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계량이 쓴 낙천정기
먼젓번 변계량이 선지를 받들고 낙천정기(樂天亭記)를 지어 바치니, 권홍(權弘)에게 명하여 쓰게 하고, 판에 새기라 하여 낙천정에 걸었으니, 기문에 이르기를,
"낙천정은 우리 상왕 전하께서 때때로 보시고 노시는 곳이다. 전하께서 왕위에 계신 지 19년 가을 8월에 우리 주상 전하께 왕위를 물려주시고, 농사 틈을 타서 동쪽 교외에 나가 노실새, 한 구릉이 있는데, 높이 솟고 둥그스름한 것이 마치 가마솥을 엎어놓은 것 같아서 이름을 대산(臺山)이라고 하였다. 올라가서 사방을 바라보면 큰 강물이 둘려서 늪이 되어, 굽이쳐 돌아서 바다인양 퍼져 있고, 연이은 봉우리와 중첩한 산등성이들이 켜로 보이고, 층층으로 내밀어 언덕을 둘러서 형세가 마치 여러 별이 북극성을 둘러 싼 것 같으니, 과연 하늘이 만든 승지(勝地)였다. 전하께서 명하시어 구릉의 간방(艮方) 모퉁이에 이궁(離宮)을 짓게 하시어 바람과 비를 피하게 하시고, 인하여 구릉 위에 정자를 지으시고 좌의정 박은에게 명하시어 정자 이름을 짓게 하시니, 은이 《주역》 계사(繫辭)의 낙천(樂天)이란 두 자를 골라서 바치었으니, 대개는 전하께서 행하여 오신 일의 결과를 모아 추려서 그 뜻을 정자 이름에 부친 것이며, 또 오늘의 즐거움을 기록함이다.
신(臣) 계량에게 명하시어 문을 지어서 기(記)하게 하라 하시니, 신 계량이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하늘이라는 것은 이치일 뿐이요, 낙이란 것은 억지로 애쓰지 아니하고 자연히 이치에 합하는 것을 이름이다. 대개 무극(無極)의 진(眞)과 이오(二五)053) 의 정이 묘하게 엉기어서 사람이 이에 생기는 것인즉, 천리가 사람에게 품부(稟賦)된 것은 같지 않음이 없을 것이다. 비록 그러하나, 보통 사람이 출생함에는 기품이 깨끗하지 못하고 물욕이 가리어 있으므로, 가리어 있는 자가 억지로 애써서 천리를 좇으려 하여도 좇지 못하는데, 하물며 그 자연스럽게 이치에 합하는 것을 바랄 수 있겠는가. 삼가 생각하오면, 전하께서는 하늘이 점지하신 바탕이시라, 모든 물건 위에 뛰어 나시므로, 밝고 밝은 것이 몸에 있으시고, 덕성을 항상 드러내시니, 그 행하시는 바가 천리에서 흘러 나오지 아니한 것이 없으므로, 전에 잠저에 계실 때에 어머님이신 신의(神懿) 왕후의 상사를 슬퍼하실 적에는 세상 일을 떨어버리시고 제릉 능소 옆에 여막을 지으시고 모셨으며, 전조의 말년에 인군은 어둡고 보필하는 자가 포학하여 우리 태조를 모해하려 하여 화기(禍機)가 매우 긴박하였을 때에는 의리에 앞장서서 나라를 세우고 천승(千乘)054) 높은 자리에 태조를 추대하시었고, 지난 무인년에는 권력 있는 신하가 우리 태조께서 환후가 계심을 틈타서 어린 왕자를 내세우고 화란(禍亂)을 벌리려 하므로, 기세를 밝게 보시고 섬멸해 없애셨으니, 종사를 편안하게 하심이며, 여론의 의사가 전하를 추대하였으므로 마땅히 나서셔야 하겠거늘 노상왕에게 사양하시었으니, 웃어른을 존중히 여기신 바이며, 왕위에 오르신 이후에도 항상 태조께 조석으로 문안하지 못함을 한탄하시다가 병술년에는 왕위를 물러 나시려고까지 하셨으니, 항상 시측(侍側)하시려는 뜻을 이루려 함이나, 군신이 죽더라도 봉승(奉承)하지 못하겠다 하고 태조께서도 굳이 말리셨던 바, 3년이 지난 무자년에 태조께서 빈천(賓天)하시므로 슬프고 사모함을 견디지 못하시는 듯, 상중에 예절을 다하시다가 태묘(太廟)에 모실 때에 마침 장마가 계속되므로 전하께서 걱정하였는데, 모시는 당일 밤에는 천지가 맑게 개었다가 절차가 모두 끝난 3일 후에 다시 쏟아졌으니, 하늘도 지극하신 효성을 도우심이며, 노상왕에 우애하시고 공경함을 극진하게 하셔서 오래 갈수록 더욱 두터우시니, 이는 역사에 기록된 바 없는 일이며, 회안(懷安)055) 을 용서하여 형벌을 쓰지 않으셨으니, 대개 대순(大舜)의 상(象)056) 을 용서한 것을 좇으시고, 주공(周公)의 사형(死刑)057) 한 것을 본받기 싫어하심이며, 왕씨(王氏)의 후손을 살려 두어서 각자가 생업에 편하게 하심인즉, 천하와 국가를 공평하게 생각하시는 하늘 같고 땅 같으신 도량이시라. 즉 탕(湯)·무(武)가 혁명하고도 기(杞)058) ·송(宋)059) 을 두어둔 의리이다.
대국을 섬기심에 예절을 다하시므로, 두 번 고명(誥命)을 받으실 때, 매양 천자께서는 전하의 지극하신 정성을 칭찬하시고 작은 것을 사랑하고 어루만짐을 인(仁)으로 하셨으니, 50년 동안의 해적들이 항복하여 신복(臣僕)되기를 원하였고, 궁정 안에 처하심에 이르러서는 화목하시고, 제사를 받드시는 데에는 엄숙하고 공경하셨으며, 충성되고 곧은 이를 발탁하여 등용하시고, 간사하고 사치스런 자는 물리쳐 쫓아 내시고, 간하는 것을 좇으시고, 배우는 것을 좋아 하시며, 검소한 것을 존중히 여기시고, 쓰는 것을 절조 있게 하시며, 하늘의 경계하심을 삼가 따르시고 백성의 괴로움을 힘써 구휼하시니, 무릇 몸과 마음에 있으신 바로 행하시는 일에 나타나는 것은 순수하게 하나같이 이치에 좇으시되, 역시 억지로 애써서 행하시는 것이 아니었으니, 대개 우리 전하의 천성이 그러하므로 20년 동안 사방이 평안하고, 창고가 가득차고, 백성이 전란을 모르고, 하늘이 감로(甘露)를 내리시니 태평 시대의 극진함이 전고(前古)에도 드문 바이므로, 옛 현인이 말한 바, 천리를 좇으면 자연히 불리한 것이 없다는 것이 과연 미덥지 아니한가.
지난 해에 내선(內禪)060) 하신 거조는 춘추가 아직 권근(倦勤)하실 지경에 이르지는 않으셨으며, 환후로 일을 보시지 못할 지경에 이르시지 않으셨고, 또 어떤 형편에 몰리시는 부득이한 처지도 아니셨으므로, 대소 신하들이 뜰에서 통곡하기를 수일 동안이나 하였건만, 마침내 천의(天意)를 돌릴 수 있는 힘을 가지지 못하였고, 하루 아침에 왕위를 내어 놓으시기를 헌신짝 벗어버리듯 하시었으니, 대개 이 역시 고금의 제왕 중에 있지 아니한 일이다. 이제 우리 주상 전하께서 총명하시고 효제(孝悌)하시며, 온인(溫仁)하시고 근엄하시어서 일일이 모두 다 품(稟)하여 명령하심을 받으셔서 중대한 부탁을 잘 계승하시었으니, 이로써 전하의 근심을 없게 하신지라, 이것이 낙천정을 지으시게 한 까닭이다.
신이 이 정자를 둘러보니, 봄바람이 화창하게 불어오면 아름다운 꽃이 다투어 피게 되어 붉고 푸른 것이 가득하고, 뜨거운 볕이 쇠를 녹이고 대지가 타는 화로와 같을 적에는 맑은 바람이 자리에 차 있고, 가을이 강산을 물들이면 맑은 거울처럼 비치고 비단 병풍처럼 좌우에 둘려있고, 짙은 눈[雪]이 처음으로 개었을 때는 난간에 기대어서 눈을 들어 바라보면 천리 강산이 한 빛이라, 우리 전하께서 상왕을 모시고 주연을 베푸시고 말없이 즐기실 때, 주상 전하께서 앞에 모시고 응대하시면 형우 제공(兄友弟恭)하고 부자 자효(父慈子孝)하시어 화락하고 기꺼우니, 천하의 즐거움이 어찌 다시 이보다 더 즐거울 것이 있으랴. 대개 우리 전하께서 즐겨하시는 바는 천리이며, 즐겨하시지 않는 바는 천위(天位)061) 이니, 순임금이나 우임금이 즐겨하지 않던 것과 동일한 것이다. 그러나 종사와 생민의 큰 일이야 잠시인들 어찌 잊으셨겠는가. 저 소리개가 하늘에 날고, 고기가 늪에서 뛰는 것은 도[天理]의 나타남이요, 크게 펼쳐 있는 산과 깊은 데 고여있는 물은 인(仁)하고 지(智)한 이의 즐거워 하는 바이다. 현혼(玄渾)062) 이 위에서 운행함은 쉬지 않는 기운이 소소(昭昭)한 것이요, 방의(方儀)063) 가 아래에 정지해 있는 것은 후덕한 형상이 나타난 것이다. 우리 전하께서 즐겁게 이 정자에 오르시어 쳐다보시고 굽어보시는 사이에 그 즐거워하시는 것을 대체 어떻게 붓이나 입으로 그 만분의 일이라도 형용할 수 있겠는가. 신이 기록하는 것은 전하께서 천리를 즐거워하셔서 행하심을 그대로 보인 것뿐이니, 행하심이 그대로 보여진 것은 백관이나 만 백성이 다같이 아는 바이므로 그 보고 느낀 것이 천성의 순진함을 흥기시켜 각각 스스로가 그 어버이를 어버이로 모시고, 어른을 어른으로 모시어, 그것으로 인륜의 도를 다하고, 그것으로 전하의 즐거움을 즐거워하니 어찌 말리겠는가. 우리 조선의 풍속과 교화의 아름다운 것이 우(虞)나라와 주(周)나라에 같게 되고, 왕업의 영구함이 산이나 물[水]과 같이 오래도록 무궁할 것이니, 아아, 성대한 일이로다."
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35면
- 【분류】어문학-문학(文學) / 예술(藝術) / 역사-사학(史學)
- [註 053]이오(二五) : 음양 오행.
- [註 054]
천승(千乘) : 제후의 임금.- [註 055]
회안(懷安) : 태조의 넷째 아들(1364~1421). 이름은 방간(芳幹).- [註 056]
상(象) : 순의 아우.- [註 057]
사형(死刑) : 주공은 그 형을 죽였음.- [註 058]
기(杞) : 하(夏)의 후손.- [註 059]
송(宋) : 은(殷)의 후손.- [註 060]
내선(內禪) : 선(禪)은 임금의 자리를 전하여 준다는 말인데, 내선은 남이 아닌 동족에게 전위하는 것을 말함.- [註 061]
○先是, 卞季良承宣旨, 撰樂天亭記以進, 命權弘書刻板訖, 懸于樂天亭。 記曰:
樂天亭我上王殿下, 時觀游之所也。 殿下在位之十九年秋八月, 禪位于我主上殿下, 廼以農隙出游東郊, 有一丘焉, 高亢窮窿, 狀如覆釜, 名曰臺山。 登焉四顧, 則大江回塘, 縈紆演洋, 而連峯疊嶂, 秩見層出, 環丘來朝, 勢若星拱, 信乎天作之勝地矣。 殿下命建離宮於丘之艮隅, 取庇風雨, 遂作亭于丘上, 命左議政臣朴訔名亭, 訔取《易》 《繫》樂天二字以進, 蓋摠殿下行事之實, 而寓之於亭名, 且以志今日之樂也。 命臣季良, 作文以記之。 臣季良竊惟, 天者理而已矣, 樂則無所勉强, 而自然合理之謂也。 蓋無極之眞、二五之精, 妙合而凝, 人乃生焉, 則天理之賦於人者, 無不同。 雖然, 衆人之生, 氣稟駁矣、物欲蔽矣。 蔽欲勉强, 以循天理, 亦且不能, 況望其有自然合理也哉? 恭惟, 殿下天縱之資, 首出庶物, 淸明在躬, 德性常用, 是其所行, 莫非天理之流行矣。 嘗在潛邸, 慟神懿母后之薨, 則屛棄人事, 廬於齊陵之側矣。 前朝之季, 君昏相酷, 謀我太祖, 禍機甚迫, 則倡義開國, 推戴太祖於千乘之尊矣。 歲戊寅, 權臣乘我太祖之不豫, 挾幼構亂, 炳幾殲除, 安宗社也。 輿意推戴, 殿下當立, 讓于上王, 尊嫡長也。 卽位以來, 常以未能朝夕於太祖爲憂, 歲丙戌, 乃欲辭位, 以遂侍側之志也。 群臣死執不可, 太祖力止之。 越三年戊子, 太祖賓天, 不勝慟悼, 諒闇盡禮, 及其祔廟, 時方霖雨, 殿下軫念, 將事之夕, 天地開霽, 旣卒事三日而雨復作, 天之相夫孝誠也。 致愛敬於上王, 久而益篤, 則簡策所載, 古未有也。 釋懷安而不置於法, 則蓋遵大舜之全象, 而不願効周公之致辟也。 存王氏之後, 俾安生業, 則公天下國家天地之量, 卽湯、武革命, 存杞、宋之義也。 事大以禮, 則再受誥命, 而天子每稱殿下之至誠矣。 字小以仁, 則五十年之海寇, 頓顙納款而願爲臣僕矣。 至於處宮庭, 則雝雝其和; 承祭祀, 則肅肅其敬。 進用忠直, 黜退姦奢, 從諫好學, 崇儉節用, 謹天戒而恤民隱。 凡所存諸身心而現諸行事者, 粹然一循乎理, 而亦非有所勉强而行之, 蓋我殿下之天性然也。 二十年間, 四方寧一, 倉廩富實, 民無兵火, 天降甘露, 昇平之極, 前古所罕。 先儒所謂循天理, 則自無不利者, 其不信矣乎?
往歲內禪之擧, 春秋未至於倦勤; 疾病未至於廢事, 又非逼於勢而有所不得已也。 大小臣僚庭立痛哭者數日, 而竟不能効回天之力, 一朝辭位, 如脫屣然, 蓋亦古今帝王之所未有也。 今我主上殿下聰明孝悌, 溫仁勤儉, 事皆稟命, 以承付托之重, 可以紓殿下之憂矣, 樂天亭之所以作也。 臣觀夫玆亭也, 春風扇和, 佳卉爭發, 而紅綠敷披; 畏景流金, 大地烘爐, 而淸風滿座。 秋染江山, 則明鏡錦屛, 映帶左右; 密雪初霽, 憑軒擧目, 千里一色。 我殿下陪上王而置酒, 忘言相屬, 主上殿下周旋乎其間, 兄友弟恭, 父慈子孝, 愉愉如也。 天下之樂, 復有何樂加於此者哉? 蓋我殿下所樂者, 天理也; 所不樂者, 天位也。 與舜、禹之不與焉者同一揆矣, 而宗社生民之大計, 則豈肯頃刻而忘于懷也? 若夫鳶飛、魚躍於天淵者, 道之費也; 大畜之山、習坎之水, 仁智之所樂也。 玄渾之運於上也, 不息之氣昭矣; 方儀之靜於下也, 厚德之象著矣, 而我殿下怡然妙契於登覽俯仰之間, 而自樂其樂者, 則夫豈筆舌所可得而形容其萬一也哉? 臣所書者, 殿下樂天, 見諸行事之實也。 夫見諸行事之實, 臣庶之所共知也, 則其觀感興起於天性之眞, 而各親其親、各長其長, 以盡人倫之道, 以樂殿下之樂, 烏可已也? 我朝鮮風化之美, 比擬虞、周, 而王業之永, 直與丘山、江水倂久而無窮矣。 於戲盛哉!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35면
- 【분류】어문학-문학(文學) / 예술(藝術) / 역사-사학(史學)
- [註 0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