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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5권, 세종 1년 8월 19일 신묘 2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황제가 하사하는 연회의 절차를 정하다. 그 절차

하사하는 연회의 절차를 의논하여 정하였으니,

"1. 전하께서 어좌 앞에 나아가서 서북을 향하여 한 번 절하고 머리를 수그리되, 절하는 자리에는 자리를 펴지 않는다.

1. 사신의 앉는 자리는 북쪽 가까이 서향하여 마련하고, 전하의 앉는 자리는 남쪽으로 가까이 하여 동쪽을 향하여 마련한다.

1. 집사(執事)하는 여러 신하들도 꿇어 엎드리지 아니한다.

1. 술을 받은 뒤에는 남기어서 쏟아 버리지 않는다.

1. 가깝게 모시는 어린 내시 두서너 사람 외에는 들어가 시립하지 못하고, 들어가 시립하는 자도 손을 잡고 시립할 뿐 꿇어앉거나 엎드리지 못한다.

1. 사신 앞에 술과 음식을 드리는 자는 2품관(二品官) 두 사람이며, 전하께 술과 음식을 드리는 자는 역관 원민생이고, 주전자를 잡는 자는 두목 왕청이다.

1. 음악을 연주하는 데에는 우리 나라의 향악은 빼고, 오로지 《근천정(覲天庭)》·《수명명(受明命)》·《하황은(賀皇恩)》만을 쓰기로 하고, 창기(娼妓)나 악공들은 모두 서서 연주한다.

1. 연회할 때에는, 전하와 사신이 별로 말씀하지 않는다.

1. 연회가 파하면, 전하가 머리 숙여 절하는 예를 처음과 같이 하고, 먼저 물러나 궁으로 돌아가고, 사신도 뒤따라 나온다."

고 하였다. 이 날에 사신이 먼저 경복궁으로 나아가서 찬수를 검시하였는데, 실과(實果)상은 우리 나라 풍속을 따르고, 음식물은 두목이 감독하여 장만하였다. 사신이 사람을 보내어 상왕을 청하니, 상왕이 법식으로 거둥하는 절차를 갖추고 오니, 사신이 먼저 전상에 올라가 기다렸다. 상왕이 전상에 올라 예를 행하고, 자리에 나아가 앉고 잔치를 받을 때, 잔이 다섯 번 오가고 그쳤다. 예식이 끝나고 내려가서, 서쪽 뜰아래의 악차(幄次)로 들어갔다가, 찬수를 물린 뒤에 다시 전상으로 올라가, 사신과 차를 나누고 궁중으로 돌아가, 선양정(善養亭)에 납시어, 임금과 함께 작은 연회를 베푸니, 대비와 공비(恭妃)성비(誠妃)도 모두 각기 조그만 잔치를 베풀었다. 또 호조에 명하여, 의정부와 여러 군(君)들과 병조 당상과 삼군의 동지(同知)·총제(摠制) 이상과 거둥에 따라갔던 호조·예조 당상에게 음식물을 하사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33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 / 예술-음악(音樂)

○議定賜宴儀:

一, 殿下詣御座前, 向西北, 一拜叩頭, 拜位不設席。 一、使臣位近北西向, 殿下位近南東向。 一、執事諸臣, 不得跪伏。 一、受酒後, 毋得傾瀉殘滴。 一、近侍小宦二三人外, 毋得入侍。 入侍者斂手侍立, 毋得跪伏。 一、使臣前進酒饌, 二品官二人; 殿下前進酒饌, 譯語元閔生, 執尊頭目王淸。 一、奏樂除鄕樂, 專用《覲天庭》《受明命》《賀皇恩》, 娼妓工人, 俱立而奏。 一, 受宴時, 殿下與使臣別無說話。 一, 罷宴後, 殿下行叩頭禮如初, 先出還宮, 使臣隨後而出。

是日, 使臣先詣景福宮, 點視饌具。 果卓則從國俗, 饌物則頭目監辦。 使臣遣人請上王, 上王備法駕而至, 使臣先陞殿以待, 上王陞殿行禮, 就坐受享爵五行而止。 禮畢, 降就西階下幄次。 旣徹, 還陞殿, 與使臣行茶禮。 還宮御善養亭, 與上設小酌。 大妃、恭妃誠妃殿, 亦各設宴。 又命戶曹, 饋議政府及諸君、兵曹堂上、三軍同知摠制已上與隨駕戶禮曹堂上。


  • 【태백산사고본】 2책 5권 7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33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외교-명(明) / 예술-음악(音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