卿) 한확(韓確), 총제 유은지(柳殷之)·문효종(文孝宗)·곽승우(郭承祐)·이춘생(李春生)·성달생·전흥(田興)·박실(朴實)·박성양(朴成陽)·이순몽(李順蒙)·원윤(元胤)·이교(李皎)·황상(黃象)·문귀(文貴), 병조 참판 이명덕, 당성군(唐城君) 홍해(洪海), 지신사 원숙, 좌대언 김익정, 우대언 이수(李隨), 동부대언 유영, 첨지돈녕부사 홍상직(洪尙直), 첨총제(僉摠制) 김월하(金月下)·지백연(池伯淵)·조정(趙定)들이 어가를 따랐다. 상호군(上護軍)·대호군(大護軍)·호군(護軍)·사금(司禁)·사엄(司嚴) 및 사사로 부리는 반당(伴儻)을 제한 외에도 갑사(甲士)·별패(別牌)·시위패(侍衛牌)를 아울러 2천여 명이었으며, 말이 만여 필이고, 별군 방패(別軍防牌)가 수천 명이었는데, 연사종·이화영·이춘생·박성양·박실·황상들로써 3군 장수를 삼았다. 이날 평구역(平丘驛)100) 등처에서 매사냥을 관람하고 양주(楊州) 조시배령(曺時背嶺) 남쪽에서 점심을 먹었다. 경기 감사 조치(曹致)와 경력(經歷) 유사근(柳士根) 등이 와서 뵈옵고 술과 과일을 올리므로, 첨총제 이상을 장전(帳殿) 앞에서 호궤(犒饋)하고, 시위하는 대소 인원에게 술을 하사하도록 명하였다. 드디어 용진(龍津) 남쪽에서 사냥하고, 용진 여울을 건너 남쪽 언덕에 유숙하였는데, 조치가 또 술과 과일을 올리므로, 시위하는 대소 인원에게 나누어 주게 하였다. 매양 주정(晝停)에서나 숙소에서 반드시 〈지방에서〉 바치는 술을 시위하는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었다.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44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병법(兵法)

  • [註 100]
    평구역(平丘驛) : 양주군.

○癸卯/上詣壽康宮。 上王與上講武于江原道, 讓寧大君 孝寧大君 𥙷恭寧君 、右議政李原漢平君 趙涓谷山君 延嗣宗、判都摠制府事李和英長興君 馬天牧、兵曹判書趙末生、都摠制李湛洪敷、光祿寺卿權永均、少卿韓確、摠制柳殷之文孝宗郭承祐李春生成達生田興朴實朴成陽李順蒙元胤李皎黃象文貴、兵曹參判李明德唐城君 洪海、知申事元肅、左代言金益精、右代言李隨、同副代言柳穎、僉知敦寧府事洪尙直、僉摠制金月下池伯淵趙定等隨駕。 除上大護軍、護軍、司禁、司嚴及私伴倘外, 甲士、別牌、侍衛牌, 幷二千餘人、馬萬餘匹、別軍防牌數千人。 以延嗣宗李和英李春生朴成陽朴實黃象等爲三軍將帥。 是日, 觀鷹于平丘驛等處, 晝停于楊州 曺時背嶺之南。 京畿監司曺致、經歷柳士根等來見, 仍進酒果。 命饋僉摠制以上于帳殿前, 賜酒于侍衛大小人。 遂獵于龍津之陽, 涉龍津灘, 次于南岸。 曺致又獻酒果, 命分賜侍衛大小人。 每晝停、宿所必以所獻酒, 分賜侍衛諸人。


  • 【태백산사고본】 3책 6권 1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44면
  • 【분류】
    왕실-행행(行幸) / 군사-병법(兵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