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정부·삼공신·육조 등의 신료들이 세자를 폐하도록 상소하다
의정부(議政府)·삼공신(三功臣)·육조(六曹)·삼군 도총제부(三軍都摠制府)·각사(各司)의 신료(臣僚)들이 상소(上疏)하여 세자를 폐(廢)하도록 청하였다. 유정현(柳庭顯)·박은(朴訔)·한상경(韓尙敬)·유창(劉敞)·정탁(鄭擢)과 육조(六曹)·삼군(三軍)·대간(臺諫)에서 모두 조계청(朝啓廳)에 나아오니, 조말생(趙末生)·이명덕(李明德) 등이 전지(傳旨)하기를,
"세자 이제(李禔)가 간신(奸臣)의 말을 듣고 함부로 여색(女色)에 혹란(惑亂)하여 불의(不義)를 자행(恣行)하였다. 만약 후일에 생살 여탈(生殺與奪)358) 의 권력을 마음대로 한다면 형세를 예측하기가 어려우니, 여러 재상(宰相)들은 이를 자세히 살펴서 나라에서 바르게 시행하는 것이 마땅하다."
하였다. 이리하여 의정부·육조·삼공신·삼군 도총제부·문무(文武) 대소 각사(各司) 신료(臣僚) 등이 상언(上言)하였다.
"신 등이 간절히 생각건대, 신자(臣子)의 직분(職分)은 충효(忠孝)에 있고, 충효가 궐(闕)하면 사람이 될 수가 없는데, 하물며 세자(世子)이겠습니까? 지난번에 세자가 역신(逆臣) 구종수(具宗秀) 등과 사통(私通)하여 불의를 자행하였으니, 즉시 폐하여 추방하는 것이 합당한데, 전하께서 적장(嫡長)이라 하여 차마 갑자기 폐하지 못하였습니다. 또 세자에게 스스로 그 잘못을 진달(陳達)하여 이미 종묘(宗廟)에 고(告)하게 하고 또 상서(上書)하게 하여서 그가 자신(自新)359) 하고 자애(自艾)360) 하기를 바랐으니, 전하의 마음이 자애롭다고 이를 만합니다. 세자로서 마땅히 해야 할 바는 깊이 스스로 각책(刻責)하여 그 허물을 피하여서 종묘의 중책을 이어받고 군부(君父)의 은혜에 보답할 것을 생각해야 하는데, 세자는 일찍이 허물을 뉘우치고 자신(自新)하려는 뜻이 없고 간신 김한로(金漢老)의 음모를 듣고 다시 전날의 잘못을 저질렀으니, 자못 심함이 있었습니다. 그 죄가 하늘을 속이고 종묘(宗廟)를 속이고 임금을 속이고 아버지를 속이는 데 이르렀으니, 그가 종사(宗社)를 이어받아 제사를 주장할 수 없음은 또한 더욱 분명합니다. 전하가 이에 부자(父子)의 사사로운 은의(恩誼)로써 다만 김한로를 외방으로 내치기만 하였으니, 종사와 국가의 대계(大計)에 있어서 어찌 되겠으며, 억조(億兆) 신민(臣民)들의 소망(所望)에 어찌 되겠습니까? 대소 신료(大小臣僚)들이 분하고 답답하게 여기지 않음이 없으니, 일이 중한 것을 돌아보아 감히 말을 내는 것입니다. 이제 세자는 오로지 허물을 뉘우치지 아니할 뿐만 아니라, 도리어 원망하고 노여운 마음을 일으켜 오만하게 상서(上書)하여 그 사연이 패만(悖慢)하고 조금도 신자(臣子)의 뜻이 없었으니, 신 등이 놀라고 두려워하고 전율(戰慄)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상서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는 태조의 초창(草創)한 어려움을 생각하고 종사(宗社) 만세(萬世)의 대계(大計)를 생각하여 대소 신료(大小臣僚)의 소망(所望)을 굽어 따르시어 대의(大義)로써 결단하여, 세자를 폐하여 외방으로 내치도록 허락하시면 공도(公道)에 심히 다행하겠으며, 종사에 심히 다행하겠습니다."
사간원(司諫院)에서 상소하였다.
"신 등이 그윽이 보건대, 옛날 태갑(太甲)361) 이 아형(阿衡)362) 을 따르지 않고 욕망을 좇아 법도를 어기고 방종을 좇아 예(禮)를 패하니, 이윤(伊尹)363) 이 말하기를, ‘이것은 불의(不義)인데, 습성이 되어 성격을 이루었으니, 나는 의(儀)를 좇지 않는 사람과는 가까이하지 않겠다. 동(桐) 땅에 궁(宮)을 지으라.’고 하였습니다. 태갑(太甲)이 동(桐) 땅에서 스스로 원망하며 자애(自艾)364) 하여 3년 동인 인(仁)에 거(居)하여 의(義)로 마음을 바꾸어서 이윤(伊尹)의 가르침을 들었으므로, 다시 박(亳)365) 에 돌아왔었습니다. 신하가 임금에 대하여 오히려 또 이와 같이 하여야 하는데, 하물며 지금 세자가 전하에게 순종하지 않는 경우이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는 세자로 하여금 허물을 뉘우치고 자신(自新)한 뒤에야 이에 그 자리를 회복하게 하여서 종묘(宗廟)·사직(社稷)의 근본을 튼튼하게 하고 신민(臣民)의 소망을 위로하소서."
사헌부(司憲府)에서 상소하였다.
"저부(儲副)366) 를 세우고 곧 문신(文臣)으로서 서연(書筵)을 겸하여 맡게 한 것은 도의(道義)를 강(講)하여 밝혀서 날마다 선(善)한 데로 나아가고 사악(邪惡)한 것을 받아들이지 않으려는 것인데, 불행하게도 세자는 간신의 말을 믿고 따라서 불의를 자행하였습니다. 전하가 부자의 은의(恩誼)로써 차마 폐출(廢黜)하지 못하였습니다. 이제 또 〈세자가〉 분노하여 상서하였는데, 그 사연이 불공(不恭)하였으니, 부자의 뜻에 있어서 어찌 되겠으며, 대소 신료의 소망에 있어서 어찌 되겠습니까? 인심이 돌아가는 바로써 천명을 알 수 있으니,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는 대의로 결단하여 세자를 폐출하여 외방으로 내치소서. 그 서연관(書筵官)으로서 도성(都城)에 머물고 있는 빈객 이하도 또한 직첩을 거두고 안율(按律)하여 시행하소서."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6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30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역사-고사(故事) / 정론-정론(政論)
- [註 358]생살 여탈(生殺與奪) : 사람을 살리고 죽이고 주고 빼앗음.
- [註 359]
자신(自新) : 스스로 새 사람이 되는 것.- [註 360]
자애(自艾) : 스스로 악을 버리고 선을 닦고 행함.- [註 361]
태갑(太甲) : 은(殷)나라의 2대 임금 성탕(成湯)의 손자.- [註 362]
아형(阿衡) : 이윤(伊尹)의 관명.- [註 363]
이윤(伊尹) : 은(殷)나라 성탕(成湯)·태갑(太甲) 때 명신(名臣).- [註 364]
○議政府、三功臣、六曹、三軍都摠制府、(爲)〔各〕 司臣僚上疏, 請廢世子。 柳廷顯、朴訔、韓尙敬、劉敞、鄭擢及六曹、三軍、臺諫皆詣朝啓廳, 趙末生、李明德等傳旨曰: "世子禔聽奸臣之言, 冒亂女色, 恣行不義。 若後日擅生殺予奪之權, 則勢難可測, 諸相其審克之, 國家當以正施行。" 於是, 議政府、六曹、三功臣、三軍都摠制府、文武大小各司臣僚等上言:
臣等竊謂, 臣子之職在於忠孝, 忠孝有闕, 則不可爲人, 況世子乎? 頃者, 世子私通逆臣宗秀等, 恣行非義, 卽合廢放, 殿下以其嫡長, 不忍遽廢。 且以世子自陳其失, 旣告宗廟而又上書, 冀其自新自艾, 殿下之心可謂慈矣。 所宜深自刻責, 思免厥愆, 以承宗廟之重, 以答君父之恩。 世子曾無悔過自新之意, 聽用奸臣漢老之謀, 復蹈前日之非, 殆有甚焉。 其罪至於欺天、欺宗廟、欺君、欺父, 其不可承祧主鬯, 又益昭矣。 殿下乃以父子之私恩, 止黜漢老于外, 其於宗社國家之大計何; 億兆臣民之望何? 大小臣僚莫不憤懣, 顧以事重, 不敢發言。 今世子非惟不自悔過, 反生怨怒, 慠然上書, 其辭悖慢, 殊無臣子之意。 臣等驚惶戰慄, 昧死上書, 伏望殿下, 思太祖草創之艱難; 念宗社萬世之大計, 俯循大小臣僚之所望, 斷以大義, 許廢世子, 放之于外, 公道幸甚, 宗社幸甚。
司諫院上疏曰:
臣等竊觀, 昔太甲不惠于阿衡, 欲敗度、縱敗禮, 伊尹曰: "玆乃不義, 習與性成, 予不狎于不順。" 營于桐宮, 太甲自怨自艾於桐〈宮〉, 處仁遷義三年, 以聽伊尹之訓, 已復歸于亳。 臣之於君, 尙且如此, 況今世子不惠於殿下乎? 伏望殿下, 使世子悔過自新, 然後乃復其位, 以固宗社之本, 以慰臣民之望。
司憲府上疏曰:
建儲副, 卽以文臣兼置書筵者, 講明道義, 日進於善, 不納於邪也。 不幸世子信聽姦臣之言, 恣行非義, 殿下以父子之恩, 不忍廢黜, 今又憤怒上書, 其辭不恭, 其於父子之意何; 其於大小臣僚之望何? 人心所歸, 天命可知。 伏望殿下, 斷以大義, 廢黜世子, 放之于外, 其書筵留都賓客以下, 亦收職牒, 按律施行。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6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30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역사-고사(故事) / 정론-정론(政論)
- [註 3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