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왕이 유정현 등을 불러 빈과 잉첩을 더 들일 뜻을 말하다
상왕이 유정현·박은·이원·조말생·허조·하연을 불러 전교하기를,
"한(漢)나라 고조(高祖)는 영명(英明)한 임금이다. 혜제(惠帝)에게 재위(帝位)를 전하였는데, 혜제의 천성이 인자(仁慈)하고 유약하여, 인체(人彘)131) 를 보고는 병을 얻어 마침내 여씨(呂氏)의 난(亂)을 빚어내게 하였으니, 만약 주발(周勃)이 아니었다면 한나라의 국운은 어찌 되었을지 알 수 없을 것이며, 혜제가 또 후사(後嗣)가 없었으므로, 국운(國運)이 심히 위태로웠다. 임금의 계사(繼嗣)는 많이 두지 않으면 안 될 것이매, 내가 지난 해에 예관(禮官)의 청으로 인하여, 3, 4명의 빈(嬪)과 잉첩(媵妾)을 들였으니, 그들의 아버지인 권홍(權弘)·김구덕(金九德)·노귀산(盧龜山)·김점(金漸) 등의 왕실(王室)에 향하는 마음이 반드시 다른 신하와는 달랐다. 한편으론 계사를 많이 두고, 한편으론 여러 사람의 도움을 얻게 되며, 또 옛날의 한 번 혼인에 아홉 여자를 취한다는 뜻에도 맞는다. 지금 주상이 정궁(正宮)에 세 아들이 있지마는, 그러나 더 많으면 더욱 좋을 것이다."
하니, 유정현이 대답하기를,
"예로부터 제왕은 자손이 번성한 것을 귀하게 여겼으니, 빈(嬪)과 잉첩(媵妾) 2, 3명을 들이기를 청합니다."
고 하였다. 상왕이 말하기를,
"이 일은 주상이 알 바가 아니니, 내가 마땅히 주장할 것이다."
하고, 인하여 예조에 명하여 가례색(嘉禮色)의 제조(提調)·별좌(別坐)를 선임(選任)하여 아뢰게 하였다. 박은 등이 상왕의 앞에 모시고 앉았다가 박은이 말을 하는 김에 아뢰기를,
"궁중(宮中)이 적막합니다."
고 하니, 그 뜻은 대개 중궁(中宮)을 마땅히 폐(廢)할 것을 말함이다. 상왕이 그 뜻을 알고 말하기를,
"내가 이미 경의 뜻을 알았다."
고 하였다. 의금부 제조(義禁府提調) 등이 수강궁에 나아가서 중궁을 폐하기를 청하니, 상왕이 말하기를,
"평민의 딸도 시집을 가면 〈친정 가족에〉 연좌되지 않는 법인데, 하물며 심씨(沈氏)는 이미 왕비가 되었으니, 어찌 감히 폐출(廢黜)하겠는가. 경들의 말이 옳지 못한 것 같다."
고 하고, 인하여 임금에게 말하기를,
"죄인의 딸인 까닭으로 외인(外人)이 반드시 이를 의심하지마는, 그러나 이것이 어찌 법관(法官)이 마땅히 청할 바이겠느냐."
고 하니, 조말생·원숙·장윤화 등이 대답하기를,
"만약 형률(刑律)로써 논하오면 상교(上敎)가 옳습니다. 그러나 주상의 처지에서 논한다면, 심온은 곧 부왕(父王)의 원수이니, 어찌 그 딸로써 중궁(中宮)에 자리를 잡고 있도록 하겠습니까. 은정(恩情)을 끊어 후세(後世)에 법을 남겨두시기를 청합니다."
하니, 상왕이 대답하지 않았다. 박은이 또 병조에 나아가서 당상관(堂上官)에게 이르기를,
"그 아버지가 죄가 있으니, 그 딸이 마땅히 왕비로 있을 수 없다."
고 하였다. 상왕이 이 말을 듣고 이에 유정현·허조·허지와 의정부 당상관을 불러 보고 말하기를,
"《경(經)》132) 에, ‘형벌은 아들에게도 미치지 않는다.’ 하였으니, 하물며 딸에게 미치겠느냐. 그전의 민씨(閔氏)의 일도 또한 불충(不忠)이 되었으나, 그 당시에 있어서는 왕비를 폐하고 새로 왕비를 맞아 세우자고 의논한 사람이 하나도 없었는데, 지금은 어찌 이 지경에 이르렀느냐. 내가 전일에 가례색(嘉禮色)을 세우라고 명한 것은 빈(嬪)과 잉첩(媵妾)을 뽑으려고 한 것뿐이다."
하니, 유정현은 대답하지 않고, 박은이 아뢰기를,
"신 등도 또한 금지 옥엽(金枝玉葉)이 이와 같이 번성하오니, 왕비를 폐하고 새로 세우고 하는 일은 경솔히 의논할 수 없으니, 빈과 잉첩을 갖추게 하고자 함이 심히 마땅합니다."
고 하였다. 허조는 아뢰기를,
"빈과 잉첩을 갖추고자 함은 신도 역시 마땅히 두 성씨(姓氏)를 맞아 들여야 될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니, 상왕이 매우 기뻐하였으며, 인하여 혼가(婚嫁)를 금하도록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88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사법-재판(裁判) / 사법-법제(法制) / 역사-고사(故事)
○上王召柳廷顯、朴訔、李原、趙末生、許稠、河演傳旨曰: "漢 高祖, 英主也。 傳位於惠帝, 惠帝性仁柔, 見人彘得疾, 終致呂氏之亂。 若非周勃, 漢祚未可知也, 而惠又無嗣, 國步甚危, 人君繼嗣, 不可不廣。 予往年因禮官之請, 納三四嬪媵, 其父如權弘、金九德、盧龜山、金漸等向王室之心, 必異於他臣矣。 一以廣繼嗣, 一以得衆人之助, 且合於古者一娶九女之義。 今主上於正宮有三子, 然加多則尤好也。" 廷顯對曰: "自古帝王以嗣胤蕃茂爲貴, 請納嬪媵二三。" 上王曰: "此事非主上所知, 予當主之。" 仍命禮曹選嘉禮色提調別坐以啓。 訔等侍坐上王前, 訔因語次啓曰: "宮中寂寞。" 其意蓋謂當廢中宮。 上王知其意曰: "我已知卿意。" 義禁府提調等詣壽康宮, 請廢中宮, 上王曰: "平民之女, 亦許嫁, 則不緣坐, 況沈氏旣爲王妃, 何敢廢黜? 諸卿之言, 似爲未便。" 仍謂上曰: "罪人之女, 故外人必疑之, 然此豈刑官所宜請也?" 趙末生、元肅、張允和等對曰: "若以律論之, 則上敎是矣。 然以主上論之, 則溫乃父王之讎也。 豈可以其女, 正位中宮乎? 請割恩以垂後法。" 上王不答。 訔又詣兵曹, 謂堂上官曰: "其父有罪, 其女不當立。" 上王聞之, 乃召見柳廷顯、許稠、許遲、議政府堂上曰: "《經》云: ‘罰不及嗣。’ 況女子乎? 前昔閔氏之事, 亦爲不忠, 在當時無一議廢立者, 今何至此乎? 予前命立嘉禮色者, 欲以備嬪媵耳。" 廷顯不對, 訔曰: "臣等亦謂金枝玉葉如此蕃衍, 廢立之事不可輕議, 欲備嬪媵甚當。" 稠啓曰: "欲備嬪媵, 臣亦以爲當納二氏。" 上王甚喜, 因命禁婚娶。
- 【태백산사고본】 1책 2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88면
- 【분류】왕실-비빈(妃嬪) / 사법-재판(裁判) / 사법-법제(法制)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