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4권, 세종 1년 5월 10일 갑인 7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왜적을 방비하지 못한 충청좌도 도만호 김성길이 참형당하다
충청좌도 도만호(左道都萬戶) 김성길(金成吉)이 참형 당하였다. 처음에 전라도 감사가 왜적이 경내를 지나간다 하여 빨리 알렸으나, 성길은 알고도 방비하지 아니하다가 패하기에 이르렀으니, 체복사(體覆使)가 벤 것이었다. 후에 해주 목사 박영이 한 왜인을 사로잡아 바치거늘, 병조가 물으니, 말하기를,
"나는 대마도에 사는 사람으로 섬사람들이 다 굶게 되어, 배 수십 척을 가지고 절강(浙江) 등지에서 노략질하려고 하였으나, 단지 양식이 떨어져서 우선 비인(庇仁)을 털고, 다음에 해주에 와서 도적질할 것을 엿보며, 물을 길으려고 조그만 배에 타고 언덕에 오르다가, 홀지에 관병(官兵)에게 사로잡혔고, 저희들 괴수는 도두음곶이를 털 때, 만호의 화살에 맞아 죽었다."
하였다. 성길이 처음에 비록 방비하지는 않았으나, 적을 만나면, 부자가 서로 힘껏 싸우다가 함께 죽으니, 사람들이 매우 슬퍼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4권 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15면
- 【분류】외교-왜(倭) / 사법-행형(行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