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루에서 정사를 보다
신루(新樓) 아래에서 정사를 보고, 이어서 술자리를 베풀었다. 임금이 눈물을 흘리면서 말하였다.
"태의(太醫)240) 양홍달(楊弘達)·박거(朴居)·원학(元鶴) 등이 일찍이 경안 궁주(慶安宮主)가 졸(卒)할 적에 아뢰기를, ‘이 병은 신들이 아직 보지 못한 바요, 의서(醫書)에서도 또한 아직 논의한 적이 없습니다.’고 하였다. 나의 뜻에는 ‘어찌 남의 자식이 되어서 이와 같은 병에 걸리었는가?’라고 생각하여 심히 부끄러워하고 한스러워하였다. 그 후에 의서(醫書)를 보니 이르기를, ‘열기(熱氣)를 잘못 다스리면 손과 발이 위비(痿痺)241) 한다.’고 하였다. 이제 이번의 성녕 대군(誠寧大君)의 병은 허리와 등이 아프니, 모두 말하기를, ‘풍증(風證)입니다.’고 하고 이로 하여금 인삼(人蔘) 순기산(順氣散)을 복용시켜 증세가 변하게 만들었다. 또 말하기를, ‘순조로운 증세입니다.’고 하였지만 흉변(凶變)에 이르렀다. 내가 의서(醫書)를 보니, 창진(瘡疹)의 병을 만약 풍증(風證)으로 다스린다면 죽는 경우가 열이고 사는 경우가 하나라고 하였다. 이로써 말한다면 죄는 용서할 수가 없으나, 율(律)에 따라서 다스린다면 비록 ‘업(業)을 정(精)하게 하지 못하였다.’고 이르겠지만, 이 직임(職任)을 대신할 자도 또한 얻기가 어려운 것이다."
사헌 집의(司憲執義) 허규(許揆) 등이 양홍달·박거 등의 죄를 핵문(覈問)하여 참형(斬刑)으로 조율(照律)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죄가 비록 이에 이르렀다고 하더라도 어찌 가볍게 죽일 수 있겠느냐?
하고, 이에 양홍달은 폐(廢)하여 서인(庶人)으로 만들고, 박거·조청·원학은 전의감(典醫監) 영사(令史)에 붙이었다. 정부와 육조(六曹)·대간(臺諫)에서 장차 양홍달 등을 율(律)에 의하여 죄를 결단하고자 하여 재삼 청(請)하기에 이르렀으나 윤허(允許)하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15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신분(身分) / 의약-약학(藥學) / 왕실-종친(宗親)
○丙戌/視事于新樓下, 仍置酒。 上泣曰: "太醫楊弘達、朴居、元鶴等, 昔於慶安之卒啓曰: ‘此疾臣所未嘗見, 醫書亦未議論。’ 予意以爲: ‘乃何爲人之兒, 得疾如此?’ 甚愧恨焉。 其後見醫書云: ‘誤治熱氣, 則手足痿痺。’ 今此誠寧之疾, 腰背疼痛, 咸曰: ‘風證。’ 使之服人蔘順氣散, 以致變證, 又曰: ‘順證。’ 以至凶變。 予見醫書, 瘡疹之疾, 若以風證治之, 則十死一生。 以此言之, 罪不容赦, 然從律治之, 則雖云業不精矣, 代此任者, 亦且難得也。" 司憲執義許揆等覈弘達、朴居等罪, 以斬照律, 上曰: "罪雖至此, 豈可輕殺哉?" 乃廢弘達爲庶人, 朴居、曺聽、元鶴屬典醫監令史。 政府、六曹、臺諫欲將弘達等依律斷罪, 請至再三, 不允。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3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15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신분(身分) / 의약-약학(藥學)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