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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36권, 태종 18년 11월 8일 갑인 2번째기사 1418년 명 영락(永樂) 16년

금상 3년 문무 백관이 존호를 더하기를 청하는 전문을 바치다

금상(今上)549) 3년 신축년(辛丑年)550) 9월 초7일[丁卯]에 의정부에서는 참찬(參贊) 변계량(卞季良)을 시키고, 육조(六曹)에서는 예조 참판(禮曹參判) 하연(河演)을 시켜서 낙천정(樂天亭)에 나아가서 문무 백관이 존호(尊號)를 더하여 올리기를 청(請)하는 전문(箋文)을 바쳤는데, 전문(箋文)은 이러하였다.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신(臣) 유정현(柳廷顯) 등이 삼가 목욕 재계(沐浴齋戒)하고 계수(稽首)하여 전(箋)을 성덕 신공 상왕 전하(聖德神功上王殿下)에게 올립니다. 신(臣) 유정현(柳廷顯) 등은 그윽이 엎드려 생각하건대, 지난해 봄에 주상 전하께서 신 등을 거느리고 상언(上言)하여 휘호(徽號)를 높이도록 청하였으나, 유윤을 받지 못하였고, 이어서 큰 상고(喪故)가 있어서 천연(遷延)하여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욕례(縟禮)551) 를 궐하였으므로, 신 등의 마음이 겸연(慊然)하더니, 근래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 상제(喪制)를 장차 끝마치게 되었으므로 감히 지난해의 청을 아룁니다. 전하께서 겸양(謙讓)하고 억손(抑損)552) 하시어 신 등의 정성을 이루지 못하게 하시니, 신 등은 두렵고 황송하여 몸둘 바가 없으므로 다시 비천한 소견을 진술합니다. 신 등은 간절히 생각건대, 제왕(帝王)의 도(道)는 곽연(廓然)553) 히 크고 공정하여 사람들을 따르는 것으로 마음을 정할 뿐입니다. 사람을 따르는 것으로 마음을 정하는 것이 곧 하늘을 따르는 것입니다. 하늘이 보는 것은 우리 백성의 보는 것에서 비롯되고, 하늘이 듣는 것은 우리 백성의 듣는 것에서 비롯됩니다. 그러므로 백성이 하고자 하는 것을 하늘이 반드시 따른다는 것은 이것을 두고 이르는 것입니다. 이제 전하께서 겸손을 고집하고 굳이 사양하시니, 신 등의 어리석은 의혹이 어찌 할 바를 알지 못하고 청하여 이를 아뢰는 것입니다. 공손히 생각하건대, 전하께서는 개국(開國)하여 어버이를 높이시고 정사(定社)하여 형님에게 왕위를 사양하였으니, 공덕의 성함이 진실로 이미 지극하였으며, 사대(事大)하기를 예(禮)로 하시어 두 번이나 고명(誥命)을 받았으며, 교린(交隣)하기를 도(道)로 하시니, 해구(海寇)가 복종(服從)하였습니다. 조종(祖宗)을 높여서 제사하기를 살아 계신 것같이 하시니 지극한 공경이시며, 고려 왕씨(王氏)의 후예를 남겨두어 그들로 하여금 드디어 그 생을 누리게 하시니 지극한 인(仁)입니다. 간사한 이를 물리쳐 쫓아내고 충직(忠直)한 이를 등용하며, 검소함을 숭상하고 사치함을 물리치시며, 덕(德)과 예(禮)를 먼저 하시고 형벌을 뒤에 하시며, 천재(天災)를 두려워하고 백성의 숨은 사정을 불쌍히 여기시며, 만기(萬機)의 여가에 경사(經史)를 즐겨 보시어 힘써 게을리하지 않으시니, 18년 동안 사방이 한결같이 평안하고 전쟁이 일어나지 않아서 인민들은 생업(生業)을 즐기고, 하늘은 감로(甘露)를 내렸습니다. 전하의 공덕(功德)이 백왕(百王)에 으뜸이시고, 천고(千古)에 뛰어났다 하여도 아첨하는 말이 아닐 것입니다. 신 등이 다행히 이런 때에 나서, 전하의 하늘과 같이 덮어 주고 땅과 같이 실어 주는 홍은(洪恩)을 깊이 입었으니, 달리 조그만큼이라도 조금도 우러러 보답할 길이 없습니다.

또 능히 전하의 휘호(徽號)를 높이지 않아서 전하의 성대하고 아름다운 공덕(功德)으로 하여금 어둠 속에서 빛나지 못하게 가리워져 드러나지 못하게 하면, 천지(天地)와 종묘(宗廟)·사직(社稷)에 고할 수가 없고, 신료(臣僚)와 뭇 백성들에게 보일 수가 없고, 또 사책(史冊)에 실어서 만세에 전할 수 없으니, 신 등의 죄가 큰 것입니다. 이것이 간절히 바라고 마음을 졸이어 밥먹을 때를 당하여 먹기를 잊고, 잠잘 때에 잠을 이루지 못하는 까닭입니다. 또 더구나 주상 전하의 지극한 효성은 천성(天性)에서 나오는데, 성전(盛典)을 거행하지 못하고서 태후(太后)의 선유(仙遊)554) 가 심히 절박하여, 주상 전하께서 길이 세상이 끝날 때까지 망극(罔極)한 슬픔을 품으시게 되었습니다.

아아, 슬프다! 이제 전하께서 곽연(廓然)히 크고 공정하시어 예절에 통달하고 겸양을 지키지 마시고, 책례(冊禮)를 빛내게 받으시고 홍명(鴻名)을 용납하여서 태조의 성헌(成憲)을 따르신다면, 어찌 주상 전하의 망극(罔極)한 슬픔을 위로함이 있지 않겠습니까? 반드시 장차 감격하고 기뻐하여 마지 않을 것입니다. 또 전하께서 태조(太祖)를 높이시는 마음은 곧 이제 우리 주상 전하가 전하를 높이시는 마음입니다. 전하가 태조에게 이미 그 존숭(尊崇)하는 호(號)를 극진히 하였으니, 주상이 전하에게 어찌 그 존호(尊號)를 극진히 못할 이치가 있겠습니까? 전하가 두세 차례나 겸양(謙讓)하여 우리 주상 전하의 효성으로 하여금 답답하게 하여 펴지 못하게 하였는데, 이것이 더욱 대소 신료(大小臣僚)들이 시끄럽게 굴면서 그칠 줄 모르는 까닭입니다. 엎드려 생각건대, 전하께서 패연(霈然)히 생각을 돌려서 공의(公義)를 굽어 따라 천지와 종묘·사직의 마음을 순하게 하고, 주상 전하의 효성을 위로하시고, 진실로 신료(臣僚)와 뭇 백성들의 지극한 소망에 응답하시면, 공도(公道)에 심히 다행하겠고 만세(萬世)에 심히 다행하겠으므로, 신 등은 하는 일 없이 구구하게 굴면서 간곡한 지성으로 삼가 전(箋)을 받들어 굳이 청하여 아뢰는 것입니다."

상왕이 이에 허락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6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48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

  • [註 549]
    금상(今上) : 세종 대왕(世宗大王).
  • [註 550]
    신축년(辛丑年) : 1421년.
  • [註 551]
    욕례(縟禮) : 성대하고 까다로운 예절.
  • [註 552]
    억손(抑損) : 거만을 억제하고 겸손함.
  • [註 553]
    곽연(廓然) : 넓고 거리낌이 없는 모양.
  • [註 554]
    선유(仙遊) : 귀인의 죽음을 일컫는 말.

○今上三年辛丑九月丁卯, 議政府使參贊卞季良, 六曹使禮曹參判河演, 詣樂天亭, 進文武百官請加上尊號箋。 箋曰:

領議政府事臣柳廷顯等謹齋沐稽首, 上箋于聖德神功上王殿下。 臣廷顯等竊伏惟念, 往歲之春, 主上殿下率臣等上言, 請崇徽號, 未蒙兪允, 繼有大故, 遷延至今, 縟禮闕焉, 臣心慊然。 近以主上殿下憂制將終, 敢申往歲之請。 殿下謙沖抑損, 使臣等之誠未遂, 臣等兢惶無措, 復陳卑抱。 臣等竊謂, 帝王之道廓然大公, 以順人爲心而已。 順人爲心, 卽所以順天也。 天視自我民視, 天聽自我民聽, 故民之所欲, 天必從之, 此之謂也。 今殿下執謙固讓, 臣等愚惑, 罔知所爲, 請得而申之。

恭惟, 殿下開國以尊親, 定社而讓兄, 功德之盛, 固已至矣。 事大以禮, 而再受誥命; 交隣以道, 則海寇賓服。 尊祖宗而祭如在, 至敬也; 存王氏之後, 俾遂其生, 至仁也。 姦邪擯黜, 而忠直登用; 儉素是崇, 而奢靡是斥。 先德禮而後刑罰; 懼天災而恤民隱。 萬機之暇, 樂觀經史, 亹亹不倦。 十八年間, 四方寧一, 兵戎不興, 人民樂業, 天降甘露。 殿下之功德, 冠冕乎百王, 軼越乎千古, 非諛言也。

臣等幸生此時, 深荷殿下天覆地載之洪恩, 他無以仰報絲毫之萬一, 又不能崇殿下之徽號, 使殿下之盛美闇而不彰, 蔽而不揚, 則無以告天地、宗社; 無以示臣僚衆庶, 又無以垂諸史冊, 而傳之萬世, 臣罪大矣。 此所以拳拳顒顒, 當食忘飱, 寢不能寐者也。 又況主上殿下之至孝, 出於天性, 盛典未擧, 而太后之仙遊甚迫, 主上殿下永抱終天罔極之悲矣。 嗚呼痛哉!

今殿下廓然而大公, 達節而不守, 光膺冊禮, 容受鴻名, 以遵太祖之成憲, 則豈不有以慰夫主上殿下罔極之悲, 必將至於感激歡欣而不能已矣。 且殿下尊崇太祖之心, 卽今我主上殿下尊崇殿下之心也。 殿下於太祖則旣極其尊崇之號矣, 主上於殿下, 安有不得極其尊號之理乎? 而殿下謙讓再三, 使我主上殿下之孝誠, 鬱而未得伸焉, 此尤大小臣僚, 所以嗷嗷而不知止者也。 伏惟, 殿下霈然回慮, 俯從公義, 以順天地、宗社之心, 以慰主上殿下之孝誠, 以答臣僚衆庶之至望, 公道幸甚, 萬世幸甚。 臣等無任區區悃懇之至, 謹奉箋固請以聞。

上王乃許之。


  • 【태백산사고본】 16책 36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48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어문학-문학(文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