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왕이 임금과 함께 해청 날리는 것을 보고, 잔치하며 노이 이양명 등을 말하다
상왕이 임금과 더불어 동교(東郊)에 나아가서 해청(海靑)을 날리는 것을 구경하는데, 하도 날래어 놓아 주면 바로 곧 새들을 잡아 오니, 상왕이 무척 진귀하게 여겼다. 낙천정에서 술을 마시는데, 종척(宗戚)과 대신들이 차례로 잔을 올렸다. 상왕은 조말생과 원숙을 불러 들여 앞으로 나오게 하고 말하기를,
"지나간 을미년에 서쪽을 순행하려 하는데, 허조는 ‘아뢸 말씀이 있으니, 옆 사람을 물리쳐 달라.’ 하고, 눈물을 흘리며 하는 말이, ‘서쪽에 가실 일을 정지하시고, 또 노이(盧異)를 써 주시옵소서.’ 하였다. 그의 지극한 충성이 말과 얼굴에 나타나기로, 나는 서쪽 걸음을 정지하겠다고 했으나, 중론이, ‘지공(支供) 범절(凡節)이 이미 준비되어 있으니, 중지할 수 없다. ’고 하여, 마침내 좇지 못했었고, 노이의 일은 내가 그 자상한 내용을 말했더니, 허조도 역시 수긍하였다. 처음 노이가 정언(正言)이 되었을 적에 좌중에다 말을 펼치며, 나를 남의 처첩(妻妾)이나 빼앗은 사람으로 만드니, 사간(司諫) 안성(安省)이 듣고 와서 아뢰므로, 나는 ‘내가 만약 이런 일이 있었다면, 저 하늘의 해가 굽어본다. ’고 말한 일이 있었다."
고 하였다. 좌의정 박은·곡산군(谷山君) 연사종(延嗣宗) 등이 아뢰기를,
"신들은 이런 일을 알지 못했습니다. 청컨대 그 연유를 문초하시옵소서."
고 하니, 상왕이 말하기를,
"무슨 말인가. 오늘 이런 말을 한 것은 다름 아니라, 말을 날조해 낸 자를 알아내어, 노이를 등용하려는 때문이다. 그 때 박석명(朴錫命)으로 하여금 문초한 결과, 노이는 죄를 시인했지만, 그러나 반드시 말을 날조해 낸 자가 있었을 것이니, 그렇다면 노이의 죄가 아니다. 내가 즉위한 이래로 착한 사람이 있다는 말을 들으면, 반드시 등용했는데, 노이나 이양명(李陽明)은 사람들이 다 착하다고 칭하는데도, 등용하지 못했으니, 이 일은 나의 평생의 한이다. 마땅히 불러서 사유를 들어 보아야 되겠는데, 노이는 지금 어데 있으며, 그때 낭사(郞舍)는 누구던가."
하니, 조말생이 답하여 아뢰기를,
"노이는 지금 합천(陜川)에 있사옵고, 그 때의 낭사는 신효(申曉)·안성(安省)·조휴(趙休)·박초(朴礎)들이었습니다."
하였다. 상왕은 또 말하기를,
"이양명이 헌납(獻納)으로 있던 시절에, 이지직(李之直)·전가식(田可植) 등이 민씨의 부탁을 받아 말을 펼치되, 나에게 ‘응견(鷹犬)·성색(聲色)을 좋아한다.’ 하며, ‘장차 간해야겠다. ’고 하니, 이양명은 말하기를, ‘부모의 끼쳐 준 몸을 각각 스스로 아껴야 하는 것이니, 마땅히 먼저 언관(言官)에게는 죄를 주지 않는다는 법부터 마련하고서 간해야 한다. ’고 했다는 것이다. 그 생각이 만약 간한다면, 반드시 시비도 가리지 않고 바로 형벌을 가할 것으로 안 것이니, 이는 나를 북방의 야인(野人)과 같이 본 것이다. 어찌 임금을 사랑하는 뜻이 있다고 하겠는가. 내 집안이 대대로 활쏘기를 익혔지만, 그러나 나는 나이 25세 때야 비로소 매사냥을 알았을 뿐이요, 개나 성색은 나의 좋아하는 바가 아니다. 다만 그 때 새로 권 궁주(權宮主)를 들여 앉힌 때문에, 민씨가 이지직 등을 사주하여 간하게 했던 것이다. 전가식을 대질 심문한 결과, ‘민무구(閔無咎) 등의 사주를 받았다. ’고 하므로, 나는 그 실정을 알게 되었다. 이지직은 사람됨이 비록 순량하나, 죄가 전가식과 같으므로 쓰지 아니했고, 이양명은 마음씨가 비록 틀어졌지만, 나는 등용해서 벼슬이 4품에 이르렀다. 이양명은 지금 어데 있는가."
하였다. 원숙이 답하여 아뢰기를,
"행주(幸州)에 있사옵니다."
하니, 상왕이 말하기를,
"불러오라. 내가 장차 다시 물어보겠다."
고 하였다. 상왕이 또 말하기를,
"대사헌은 중직(重職)이니, 형조 판서로 하여금 겸직하게 할까 한다."
고 하니, 좌우가 모두
"당연하다."
고 하였다. 상왕은 또 말하기를,
"이래(李來)가 대사헌이 되었을 때, 이백온(李伯溫)이 살인(殺人)을 하니, 이래는 소유(所由)로 하여금 옷을 벗겨 잡아 오게 하였다. 이백온은 왕의 지친인데, 아뢰지도 않고 갑작스레 욕을 보였기로, 나는 그 무례한 행동이 미워서 그 사무를 관장한 지평(持平) 이흡(李洽)을 포박하여 옥에 가두었었다. 이는 내 평생 부끄럽고 한되는 일이다."
하고, 또 말하기를,
"김여지(金汝知)가 지신사가 되었다가 왕걸우음[王巨乙于音]의 사건으로 파직되었으나, 그의 사람됨이 말이 둔하고 성품이 곧아 주창(朱昌)의 풍도가 있었다."
하였고, 또 말하기를,
"좌의정이 연전에 큰 일을 당하였을 적에 사부(師傅)로서 혐의를 들어 사퇴하지 않고 하는 말이, ‘신은 비록 사부의 직을 띠고 있지만, 보도(輔導)한 일이 없는데, 신이 무엇 때문에 혐의를 들겠습니까.’ 하고, 바로 와서 의결하였으므로, 나는 매우 아름답게 생각한다."
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0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인사-관리(管理)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己巳/上王與上幸東郊, 觀放海靑, 鷙甚, 放輒獲禽, 上王甚珍之。 置酒于樂天亭, 宗戚、大臣以次進爵, 上王召趙末生、元肅就前曰: "昔歲乙未, 將欲西幸, 許稠請辟人涕泣以啓曰: ‘願停西幸, 且用盧異。’ 其忠愛之至, 見於言貌。 予許停西幸; 然衆議皆謂, 支應諸事已備, 不可中止, 竟不敢從也。 盧異之事, 予言其詳, 稠亦然之。 初, 異之爲正言也, 揚言於坐, 以予爲奪人妻妾, 司諫安省來啓, 予若有是事, 有如天日。" 左議政朴訔、谷山君 延嗣宗等啓曰: "臣等未知如此, 今始聞之, 請鞫問其由。" 上王曰: "是何言歟? 今日之言, 無他, 欲得造言者而用異耳。 其時使朴錫命問之, 異乃伏罪。 然必有造言者, 然則非異之罪也。 予卽位以來, 聞有善人, 則必用之。 異與李陽明, 人皆稱善, 而不能用, 此予平生之恨也, 宜召聞之。 異今在何處, 其時郞舍誰歟?" 末生對曰: "異今在陜川, 其時郞舍, 申曉、安省、趙休、朴礎是也。" 上王又曰: "陽明爲獻納時, 李之直、田可植等承閔氏之指, 揚言謂予爲好鷹犬聲色, 將諫之, 陽明曰: ‘父母遺體, 宜各自惜。 當先請立勿罪言官之法, 然後可諫。’ 其心以爲, 若諫則必不分是非, 遽加刑戮也。 是以, 北方野人輩視我也, 豈有愛君之意? 吾家世習弓矢, 然吾年至二十五, 始知鷹事, 其犬與聲色, 非吾所好, 但其時新納權宮主, 閔氏乃嗾之直等諫之。 可植對問云: ‘受無咎等所嗾。’ 予以故, 知其實焉。 之直爲人雖良, 罪同可植不用, 陽明其心雖曲, 予乃用之, 官至四品。 陽明今在何處?" 元肅對曰: "在幸州。" 上王曰: "其召之, 予將更問。" 上王又曰: "大司憲, 重選也。 欲以省宰兼之。" 左右皆曰: "可。" 上王又曰: "李來爲大司憲, 以李伯溫殺人, 令所由、赤脫拿來。 伯溫, 王親也, 不啓而遽辱之。 疾其無禮, 吾亦縛其掌務持平李洽下獄, 此吾平生所愧恨者也。" 又曰: "金汝知爲知申事, 以王巨乙于音事罷黜, 然其爲人, 語鈍性直, 有朱昌之風。" 又曰: "左議政當前年大事, 不以師傅引嫌辭退, 乃曰: ‘臣雖職帶師傅, 無與輔導之來, 臣何嫌爲?’ 卽來決議, 予甚嘉之。"
- 【태백산사고본】 2책 3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2책 309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인사-관리(管理)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