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세종실록4권, 세종 1년 6월 1일 갑술 4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도장을 구한 일본 서해로 축전주 평만경에게 답한 글

일본 서해로(西海路) 축전주(筑前州) 석성부(石城府) 관사(管事) 평만경(平萬景)이 사람을 보내어 토산물을 바치고, 인하여 만경(萬景)의 인자(印子)를 구하여 통호(通好)의 증거로 하려고 하니, 예조에 명하여 답서하기를,

"귀명(貴名)의 인자(印子)는 이미 새겨서 돌아가는 사신에게 부쳤다. 정우는 우리 나라에 머물면서 스승을 찾아 도(道)를 배우기를 원하므로, 임금이 명하여 흥천사에 머물게 하고, 인하여 안장 갖춘 말과 복종(僕從)을 준 것은 족하(足下)의 정성스러움을 중하게 여기는 까닭이다. 근일에 대마도의 적도들이 은혜를 저버리고 틈을 만들어 우리의 변경에 와서 도적질하고, 사람을 죽이고 물건을 빼앗아 가며 일본의 적인(賊人)이라 자칭하여 귀국의 이름을 더럽히니, 죄가 이보다 더 클 수 없다. 족하는 나라를 위하는 좋은 꾀로 위에 말한 적당들에게 엄하게 꾸지람을 하여 뒷날을 징계하고, 곧 이어 사로잡힌 사람은 모조리 돌려보내어 한 곳에 모여서 살게 하여, 〈이로 인하여〉 더욱 양국의 우호(友好)를 굳게 하는 것이 어찌 다행한 일이 아니겠는가."

라는 글을 주고, 호표(虎豹) 가죽 각 2장, 문채 놓은 꽃자리 10장, 명주 10필, 무명 50필을 주었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19면
  • 【분류】
    외교-왜(倭) / 왕실-사급(賜給)

    日本 西海路 筑前州 石城府管事(平萬京)〔平萬景〕 遣人來獻土物, 仍求萬景印子, 以爲通好之驗。 命禮曹報書曰:

    貴名印子, 已令雕造, 謹付回使。 正祐願留我國, 尋師學道, 上命住興天寺, 仍給鞍馬、僕從, 所以重足下之輸誠也。 近日對馬島賊徒背恩構釁, 寇我邊境, 殺掠人物, 自稱日本賊人, 以累貴國之名, 罪莫大焉。 足下爲國好謀, 將上項賊黨, 嚴加誅責, 以懲後來, 仍刷被虜人口, 發還完聚, 益堅兩國之好, 豈不幸哉?

    仍賜虎豹皮各二領、雜彩花席十張、紬布十匹、緜布五十匹。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11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19면
    • 【분류】
      외교-왜(倭)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