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교 한성 윤 최덕의가 대군의 장일을 골라서 바치다
검교 한성 윤(檢校漢城尹) 최덕의(崔德義)가 대군(大君)의 장일(葬日)을 골라서 바치었는데, 5월 21일 경신(庚申)이었으나, 흉(凶)하면 3인을 불러서 해친다고 하니, 하교하기를,
"경신(庚申) 날 이외에 다른 길일(吉日)이 없는가?"
하니, 이양달(李陽達)이 대답하기를,
"이달부터 9월에 이르기까지 장일(葬日)은 비록 많으나 아무 사람[某人]을 불러서 해친다는 말이 자못 많은데, 다만 경신(庚申) 날만은 조금 길(吉)합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우선 조금 길(吉)한 날을 골라서 임시로 장사지냈다가 10월까지 미루어서 순전히 길한 날을 골라서 길이 장사하는 것이 어떠하겠는가?"
하니, 이양달 등이 대답하기를,
"그것도 또한 가(可)합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속히 임시로 장사지낼 날과 영구히 장사지낼 날을 고르도록 하라."
하니, 이양달이 임시로 장사지낼 날을 5월 10일 기미(己未)로 고르고, 영구히 장사지낼 날을 명년(明年) 정월 초4일 기유(己酉)로 골랐다. 하교하기를,
"5월까지 기다려서 임시로 장사지낸다면 오래도록 성 안에 빈렴(殯殮)하여야 하니, 늦추는 것 같다. 3월·4월 두 달 사이에 어찌 길일(吉日)이 없겠는가?"
하니, 이양달 등이 길일(吉日)을 고르다가 고르지 못하였다. 임금이 정부와 육조를 불러서 하교하기를,
"대소 사람들이 장서(葬書)에 꺼리는 바에 혹(惑)하여 모두 순전히 길한 날을 고르고자 한다. 그러므로 비록 진실로 효자(孝子)라고 하더라도 혹은 오래도록 정역(征役)에 종군하였다가 여러 달 동안 돌아오지 못하거나, 혹은 사사로운 일로 인하여 오래도록 다른 지방으로 가서, 그 어버이로 하여금 햇볕에 드러내어 장사지내지 않기에 이르니, 옛사람이 이를 염려하여 천자(天子)는 7개월로, 제후(諸侯)는 5개월로, 대부(大夫)는 3개월로, 사(士)는 달을 넘기는 제도로 정하였다. 정자(程子)097) ·주자(朱子)098) 도 또한 이미 이를 말하였으니, 정자·주자의 말이 어찌 근거하는 바가 없겠느냐? 지금 세상의 사람들은 장서(葬書)에 꺼리는 바에 혹(惑)하기 때문에 이양달 등이 아직 순전히 길한 날을 고르지 못하였다. 나는 이러한 때에 일정한 법(法)을 크게 세우겠으니, 의논하여서 아뢰어라."
하니, 유정현(柳廷顯)·박은(朴訔)·한상경(韓尙敬) 등이,
"아무 사람[某人]을 부르고 아무 사람[某人]을 해친다는 말은 모두 요망하고 허탄(虛誕)한 설(說)입니다. 사람이 죽는다면 혼(魂)은 올라가고 뼈는 썩으니, 어찌 산 사람을 부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러나, 전하께 속하는 꺼림이 있으니 허탄한 논의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전하의 꺼리는 것만을 피하여 3개월에 장사지내고 여러 장서(葬書)를 불태우는 것으로써 길이 항식(恒式)을 삼으소서. 만약 몰래 장서(葬書)를 쓴다면 ‘요사스런 글을 감춘 율(律)’로써 이를 논하소서."
하고, 찬성(贊成) 이원(李原)·참찬 성발도(成發道)·예조 판서 김여지(金汝知)·이조 판서 심온(沈溫)·형조 판서 윤향(尹向)·공조 판서 정진(鄭鎭)·예조 참판 신상(申商)·병조 참의(兵曹參議) 남금(南琴)·공조 참의 이도(李鞱) 등이,
"장서(葬書)에 꺼리는 바는 모두 신 등이 믿지 않는 바입니다. 그러나, 전하에게 속하는 꺼림은 허탄한 이론이라 할 수 없으니, 전하의 꺼리는 것을 피하여 임시로 장사 지냈다가 명년 정월 초 4일까지 기다려 영구히 장사지내는 것이 가(可)하겠습니다. 여러 장서(葬書)를 불태우는 것도 또한 모두 신 등의 소원입니다."
하니, 하교하기를,
"삼의정(三議政)의 말한 바는 모두 사리에 합한다. 그러나, 죽은 아이의 장례는 찬성 이하의 말을 따르겠다. 나의 몸에 이르거든 모름지기 정자·주자의 3개월의 제도를 따르라."
하였다. 임금이 또 묻기를,
"옛부터 성곽(城廓)·궁궐(宮闕)의 제도는 무엇에 근거한 것인가?"
하니, 박은이,
"성곽·궁궐은 천문(天文)·지리(地理)에 따라서 방위(方位)를 정하는데, 천문·지리는 오행(五行)099) 의 이치를 논하니, 없다고 할 수 없습니다. 신 등이 불태워 버리고자 하는 것은 장서(葬書)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묻기를,
"음양 지리(陰陽地理)의 법은 어느 시대에 시작하였는가? 중국에서도 땅을 골라서 장사지내는 법이 있는가?"
하니, 김여지가 말하기를,
"동진(東晉) 때에 도간(陶侃)100) 이라는 자가 처음으로 음양 지리의 법을 제정하였습니다."
하고, 유정현이,
"신이 일찍이 중국에 봉명(奉命)하여 사신으로 갔더니, 밭 머리와 내의 언덕에 사람의 무덤이 서로 잇달아 있었습니다. 이로써 본다면 중국의 사람은 지리(地理)를 택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였다. 하교하기를,
"장서(葬書)는 비록 불태우는 것이 마땅하다도 하더라도 명년 정월 이전에 불태우겠는가, 이후에 하겠는가?"
하니, 유정현·박은·한상경·정역(鄭易) 등이,
"대군(大君)의 장례에 3개월의 제도를 준용하지 않는다면 명년 정월까지 기다려 영구히 장사지낸 뒤에 이를 불태워도 가(可)할 것입니다."
하고, 이원·김여지 등은 말하기를,
"이러한 잡서(雜書)는 옛사람들이 모두 의심한 것이니, 만약 따르지 않으려고 한다면 정월 이전에 불태우는 것이 가(可)하고, 이후에도 또한 가(可)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여러 부원군(府院君)을 불러서 의논하여서 아뢰도록 하니, 성석린(成石璘)이,
"장서(葬書)에 꺼리는 바는 모두 요언(妖言)이니, 경학(經學)에 밝고 행실을 닦는 인주(人主)가 아니라면 어찌 이러한 물음이 있겠습니까? 옛날에 세 가지 흉(凶)한 것을 꺼림이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꺼리지 않으니, 흉사(凶事)가 없음이 이로써 징험되는 것입니다. 이제 대군(大君)의 장례에 장서(葬書)에 구애되지 말고 3개월의 제도를 따르는 것이 가(可)합니다. 전하의 뜻이 이원 등의 말한 바를 따르고자 한다면 이것도 또한 방해될 것이 없습니다. 만약 장서(葬書)를 불태우는 일이라면 진실로 바꿀 수 없는 논의이니. 하필이면 정월 이후를 기다리겠습니까? 맹자(孟子)가 말하기를, ‘그것이 도(道)가 아닌 것을 안다면 어찌 내년을 기다리겠는가?’고 하였습니다."
하고, 의령 부원군(宜寧府院君) 남재(南在)·평양 부원군(平陽府院君) 김승주(金承霔)·흥녕 부원군(興寧府院君) 안경공(安景恭) 등이,
"대군(大君)의 장례는 마땅히 성석린의 말과 같이 하여야 합니다. 만약 저 장서(葬書)를 가지고 말한다면 옛사람이 만든 것이니 불태울 수가 없습니다. 쓰고 쓰지 않음은 각각 그 마음에 있습니다."
하였다. 이양달 등이 임시로 장사지낼 날을 택하여 바치니, 바로 4월 초4일 갑신(甲申)이었다. 임금이 갑신(甲申)에 꺼리는 바를 물으니, 이양달이 대답하기를,
"이날은 다만 본명인(本命人)101) 과 임진(壬辰)에 난 사람에게만 흉사가 있으나, 주상(主喪)하는 자가 본명인(本命人)은 아닙니다. 비록 임진(壬辰)에 난 사람이라 하더라도 장일(葬日)을 당하여 피한다면 함께 흉사(凶事)가 없을 것입니다."
하니, 하교(下敎)하였다.
"이날에 영장(永葬)한다면 옛사람의 3개월 제도에 합한다."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04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역사-고사(故事)
- [註 097]정자(程子) : 정호(程顥).
- [註 098]
주자(朱子) : 주희(朱熹).- [註 099]
오행(五行) : 만물을 생성하는 금(金)·목(木)·수(水)·화(火)·토(土)의 5원소(元素)·오행상생(五行相生)과 오행상극(五行相克)의 이치로 만물을 지배한다고 함.- [註 100]
도간(陶侃) : 중국 동진(東晉)의 번양(鄱陽) 사람.- [註 101]
본명인(本命人) : 죽은 사람과 태어난 해의 간지(干支)가 같은 사람을 말함.○檢校漢城尹崔德義擇大君葬日以獻, 五月十一日庚申, 凶則呼三人也。 敎曰: "庚申日外, 無他吉日乎?" 李陽達對曰: "自是月至九月, 葬日雖多, 呼損某人之言頗多。 但庚申日稍吉。" 敎曰: "姑擇稍吉之日權葬, 從十月而推之, 擇純吉之日而永葬如何?" 陽達等對曰: "是亦可也。" 敎曰: "速擇權葬之日與永葬之日。" 陽達擇權葬日五月十日己未也, 擇永葬日明年正月初四日己酉也。 敎曰: "待五月而權葬, 則久殯城內, 似乎緩也。 三四兩月之間, 豈無吉日乎?" 陽達等擇吉日而未得。 上召政府、六曹敎曰: "大小之人, 惑於葬書所忌, 皆欲擇純吉之日, 故雖眞孝子, 或久從征役, 累月不返; 或因私事, 久適他方, 至使其親曝露而不葬。 古人慮此, 定天子七月、諸候五月、大夫三月、士踰月之制。 程子、朱子亦已言之。 程、朱子之言, 豈無所據乎? 今世之人, 惑於葬書所忌, 故陽達等未擇純吉之日。 予於此時, 大建一定之法, 擬議以聞。" 柳廷顯、朴訔、韓尙敬等曰: "呼某人損某人之言, 皆妖誕之說也。 人死則魂升骨朽, 安有呼生人之理乎? 然有屬殿下之忌, 則不可虛論, 但避殿下之忌, 三月而葬。 焚諸葬書, 永爲恒式, 如有潛用葬書, 以藏妖書律論之。"
〔○〕 贊成李原、參贊成發道、(禮曹判曹)〔禮曹判書〕 金汝知、吏曹判書沈溫、刑曹判書尹向、工曹判書鄭鎭、(禮書參判)〔禮曹參判〕 申商、兵曹參議南琴、工曹參議李韜等曰: "葬書所忌, 皆臣等所不信也。 然屬殿下之忌, 則不可虛論, 避殿下之忌權葬, 待明年正月初四日永葬可也。 焚諸葬書, 亦皆臣等之願也。" 敎曰: "三議政所言, 皆合於理, 然亡兒之葬, 從贊成以下之言, 至於予身, 須從程、朱三月之制。" 上又問曰: "自古有城郭宮闕之制, 何所據乎?" 朴訔曰: "城郭宮闕, 從天文地理, 以定方位, 天文地理, 論五行之理, 不可無也。 臣等所欲焚者, 葬書也。" 上問: "陰陽地理之法, 始於何代歟? 中原亦有擇地而葬之之法乎?" 金汝知曰: "東 晋時, 有陶侃者, 始制陰陽地理之法。" 柳廷顯曰: "臣嘗奉使中原, 田頭川岸, 人塚纍纍。 以是觀之, 中原之人不擇地理也。" 敎曰: "葬書雖當焚之, 焚於明年正月以前乎? 以後乎?" 柳廷顯、朴訔、韓尙敬、鄭易等曰: "大君之葬, 不遵三月之制, 則待明年正月永葬之後焚之可也。" 李原、金〈汝〉知等曰: "有此雜書, 故人皆有疑。 如欲不從, 則正月以前焚之可也, 以後亦可也。" 上召諸府院君, 令擬議以聞, 成石璘曰: "葬書所忌, 皆妖言也。 非經明行修之主, 安有此問乎? 古有三凶之忌, 今皆不忌, 尙無凶事, 是其驗也。 今於大君之葬, 不拘葬書, 而從三月之制可也。 殿下之意, 欲從李原等所言, 是亦無妨也。 至若葬書之焚, 誠不易之論也。 何必待正月以後乎? 孟子曰: ‘如知其非道, 何待來年?’" 宜寧府院君 南在、平陽府院君 金承霔、興寧府院君 安景恭等曰: "大君之葬, 當如石璘之言也。 若夫葬書, 古人所成, 不可焚也。 用不用, 各在其心。" 李陽達等擇權葬日以獻, 乃四月初四日甲申也。 上問甲申所忌, 陽達對曰: "此日但於本命人及壬辰生人有凶, 然主喪者非本命, 雖有壬辰生人, 當葬日避之, 則俱無凶也。" 敎曰: "此日永葬, 則合古人三月之制也。"
- 【태백산사고본】 16책 35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04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역사-고사(故事)
- [註 09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