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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35권, 태종 18년 4월 6일 병술 4번째기사 1418년 명 영락(永樂) 16년

박은이 신효창의 죄를 청하다

박은(朴訔)신효창(申孝昌)의 죄를 청하였다. 아뢰기를,

"신효창이 임오년에 태조(太祖)를 따라가 동북면(東北面)에서 큰 변란(變亂)을 일으키게 하였으나, 지금까지 목숨을 보전한 것은 다행이었습니다. 이제 또 등급을 뛰어 넘어 수직(受職)하는 것은 의리에 미편(未便)합니다."

하니, 임금이,

"신효창·정용수(鄭龍壽)승녕부(承寧府)248) 로서 호종(扈從)하였을 뿐이요, 음모에 참여한 죄는 없었다. 그러므로 그때에 논하지 아니하였다."

하였다. 박은이,

"신효창·정용수가 비록 병사를 맡지는 아니하였으나 유악(帷幄)249) 가운데에 참여하였으니, 그 죄가 심히 크다고 하겠습니다."

하니, 임금이,

"신효창·정용수가 먼저 기밀과 변란을 통기하였으니, 그가 모의에 참여하지 않은 것이 분명하다. 비록 행행(行幸)한 곳 안에 있었다 하더라도 어찌 유악(帷幄)의 음모에 참여하였다고 논할 수 있겠느냐?"

하였다. 박은이,

"두 사람이 만약 음모에 참여하지 않았다면 마땅히 힘써 그 불가(不可)함을 진달(陳達)하여야 하고, 태조(太祖)가 듣지 않았다면 마땅히 몸을 빼서 도망하여 와야 하는데, 일찍이 이러한 생각은 하지 않고 시종 수가(隨駕)하였습니다. 그때를 당하여 그 변란(變亂)이 성공하였더라면 반드시 논공 행상(論功行賞)을 얻었을 것이니, 그가 왕법(王法)에 있어서는 사면(赦免)을 받는 것이 마땅하지 않습니다. 이제 수직(受職)하는 것도 실로 미편(未便)합니다."

하니, 임금이,

"비록 그렇다고 하더라도 그때의 공의(公議)는 이와 같지 아니하였다."

하였다. 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 권도(權蹈)가 예궐(詣闕)하여 상언(上言)하기를, 신효창·박만(朴蔓)이 옛날 태조(太祖)를 따라가 동북면(東北面)의 변란(變亂)을 꾸며서 일으켰으니, 그 죄가 오로지 같고 경중(輕重)이 있을 수 없습니다. 박만은 폐하여 서인(庶人)으로 삼고, 자손(子孫)은 금고(禁錮)한 지 이미 여러 해입니다. 신효창은 이제 도총제(都摠制)로 제배(除拜)하여 전하께서 신효창에게 특별히 어진 은전(恩典)을 내려서 그 몸을 보전(保全)하시는데, 신 등이 죄를 청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직질(職秩)이 정 2품에 이르니 실로 상벌(賞罰)의 도리에 합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원컨대, 전하께서 재택(裁擇)하소서."

하니, 임금이,

"옛날 변란을 선동한 무리는 오로지 신효창 뿐만 아니고 정용수도 또한 참여하였다. 내가 일찍이 정용수의 아들 정관(鄭貫)으로서 첨총제(僉摠制)를 삼아 가선 대부(嘉善大夫)·판광주목사(判廣州牧事)에 이르렀는데, 경 등은 이제 신효창의 일을 말하니, 그렇다면 정용수에게도 또 어떻게 재택(裁擇)하여야 할는지 그것을 참작하여 아뢰어라."

하였다. 권도가 정부에 고(告)하니, 박은이 예궐(詣闕)하여 상언(上言)하기를,

"신이 신효창에게 극형(極刑)을 가(加)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요, 박만의 죄와 같은 율(律)로 시행하기를 원하였는데, 그가 말하기를, ‘죄를 청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은 사인(舍人)이 상언(上言)하는 데 잘못한 것입니다. 신 등이 신효창에게 대하여 어찌 그 직(職)을 도로 빼앗는다고 하여 만족하겠습니까? 엎드려 바라건대, 정용수·신효창을 모두 박만의 죄와 같은 율(律)로써 시행 하여 신민(臣民)의 소망에 부응하소서"

하였다. 하교(下敎)하기를,

"내가 정관을 가지고 말하는 것은 경 등으로 하여금 그 죄를 청하게 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를 빌어서 경 등의 청을 막으려는 것뿐이다. 신효창의 아들 신자근(申自謹)은 사헌 지평(司憲持平)에 이르렀고, 정용수의 아들 정관은 판광주목사(判廣州牧事)에 이르렀으니, 이러한 때를 당하여 한 사람을 가지고 그 불가(不可)함을 말할 수 없다. 금일의 청(請)은 늦은 것 같다."

하니, 박은이 이에 물러갔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15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변란(變亂) / 역사-고사(故事) / 정론(政論)

  • [註 248]
    승녕부(承寧府) : 조선조 태조(太祖)가 선위(禪位)한 뒤에, 그에 대한 공봉(供奉)과 기타 일체의 사무를 맡은 관아. 정종(定宗) 2년에 두었음.
  • [註 249]
    유악(帷幄) : 작전 계획을 짜는 곳.

朴訔申孝昌之罪。 啓曰: "孝昌於壬午年, 從太祖於東北面, 致有大變, 至今保全幸矣。 今又超等受職, 於義未便。" 上曰: "孝昌鄭龍壽以承寧府扈從而已, 無參謀之罪, 故其時勿論。" 曰: "孝昌龍壽雖不操兵, 得與帷幄之中, 其罪甚大。" 上曰: "孝昌龍壽先通機變, 其不參謀明矣。 雖在行幸之內, 豈可以帷幄參謀論之哉?" 曰: "二人若不參謀, 當力陳不可, 太祖不聽, 則當挺身逃來, 曾不是慮, 而始終隨駕。 當是時, 其變若成, 則必得功賞, 其在王法, 不當蒙赦, 今之受職, 實爲未便。" 上曰: "雖然, 其時公議不如此也。" 議政府使舍人權蹈詣闕上言曰: "孝昌朴蔓昔從太祖, 搆成東北之亂, 厥罪惟均, 無有輕重。 廢爲庶人, 子孫禁錮, 已多年矣, 孝昌則今拜都摠制。 殿下於孝昌, 特賜仁恩, 保全其身。 臣等非欲請罪, 秩至正二品, 實有未協於賞罰之道, 願殿下裁擇。" 上曰: "昔日扇亂之黨, 非獨孝昌, 而龍壽亦與焉。 予曾以龍壽之子爲僉摠制, 至爲嘉善、判廣州牧事。 卿等今以孝昌之事爲言, 若是則於龍壽, 又何擇焉? 其參酌以聞。" 以告政府。 詣闕上言曰: "臣於孝昌, 非欲加極刑耳, 願以朴蔓同律施行。 其曰非欲請罪者, 舍人之失於上言也。 臣等之於孝昌, 豈以還取其職爲足乎? 伏望將龍壽孝昌, 皆以朴蔓之罪同律施行, 以副臣民之望。" 敎曰: "予以鄭貫爲言者, 非欲使卿等請其罪也, 但借此以塞卿等之請耳。 孝昌之子自謹, 則至爲司憲持平; 龍壽之子, 則至爲判廣州。 當此之時, 未有一人言其不可, 今日之請, 似乎緩矣。" 乃退。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35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15면
  • 【분류】
    사법-탄핵(彈劾) / 변란(變亂) / 역사-고사(故事)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