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귀산·원민생 등이 북경에서 돌아와 아뢰다
노귀산(盧龜山)·원민생(元閔生)·한확(韓確)·김덕장(金德章)이 북경(北京)에서 돌아왔다. 원민생이 아뢰었다.
"지나간 10월 초8일에 황씨(黃氏)·한씨(韓氏)가 통주(通州)로부터 먼저 들어가고, 신 등은 초9일에 북경에 들어가서 10일에 조현(朝見)하니, 황제가 신을 보고 먼저 웃으며 선유(宣諭)하기를, ‘너희들이 왔구나. 황씨가 약을 먹었느냐?’ 하기에, 원민생이 대답하기를, ‘노중에서 병이 심하여 지극히 걱정하였습니다.’ 하니, 황제가 말하기를, ‘국왕이 지성으로 보내어 왔으니, 참 어려운 일이다. 한씨 여아(女兒)는 대단히 총명하고 영리하다. 네가 돌아가거든 국왕께 자세히 말하라.’ 하고 한확을 광록 소경(光祿少卿)으로 삼고 물건을 대단히 후하게 주고, 황씨·한씨 두 여자의 집에 금은(金銀)·채백(綵帛) 따위의 물건을 주었습니다.
11월 초2일에 하직하였더니, 황제가 육선재(陸善財)에게 이르기를, ‘노중에서 사람을 보내어 알리지 않으면, 국왕이 자세히 알지 못할 것이다. 실례하지 말고 상사(賞賜)를 교부[交割]하고 하루 이틀 머물러서 포마(鋪馬)가 먼저 오고 다른 사람은 뒤따라 오라.’ 하고, 원민생에게 이르기를, ‘너의 나라에 이르러서 육선재가 예를 행할 때에 육선재로 하여금 실례하지 말게 하라. 너는 다른 사람과 비교가 되지 않는다.’ 하였습니다.
다른 날 황제가 말하기를, ‘일본 국왕(日本國王)의 무례한 일을 네가 아는가? 하기에, 원민생이 대답하기를, ‘일본 본국의 일은 신이 알지 못하나 적도(賊島)의 일은 대강 압니다. 스스로 행장(行狀)을 만들어 가지고 조선(朝鮮) 지경에 이르러, 방어가 단단하고 튼튼하면 가지고 온 어염(魚鹽)으로 민간의 미곡과 바꾸기를 청하고, 사람이 없는 곳이나 방어가 허술한 곳에서는 틈을 타서 들어와 침노하여 혹은 살상하고 혹은 노략하여 본국 사람이 많이 잡혀 가서 적도(賊島)에 살고 있습니다.’ 하였습니다.
한림원(翰林院) 금의위(錦衣衛) 관원에게 명하여 선유(宣諭)하기를, ‘조선에도 또한 이와 같은 일이 있구나. 금년에 왜적이 영해위(寧海衛)를 침노하니, 해망인(海望人)743) 이 먼저 천호소(千戶所)에 고하였는데 천호소가 술을 마시면서 도리어 해망인(海望人)더러 거짓 고한다고 하여 때려 보냈다. 이튿날 이른 아침에 왜적이 해안(海岸)에 올라 인물(人物)을 살해(殺害)하고 천호소 관인들을 잡아가서 모두 죽이었다. 행인(行人) 여연(呂淵)을 차송(差送)하여 일본에 가지고 가는 칙서(勅書)의 초안(草案)을 네가 보라.’ 하였습니다.
그 칙서에 이르기를, ‘너의 부왕(父王)아무개가 지성으로 사대(事大)하여 중국 조정(朝廷)의 큰 은혜로써 왕(王)을 봉하고, 고명(誥命)744) ·인장(印章)을 주어 후대하였는데, 지금 네가 아비의 도(道)를 따르지 않고 사람을 시켜 변해(邊海)에서 군사와 백성을 침노하고 잡아갔으니, 마땅히 조정의 큰 법으로 활을 잘쏘고 잘 싸우는 사람을 보내어 가서 토벌하겠다. 지금 행인(行人) 여연(呂淵)을 보내어 네 나라에 이르니, 무릇 조정에서 잡아간 인물을 모내 보내오라. 조선 국왕 아무개처럼 모두 보내어 오라. 조선 국왕은 태조(太祖)의 홍무(洪武) 때부터 이후로 지성으로 사대(事大)하여 지금은 한집과 같이 되었으니 어찌 아름답지 않느냐? 하였습니다. 다보고 나서 도로 바치었습니다.
황제가 유구국(琉球國) 사신이 돌아가는 때를 인하여 선유(宣諭)하기를, ‘너의 나라가 일본국과 서로 친하니, 후일에 일본을 정벌하게 되면 너의 나라가 반드시 먼저 길을 인도하여야 한다.’하니, 사신이 황공하여 돌아갔습니다. 11월 초1일 황제가 정전(正殿)에 나아가서 《제불여래보살명칭가곡(諸佛如來菩薩名稱歌曲)》 1백 본(本)과 《신승전(神僧傳)》 3백 본과 《책력(冊曆)》 1백 본을 주므로 신 등이 흠수(欽受)하고, 초2일에 출발하여 돌아왔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일본(日本) 칙초(勅草)와 유구국(琉球國) 칙명(勅命)을 어째서 배신(陪臣)으로 하여금 알게 하는가?"
- 【태백산사고본】 15책 34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96면
- 【분류】외교-명(明) / 출판-서책(書冊) / 과학-역법(曆法)
○辛丑/盧龜山、元閔生、韓確、金德章回自北京。 閔生啓曰: "去十月初八日, 黃氏、韓氏自通州先入。 臣等以初九日入京, 十日朝見, 帝見臣先笑, 宣諭曰: ‘汝等來矣。 黃氏服藥乎?’ 閔生對曰: ‘路次疾病, 至極憂患。’ 帝曰: ‘難得國王至誠送來。韓氏女兒, 好生聰俐, 爾回還對國王根底說了。’ 以確爲光祿少卿, 賜物甚厚, 賜黃、韓兩女家金銀綵帛等物。 十一月初二日辭, 帝謂善財曰: ‘路次不打人知, 則不撓國王根底。 休失禮, 賞賜交割, 留一二日, 鋪馬先來, 他人隨後來。’ 謂閔生曰: ‘到國善財行禮時, 使善財毋令失禮。 汝不比他人。’ 異日帝曰: ‘日本國王無禮事, 汝知之乎?’ 閔生對曰: ‘日本本國事臣不知, 賊島事粗知之。 自造行狀, 到朝鮮地境, 防禦堅實, 則以所持魚鹽, 請易民間米穀; 無人處及防禦虛疎, 則乘間入侵, 或殺傷或擄掠, 本國人數多擄去, 住在賊島。’ 命翰林院錦衣衛官員宣諭: ‘朝鮮亦有如此事。 今年倭賊侵寧海衛, 海望人先告千戶所, 千戶所飮酒, 反謂海望妄告打送。 翼日早朝, 倭賊登岸, 人物殺害, 擄去千戶所官人等皆殺了。 差送行人呂淵齎去日本勑書草, 汝看之。’ 其書曰: ‘爾父王某, 至誠事大, 以朝廷大恩, 封王誥命, 印章厚對, 今爾不遵父道, 使人邊海軍民, 侵擾擄去, 當以朝廷大法, 遣善射善戰人往討, 今差行人呂淵到爾國, 凡朝廷擄去人物, 盡數送來。 似朝鮮國王某自太祖 洪武以後, 至誠事大, 至今混同一家, 豈不美哉?’ 見訖還獻。 帝因琉球國使臣回還時宣諭: ‘汝國與日本國交親, 後日征日本, 則汝國必先引路。’ 使臣惶恐回去。 十一月初一日, 帝坐正殿, 賜《諸佛如來菩薩名稱歌曲》一百本、《神僧傳》三百本、冊曆一百本, 臣等欽受, 初二日發行回來。"
上曰: "日本勑草、琉球國勑命, 何以使陪臣知之?"
- 【태백산사고본】 15책 34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96면
- 【분류】외교-명(明) / 출판-서책(書冊) / 과학-역법(曆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