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에서 상정한 과거 시험 규정을 윤허하다. 12개 조목
예조에서 과거(科擧)의 법을 올렸다.
"1. 고강 치부(考講置簿)의 법은 구애되어 시행하기 어려우니, 마땅히 관시(館試)·한성시(漢城試)·향시(鄕試)에서 《사서(四書)》와 《사경(四經)》 이상을 통한 자에게 부시(赴試)하도록 허락하소서. 초장(初場)의 강문(講問)할 때에는 경서(經書)마다 한 장[一章]씩 묻게 하되, 부시자(赴試者)가 반드시 외우도록 하지 말고 임문(臨文)하여 대답하게 하며, 뜻[旨趣]을 융관(融貫)하는 것만 요구하고 그 중에서 두 장[二章]을 불통(不通)한 자는 중장(中場)에 들어오는 것을 불허하고, 회시(會試)의 강문(講問)하는 법도 또한 이 예(例)에 의하소서.
1. 고강(考講)할 때에는 경서(經書)마다 처음으로 책을 편 곳[開卷處]의 한 장[一章]을 두루 묻되, 30인 혹은 40인이 되어도 종일토록 하여 파(罷)하고, 다음 날에는 또 처음으로 책을 편 곳을 가지고 고강(考講)하기를 전과 같게 하소서.
1. 부시(赴試)하는 생원(生員)은 그가 성균관에 있을[居館] 때의 원점(圓點)448) 을 상고하여 만(滿)3백 점인 자는 관시(館試)와 향시(鄕試)에 나아감을 허락하고, 회시(會試)에 이르러 분수(分數)449) 가 서로 대등한 자는 그 원점이 많은 자를 상고하여 뽑으며, 그 중에 이미 식년(式年)을 경과하고서 상사(喪事)를 만나 종제(終制)하고 부시(赴試)를 원하는 자는 그 소거관(所居官)의 명문[文]을 상고하여 원점의 다소를 논하지 말고 모두 부시하게 허락하소서.
1. 제도(諸道)에서 향시에 나아가는 자는 그 소거관의 수령(守令)이 연갑(年甲)·본관(本貫), 통한 경서(經書)를 갖추되, 생원은 모름지기 성균관(成均館)의 원점(圓點) 명문(明文)을 상고하여 3백 점에 찬 자는 도관찰사(都觀察使)에 보고하여, 도회소(都會所)450) 에 이문(移文)하여야 부시하게 하소서.
1. 타도(他道)로 부시함을 일체 금지하게 하소서.
1. 경기(京畿)의 주군(州郡)은 본래 직례(直隷)451) 가 되니, 그 생도(生徒)는 모두 한성시(漢城試)에 나아감을 허락하소서.
1. 부시 생도(赴試生徒)의 액수(額數)는, 관시(館試)에서는 20을 더하여 50인으로 하고, 한성시(漢城試)에서는 10을 더하여 40인으로 하며, 강원도·풍해도에서는 각각 5인을 감하여 10인으로 하고, 그 나머지 충청도에서는 20인, 경상도에서는 30인, 전라도에서는 20인, 평안도에서는 10인, 함길도에서는 10인으로 모두 옛날 그대로 하소서.
1. 삼장(三場)의 분수(分數)의 법452) 은 초장(初場)에서 대통(大通)을 3분(分) 5리(里), 통(通)을 2분, 약통(略通)을 1분, 조통(粗通)을 5리(里)로 하고, 중장(中場)에서는 논(論)·표(表)를 통고(通考)하여 등급을 만들되, 중지상(中之上)을 10분(分)으로 하고, 중지중(中之中)을 9분, 중지하(中之下)를 8분, 하지상(下之上)을 7분, 하지중(下之中)을 6분, 하지하(下之下)를 5분으로 하며, 종장(終場)에서 상지상(上之上)을 13분(分) 5리(里)로, 상지중(上之中)을 12분, 상지하(上之下)를 11분, 중지상(中之上)을 10분, 중지중(中之中)을 9분, 중지하(中之下)를 8분, 하지상(下之上)을 7분, 하지중(下之中)을 6분, 하지하(下之下)를 5분으로 하소서.
1. 동당 향시(東堂鄕試)·한성시·관시(館試)·회시(會試)·전시(殿試)와 생원 향시(生員鄕試)·한성시·회시(會試)에는 모조리 등촉(燈燭) 사용을 금지하게 하소서.
1. 생원으로 원점수(圓點數)에 차지 못한 자가 부시(赴試)하고자 하여 감히 신문고(申聞鼓)를 친 자, 본도(本道)의 향시(鄕試)에 나아가지 아니하고 타도(他道)로 나아간 자, 장시원(掌試員)으로 만 3백 점의 명문을 상고하지 않은 자와 등촉 사용을 금하지 아니한 자는 모조리 교지부종(敎旨不從)의 율(律)로 논죄하게 하소서.
1. 잡과(雜科)의 기예[藝]는 정밀하게 가리지 않을 수 없으니, 이제부터는 각학(各學)의 제조(提調)로 하여금 본사(本司)로 나아가 그 관원(官員)과 더불어 먼저 그 재주를 시험하고, 부거(赴擧)할 만한 자는 본액(本額)의 배(倍)를 뽑아 예조(禮曹)에 전보(傳報)하여야 부시(赴試)하게 하되, 역과(譯科)에 나가는 자가 일본(日本) 문자(文字)를 겸하여 통하면 그 분수(分數)를 더하고, 일본 문자만 통하면 단지 사맹월(四孟月)에 제학(諸學)에서 취재(取才)할 때, 아울러 시험하여 서용(敍用)하게 하소서.
1. 의정(議政) 이상은 반당(伴儻) 1명, 지인(知印)·녹사(錄事) 중에서 1명, 종인(從人) 1명으로 하고, 2품 이상은 반당 1명, 전리(典吏)·서리(書吏) 중에서 1명, 종인 1명으로 하며, 통정(通政) 이하 참고관(參考官)과 대간원(臺諫員)은 서리(書吏) 1명, 종인(從人) 1명으로 하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이 앞서 경중(京中)의 호세 자제(豪勢子弟)들이 다행히 생원시(生員試)에 합격하면, 성균관에 있은 지 얼마 안되어 그 거처(居處)와 음식이 제뜻에 적합하지 못함을 꺼려하여 모두 부형(父兄)의 음덕으로 종사(從士)하고자 하므로 그 외방(外方)에 있는 자가 모이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였다. 간혹 학문에 뜻을 둔 선비가 있다 하더라도 모두가 향곡(鄕曲)453) 의 한미(寒微)한 사람이라, 항상 관(館)에 있기 때문에 왕왕 풍습병(風濕病)을 얻게 되는 까닭에 사람들이 많이 이를 싫어하였다. 그 거관자(居館者)는 늘 3, 40미만이었다. 임금이 진려(軫慮)하여, 유사(攸司)에 명하여서 온돌방을 재(齋)의 한 모퉁이에 지어, 병 앓는 자의 휴양하는 장소로 하였고, 또 의원(醫員)으로 하여금 병후(病候)를 진찰 약으로 치료하게 하였으니, 양사(養士)의 방법이 구비되었다. 그러나, 과거(科擧)하는 때에 이르러서도 관시(館試)의 숫자에 차지 못하므로, 이제 예조에서 원점(圓點)의 법을 아울러 세우니, 대체로 생원으로 하여금 모두 거관(居館)시키려 함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33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67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448]원점(圓點) : 조선조 때 성균관(成均館) 유생(儒生)의 출석·결석을 점검(點檢)하기 위하여, 식당(食堂)에 들어갈 때에 식당지기가 찍는 점. 아침·저녁의 두 끼로써 한 점으로 하고, 쉰 점에 이르면 과거(科擧) 볼 자격을 얻음.
- [註 449]
분수(分數) : 점수.- [註 450]
도회소(都會所) : 각도에 설치한 임시 관아.- [註 451]
직례(直隷) : 직속.- [註 452]
삼장(三場)의 분수(分數)의 법 : 과거의 초시(初試)·복시(覆試)·전시(殿試)에서 성적의 점수를 매기는 법. 첫째를 대통(大通), 그 다음을 통(通), 그 다음을 약통(略通), 그 다음을 조통(粗通)이라 하였음.- [註 453]
향곡(鄕曲) : 시골.○禮曹上科擧之法:
一, 考講置簿之法, 拘而難行, 宜於館試、漢城試、鄕試通四書及四經以上者, 許令赴試。 初場講問之時, 每經書各問一章, 赴試者不必成誦, 臨文以答, 只要融貫旨趣。 其有二章不通者, 不許入赴中場, 會試講問之法, 亦依此例。 一, 考講時, 每經書以初開卷處一章, 歷問三十人, 或至四十人, 竟日而罷。 翼日則又以初開卷處考講如前。 一, 赴試生員, 考其居館圓點, 滿三百者, 許赴館試及鄕試, 至會試有分數相等者, 考其圓點多者取之。 其有旣經式年而遭喪, 終制願赴試者, 考其所居官文, 勿論圓點多少, 皆許赴試。
一, 諸道赴鄕試者, 所居官守令, 具年甲、本貫、所通經書, 生員則須考成均館圓點明文, 滿三百者, 報都觀察使, 移文都會所, 方許赴試。
一, 一禁他道赴試。
一, 京畿州郡, 本爲直隷, 其生徒皆許赴漢城試。
一, 赴試生徒額數, 館試加二十爲五十, 漢城試加一十爲四十, 江原、豐海道各減五人爲十, 其餘忠淸道二十, 慶尙道三十, 全羅道二十, 平安道十, 咸吉道十, 皆仍其舊。
一, 三場分數之法, 初場大通三分五里, 通二分, 略通一分, 粗通五里, 中場論表通考爲等。 中之上爲十分, 中之中九分, 中之下八分, 下之上七分, 下之中六分, 下之下五分。 終場上之上十三分五里, 上之中十二分, 上之下十一分, 中之上十分, 中之中九分, 中之下八分, 下之上七分, 下之中六分, 下之下五分。
一, 東堂鄕試、漢城試、館試、會試、殿試及生員鄕試、漢城試、會試竝禁用燈燭。 一, 生員不滿圓點數, 欲赴試而敢擊申聞鼓者, 不赴本道鄕試, 而赴他道者, 掌試員不考滿三百點明文及不禁用燈燭者, 竝以敎旨不從論。
一, 雜科之藝, 不可不精擇。 自今宜令各學提調, 就於本司, 與其官員先試其才堪赴擧者, 倍於本額, 傳報禮曹, 乃令赴試。 赴譯科者, 兼通日本文字, 則加其分數, 其有只通日本文字, 則但於四孟月諸學取才之時, 幷試敍用。
一, 議政已上, 伴儻一名、知印ㆍ錄事中一、從人一; 二品以上, 伴儻一名、典吏書吏中一、從人一; 通政以下參考官及臺諫員, 書吏一、從人一。"
從之。 先是, 京中豪勢子弟, 幸中生員試, 居館未幾, 憚其居處飮食之未適其意, 因父兄之蔭, 皆欲從仕, 其在外方者, 或聚或散。 間有志學之士, 皆鄕曲寒生, 恒居於館, 往往得風濕之疾, 故人多厭之, 其居館者, 常不滿三四十。 上軫慮, 命攸司作堗於齋之一隅, 以爲患病者休養之所, 又使醫員(胗)〔診〕 候療藥, 其養士之方備矣, 及其科擧之時, 尙不滿館試之數。 今禮曹竝立圓點之法, 蓋欲令生員皆居館也。
- 【태백산사고본】 15책 33권 50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67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註 44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