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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3권, 세종 1년 3월 27일 신미 5번째기사 1419년 명 영락(永樂) 17년

진주에 소속되었던 곤명을 남해현에 합하여 곤남군으로 승격시키다

진주(晉州)에 소속되었던 곤명현(昆明縣)남해현(南海縣)과 합하여 승격시켜 곤남군(昆南郡)을 만들었다. 처음에 왕의 태(胎)를 곤명 땅에 매안(埋安)하여, 곤명 사람들이 따로 고을을 설치하자는 주청이 있으므로, 경상도 감사에게 명하여 가부를 살펴서 알리라고 했던 것인데, 요새 와서 감사 신상(申商)이 계하기를,

"곤명남해현과 합하여 따로 한 고을을 설치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하고, 아울러 지도를 올렸다. 임금이 말하기를,

"지형으로 보면, 곤명이 당연히 남해와 합해야 하겠으나, 곤명을 빼앗아서 남해에게 주면, 진주 사람이 반드시 원통하다 할 것이니 어떻게 하느냐."

고 하니, 호조 판서 권진(權軫)·공조 판서 이적(李迹) 등이 아뢰기를,

"진주는 일찍이 대도호부(大都護府)로 승진되었는데 목(牧)으로 내려졌으니, 지금 어태(御胎)를 매안한 연고로써 다시 그전대로 올려 주는 것이 편의할 것 같습니다."

하였고, 원숙·김익정 등이 아뢰기를,

"곤명진주 사람의 횡포에 시달리어 따로 고을을 만들려고 한 적이 오래였고, 또 진주는 토지도 넓고 인물도 많아서, 남방의 으뜸을 차지하고 있으니, 백 호쯤 되는 곤명이 떨어져 나간다 해도 별 영향이 없을 것이며, 하물며 지금 어태를 그 땅에 매안하지 아니하였습니까. 곤명남해에 합쳐, 따로 곤남군을 만드는 것이 사리에 합당할 줄 아옵니다."

하였다. 임금이 원숙 등의 제안에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09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종사(宗社)

    ○以晋州屬縣昆明, 合於南海縣, 陞爲昆南郡。 初, 安御胎于昆明之地, 昆明人請別置邑, 乃命慶尙道監司, 審視可否以聞。 至是, 監司申商啓: "宜合昆明南海縣, 別置一邑。" 幷地圖以進。 上曰: "以勢觀之, 昆明當合南海, 然奪昆明南海, 則人必訴冤, 奈何?" 戶曹判書權軫、工曹參判李迹等曰: "晋州嘗陞爲大都護府, 而降爲牧。 今以安胎之故, 復陞其號爲便。" 元肅金益精等曰: "昆明困於人侵暴, 思別爲邑久矣。 且之爲州, 土地之廣、人物之多, 爲南州最, 雖減昆明百戶, 不是瘠矣, 況今御胎安於其地乎? 合昆明南海, 別爲昆南郡, 庶合事宜。" 上從等議。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2책 309면
    • 【분류】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왕실-종사(宗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