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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36권, 태종 18년 8월 10일 정해 1번째기사 1418년 명 영락(永樂) 16년

왕세자가 내선을 받고 근정전에서 즉위하다

왕세자가 내선(內禪)을 받고 근정전(勤政殿)에서 즉위하였다. 임금이 최한(崔閑)을 보내어 승여(乘輿)와 의장(儀仗)을 보내고, 또 명하여 궐내(闕內)에 시위(侍衛)하던 사금(司禁)·운검(雲劍)527) ·비신(備身)·홀배(笏陪)528) 를 보내어 왕세자를 맞이하여 오게 하였다. 세자가 이에 최한(崔閑)으로 하여금 사양하기를 청하게 하고 오장(烏杖)과 청양산(靑陽傘)으로 전(殿)에 나아가니, 임금이 내신(內臣)을 시켜 이를 보게 하고 노하여.

"명을 따르지 않으려거든 오지 말라."

하니, 세자가 마지 못하여 주장(朱杖)과 홍양산(紅陽傘)으로 앞을 인도하게 하여 왔다. 임금이 세자를 불러들이니, 세자가 친히 소매에서 사전(辭箋)529) 을 바쳤는데, 그 글은 이러하였다.

"신이 성품과 자질이 어리석고 노둔(魯鈍)하며 학문이 이루어지지 못하여 위정(爲政)하는 방도를 몽연(懜然)히 깨닫지 못하고, 저부(儲副)530) 의 지위에 외람되이 거(居)하니, 이른 아침부터 밤 늦게까지 걱정하고 근심하여 오히려 그 자리에 합당하지 못할까 두려운데, 어찌 오늘이 있으리라 헤아렸겠습니까? 이에 왕위를 부탁하여 내려 주시는 어명(御命)이 있으시니, 일이 뜻밖에 나온 것으므로 정신이 없어 몸둘 곳이 없습니다. 삼가 생각하건대, 주상 전하(主上殿下)께서는 춘추가 바야흐로 한창이시고, 성덕(聖德)이 바야흐로 융성하신데 갑자기 만기(萬機)531) 를 귀찮아 하시고, 종묘(宗廟)·사직(社稷)의 중책을 어리석은 이 몸에 맡기고자 하시니, 어찌 오직 신자의 마음에 두렵고 황송함이 갑절이나 더하지 않겠습니까? 진실로 조종(祖宗)의 영(靈)이 경동(驚動)할까 두렵습나다. 또 나라를 서로 전(傳)하는 일은 실로 오직 나라의 대사(大事)인데, 모두 갑자기 이와 같이 한다면 중외(中外)의 신하와 백성들이 놀라지 않음이 없을 것입니다. 거듭 생각하건대, 전하께서 신(臣)을 세워 후사(後嗣)로 삼을 때에도 오히려 감히 마음대로 하지 못하고 천자(天子)에게 아뢰었는데, 더구나 군국(軍國)의 중함을 신에게 마음대로 주시니, 신이 사대(事大)의 예를 또한 잃을까 두렵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 어리석은 신의 지극한 정을 살피시고 국가의 대계(大計)를 생각하여서 종사(宗社)와 신민(臣民)들의 소망을 위로하소서."

임금이 윤허하지 않으니, 그때 정부·육조(六曹)·삼군 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문무 백관(文武百官) 및 전함(前銜) 2품 이상이 모두 전문(殿門)에 나아가니, 문을 지키는 갑사(甲士)가 막아서 지키고 들이지 않았다. 유정현(柳廷顯)이 문지기를 꾸짖고 들어가려고 하였으나, 문지기가 굳게 막았다. 유정현이 문을 밀치고 들어가니, 군신(群臣)들이 전정(殿庭)에 따라 들어와 복위(復位)하기를 굳이 청하면서 호곡(呼哭)하여 마지않았다. 임금이 좌대언(左代言) 하연(河演)·도진무(都鎭撫) 이춘생(李春生)에게 명하여 갑사로 하여금 중문(中門)을 굳게 지키게 하여 대소 신료(大小臣僚)가 들어오는 것을 금지하였다. 임금이 한상경(韓尙敬)·박은(朴訔)·이원(李原)과 육조 판서(六曹判書)에게 명하여 새 임금이 즉위하는 모든 일을 같이 의논하게 하였다. 박은이,

"전하께서 군신(群臣)의 청을 굳이 거절하니, 어찌할 것인가? 어찌할 것인가?"

하고, 그 형세가 마침내 청을 얻지 못하면, 육조(六曹)와 더불어 즉위(卽位)할 여러 일을 의논하려고 하였다. 성석린(成石璘)·유정현(柳廷顯)과 군신(群臣)들이 또 중문(中門)을 헤치고 내정(內庭)에 들어가 호곡(呼哭)하니, 그 소리가 어좌(御座)에까지 들렸다. 임금이 효령 대군(孝寧大君)으로 하여금 명(命)을 전(傳)하기를,

"내가 이성(異姓)의 임금에게 전위한다면 경들의 청이 옳겠지만, 내가 아들에게 전위하는데, 어찌 이와 같이 하는가? 지난번에 내가 전 세자(世子)에게 전위하여 하였으나, 그러나 아들을 아는 것은 아비와 같은 이가 없으므로 내가 제(禔)의 불선(不善)한 것을 알았던 까닭으로 전위하지 않았다가 이제 전위하는 것이니, 청하지 말라."

하니, 군신(群臣)들은 더욱 통곡하면서 물러가지 않았다. 김점(金漸)이,

"전하의 이러한 거론(擧論)은 전하와 세자에게 있어서 다같이 실덕(失德)함이 있습니다. 왜냐 하면 신이 중국에 봉명 사신(奉命使臣)으로 갔을 때 황제가 전하에 대하여 권고(眷顧)하는 마음이 간곡하여 마지 않았습니다. 원민생(元閔生)이 세자를 세우는 청을 가지고 이제 아직도 반명(反命)532) 하지 않았는데, 전하께서 하루 아침에 왕위를 물러나시고 세자가 하루 아침에 즉위한다면, 황제의 마음이 어떠하겠습니까? 이것이 모두 실덕(失德)함이 있는 까닭입니다. 청컨대, 우선 원민생이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모두 윤허하지 않고, 친히 충천 각모(衝天角帽)533) 를 세자에게 씌워주고, 드디어, 세자로 하여금 국왕의 의장(儀仗)을 갖추어 경복궁(景福宮)에 가서 즉위(卽位)하게 하였다. 왕세자가 부득이하여 명(命)을 받고 내문(內門)을 열라고 명하여 나와서 말하기를,

"내가 어리고 어리석어 큰 일을 감당하기가 어려우므로, 지성으로 사양하기를 청하였으나, 마침내 윤허를 받지 못하고, 부득이하여 경복궁으로 돌아간다."

하였다. 군신(群臣)들이 세자가 충천모(衝天帽)를 쓴 것을 보고 곡성(哭聲)을 멈추고, 혹은 꿇어앉고, 혹은 땅에 엎드려 서로 돌아보면서 한 마디의 말도 없었다. 세자가 홍양산(紅陽傘)으로 경복궁에 가니, 박은(朴訔)이,

"세자는 우리 임금의 아들이다. 굳이 사양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고, 이미 상위(上位)의 모자를 쓰셨으니, 신 등이 굳이 다시 청할 이유가 없다."

하니, 군신들이 모두,

"부득이한 일이다."

하고, 이에 즉위할 여러 가지 일을 의논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6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46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정론(政論) / 외교-명(明) / 의생활-관복(官服)

  • [註 527]
    운검(雲劍) : 임금의 좌우(左右)에서 검(劍)을 잡고 호위하던 관원.
  • [註 528]
    홀배(笏陪) : 임금의 좌우(左右)에서 집도(執刀)하여 그 신변을 지키던 관원.
  • [註 529]
    사전(辭箋) : 사양하는 전문(箋文).
  • [註 530]
    저부(儲副) : 세자.
  • [註 531]
    만기(萬機) : 임금의 정무(政務) 또는 여러 가지 정사(政事).
  • [註 532]
    반명(反命) : 복명(復命).
  • [註 533]
    충천 각모(衝天角帽) : 익선관(翼善冠).

○丁亥/王世子受內禪, 卽位于勤政殿。 上遣崔閑, 送乘輿儀仗, 又命遣闕內侍衛司禁、雲劍、備身、笏陪, 迎王世子來, 世子乃使請辭以烏杖、靑陽傘詣殿。 上令內臣視之, 怒曰: "不從命則勿來也。" 世子不得已以朱杖、紅陽傘前導而來, 上召世子入。 世子親袖辭箋以進, 其辭曰:

臣性資愚魯, 學問未成, 爲政之方, 懜然無覺。 叨居儲副之位, 夙夜惕厲, 猶懼不稱, 何圖今日, 乃有付畀之命? 事出意外, 顚倒無措。 恭惟, 主上殿下春秋鼎盛, 聖德方隆, 遽倦萬機, 欲以廟社之重, 委諸顓蒙之(驅)〔軀〕 , 豈惟臣子之心, 倍加兢惶, 誠恐祖宗之靈, 有以驚動。 且以國家而相傳, 實惟國家之大事, 悤遽乃爾, 中外臣庶罔不駭愕。 重念, 殿下立臣爲後之時, 猶以不敢擅便, 奏于天子, 況以軍國之重, 擅授於臣, 臣恐事大之禮, 亦且有失。 伏望殿下, 察愚臣之至情, 慮國家之大計, 以慰宗社、臣民之望。

上不允。 時, 政府、六曹、三軍都摠制府、文武百官及前銜二品以上, 咸造殿門, 把門甲士把截不納。 廷顯叱門者欲入, 門者固拒, 廷顯排闥而入, 群臣隨入殿庭, 固請復位, 呼哭不已。 上命左代言河演、都鎭撫李春生, 令甲士堅守中門, 禁入大小臣僚, 命尙敬及六曹判書, 同議新君卽位諸事。 曰: "殿下堅拒群臣之請, 奈何奈何? 其勢終不得請, 欲與六曹, 議卽位諸事。" 石璘廷顯及群臣又排中門入內庭呼哭, 聲徹御座。 上使孝寧大君傳命曰: "予傳位于異姓之君, 則卿等之請然矣。 予傳位于子, 何以如此? 往者, 予欲傳位于前世子, 然知子莫如父, 予知之不善, 故不傳, 而至于今乃傳, 勿以爲請。" 群臣愈哭不退。 金漸曰: "殿下此擧, 於殿下、世子俱有失德。 何則? 臣奉使中原, 皇帝之於殿下, 眷顧之心懇懇無已。 元閔生將建儲之請, 今未反命, 殿下一朝解位, 世子一朝卽位, 其在帝心, 以爲如何? 是皆有失德也。 請姑待閔生之還。" 上皆不允, 親加衝天角帽于世子, 遂令世子備國王儀仗, 往景福宮卽位。 王世子不獲已承命, 命開內門出曰: "我幼沖愚魯, 難堪大事, 故至誠請辭, 終不蒙允, 不得已歸景福宮矣。" 群臣見世子着衝天帽, 止哭聲, 或跪或伏地, 相顧無一言。 世子以紅陽傘, 如景福宮曰: "世子, 吾君之子也。 固辭不允, 已着上位之帽, 臣等固無更請之理。" 群臣皆曰: "不獲已也。" 乃議卽位諸事。


  • 【태백산사고본】 16책 36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46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정론(政論) / 외교-명(明) / 의생활-관복(官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