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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5권, 세종 1년 9월 18일 경신 1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원민생을 보내어 황제에게 사리를 진상하는 주문

황엄왕현이 돌아가면서 인경지(印經紙) 1만 장을 바쳤다. 상왕과 임금이 모화루(慕華樓)에서 그들을 전송하고, 원민생을 보내 황엄을 따라가 사리(舍利)를 〈명나라 황제에게〉 진상하게 하였다. 그 주문[上奏文]에 말하기를,

"영락(永樂) 17년 8월 17일 흠차 내관(欽差內官)인 사례감 태감(司禮監太監) 황엄이 이 나라에 와서 성지를 전했는데, 이르기를, ‘조선국의 석탑과 사탑(寺塔) 속의 사리는 그 수효가 몇 개임을 묻지 말고 〈얼마가 되든지〉 다 보낼지어다. 그리고 다른 절 안에 있는 사리도 보낼지어다.’ 하여, 이 뜻을 받들어 신의 아비와 신은, 선조 강헌왕(康獻王)이 공양하고 가지고 있던 석가의 사리와 정골(頂骨)069) 및 국내에 두루 다니며 받아 가지고 온 제불 여래·보살(諸佛如來菩薩)과 명승(名僧)의 사리를, 배신(陪臣) 좌군 동지총제(左軍同知摠制) 원민생을 시켜 받들어 가지고 흠차관과 함께 가서 진상하게 하였으니, 사리의 수효는 총 5백 58개의 존귀한 알이오."

라고 하였다. 상왕은 효령 대군 이보를 보냈고, 임금은 이원(李原)·변계량원숙을 보내 벽제역(碧蹄驛)에 가서 사신을 전송하게 하였고, 장천군(長川君) 이종무를 보내 의주까지 〈사신을〉 동반하여 전송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37면
  • 【분류】
    외교-명(明)

○庚申/黃儼王賢還, 就獻印經紙一萬張。 上王及上餞于慕華樓, 遣元閔生, 隨黃儼奉進舍利。 奏曰:

永樂十七年八月十七日, 欽差內官司禮監太監黃儼到國, 傳奉聖旨: "朝鮮國石塔寺塔中舍利, 不問幾顆, 都請來和別箇寺裏, 有的舍利也請來。" 欽此。 臣父臣將先祖康獻王供養有的, 釋迦舍利幷頂骨及境內遍行迎取諸佛如來菩薩幷名僧舍利, 差陪臣左軍同知摠制元閔生齎擎, 一同欽差官奉進。 計舍利摠五百五十八顆。

上王遣孝寧大君 𥙷, 上遣李原卞季良元肅, 往碧蹄驛餞使臣, 又遣長川君 李從茂, 伴送于義州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37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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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외교-명(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