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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33권, 태종 17년 2월 17일 갑술 1번째기사 1417년 명 영락(永樂) 15년

세자를 찬성 김한로의 집에 두게 하고 공상을 정지하라 명하다

세자를 찬성(贊成) 김한로(金漢老)의 집에 두게 하고, 공상(供上)096) 을 정지하라고 명하니, 빈객(賓客) 변계량(卞季良)·탁신(卓愼)이 예궐(詣闕)하여 아뢰기를,

"오늘 신 등이 왕세자의 저제(邸第)에 나아가, 세자께서 법도를 무너뜨리고 욕심을 마음껏 부려 성상의 염려를 충동시켰다고 극진히 아뢰었더니, 세자께서 말할 때마다 땅에 엎드려 흐느껴 울면서 허물을 뉘우쳐 말씀하기를, ‘내 이 뒤로는 다시 이 같은 일은 하지 않을 것이다.’ 하기에, 변계량(卞季良)이 고하기를, ‘세자께서는 지난번에도 깊이 구종수(具宗秀)의 유혹을 듣고 감히 부도(不道)한 짓을 행하여 성상께서 염려하게 하고, 그리고 세자께서 허물을 뉘우쳐 스스로 맹세하여 말하기를, 「성상께서는 아버지이니 끝내 생각하여 주심이 있을 것이지만, 하늘이야 어찌 나를 생각해 줄 것이냐.」하여, 정녕(丁寧)하게 주상께 고하였습니다. 그런데 한 달도 못되어 또 이러한 거동이 있으시니 세자께서 비록 「내 다시는 이런 일을 하지 않겠다.」고 말하더라도 저희들이 어떻게 갑자기 믿겠습니까?’하니, 세자께서 말하기를, ‘삼가 다시는 이같이 않겠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전지(傳旨)하기를,

"경 등은 빈사(賓師)로서 나아가 보았다니 옳다. 그러나 세자가 일찍이 하늘을 가리키며 말하고서도 지금 말을 실천하지 못하니, 내 어찌 믿고 곧이듣겠는가? 또 성심(誠心)으로 허물을 고친 자취를 남에게 보여 주기란 가장 어려운 것인데, 그 자취를 장차 무엇으로써 나에게 보일 것인가? 경은 돌아가 다시 묻고 오도록 하라."

하니, 대개 임금은 세자가 황음(荒淫)하여 군부(君父)의 가르침을 따르지 아니하므로 끝내 훈회(訓誨)함으로써 그 기질(氣質)을 변화시킬 수 없음을 알고, 세자로 하여금 신명(神明)을 경외(敬畏)하여 행여나 행실을 고치고 생각을 바꾸게 하려고 하였었다. 변계량 등에게 밀교(密敎)하여 말하기를,

"경 등이 세자의 실수를 극진히 아뢰어 세자로 하여금 뉘우쳐 깨닫게 하고, 세자가 다시는 전일의 행동을 밟지 않도록 종묘(宗廟)에 서고(誓告)하게 하라."

하여, 변계량 등이 돌아가 세자에게 왕지(王旨)를 고하니, 세자가 명을 듣고 말하였다.

"나의 마음은 지극하지만 어떻게 하여야 할지를 알지 못하겠으니, 원컨대, 빈객(賓客)들이 밝게 나를 지도하여 주면 내 오직 지도하는 대로 따르겠소."

변계량 등이 말하기를,

"세자께서 마음의 말씀에 따르는 데 있는 것이지, 저희들이 지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니, 세자가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예궐(詣闕)하여 서고(誓告)하기를, ‘내가 만약 전의 행실을 고치지 않는다면 제대로 죽음을 얻지 못할 것입니다.’고 하였는데, 이번에도 이 말로써 고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였다. 변계량(卞季良) 등이,

"그것은 말씀이 자세하지 못할 뿐 아니라, 실지로 정성과 공경으로 허물을 고친다는 자취도 없는 것이니, 어찌 그 말로써 고함이 옳겠습니까?"

하니, 세자가 우러러 생각하다가,

"마음은 지극하지만 어떻게 말을 해야 할는지 모르겠으니, 원컨대, 빈객들이 나에게 밝게 가르쳐 준다면 내가 그 말을 모두 따르겠소."

하였다. 변계량 등이 말하기를,

"만약 하늘에 고하고 문소전(文昭殿)에 고하고, 사직(社稷)에 고하고 종묘(宗廟)에 고한다면 좋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과 사직은 멀고, 조종(祖宗)의 소소(昭昭)한 영령에게는 더욱 망령되게 고함이 불가합니다. 이미 고한 뒤에 조종의 영령을 속일 수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도 이르기를, ‘세자가 이미 종묘의 영령에게 고했다.’고 하였은즉, 앞으로 다시는 전일과 같은 부도(不道)를 행하지 않을 것으로 신 등도 모두 믿고 듣겠습니다. 그러므로 저희들은 종묘에 고함이 절실하다는 것입니다."

하니, 세자가 우러러 생각하다가 한참 만에야 말하기를,

"내 장차 무슨 낯으로 종묘와 조종의 영령 앞에 뵙겠는가?"

하였다. 탁신(卓愼)이 고하기를,

"그 말씀은 진실로 옳습니다. 그러나, 세자께서는 종묘에 고하고 나서는 다시 전일과 같은 일을 행할 수 없을 것이라고 꺼려하는 것이 있어서 그 말씀을 하시는 것이 아닙니까?"

하니, 세자가,

"그것이 무슨 말이오? 그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오. 내 장차 고하려 하니, 종묘에 고할 서문(誓文)을, 원컨대, 빈객들이 내 말을 듣고 지으시오. 종묘에 고하고 나서 또 상서(上書)하고자 하니 아울러 글을 지으시오."

하였다. 변계량 등이 이 말을 듣고 예궐하여 그대로 아뢰니, 임금이 말하였다.

"옳다. 만약 성심(誠心)으로 허물을 고쳐 종묘에 고한다면 내 어찌 믿지 않겠는가? 이미 종묘에 고하고서 또 전일과 같다면 그것은 실로 조종의 영령을 속이는 것이니, 내 어찌 믿지 않겠는가?"


  • 【태백산사고본】 15책 33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148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註 096]
    공상(供上) : 물건을 공급함.

○甲戌/命置世子于贊成金漢老之第, 停供上。 賓客卞季良卓愼詣闕啓曰: "今日臣等進王世子之邸, 極陳世子敗度縱欲, 以動上念, 世子伏地, 每言噓唏悔過曰: ‘吾今而後, 願不復如是也。’ 季良告之曰: ‘世子曩者深聽具宗秀之誘, 敢行不道, 致上位動念, 而世子悔過自誓曰: 「上位父也, 終有所恤, 惟天豈恤我乎?」 丁寧告上, 不過一月, 而又有是擧, 世子雖曰我勿復如是, 某等何敢遽信?’ 世子曰: ‘愼勿復如是也。’"

傳旨曰: "卿等以其賓師進見, 然矣。 然世子曾指天爲辭, 而今不能踐言, 吾何信聽? 且誠心悔過之迹, 示人最難, 其迹將何以示我乎? 卿歸更問以來。" 蓋上以世子荒淫而不率君父之訓, 知終不可以訓誨而變化其氣質也。 欲令世子敬畏神明, 而庶幾改行易慮, 密敎季良等曰: "卿等極陳世子之失, 使之悔悟, 俾世子誓告宗廟, 以無復蹈前日之行。" 季良等回告世子以王旨, 世子聞命曰: "予之心則至矣, 而不知所以爲之。 願賓客等明以指我, 我惟指是從。" 季良等曰: "在世子從心言之而已, 非某等所得而指之也。" 世子曰: "予曾詣闕誓告曰: ‘予若不改前行, 不得其死。’ 今亦以是告之若何?" 季良等曰: "此非特言之不詳, 實無誠敬改過之迹也。 何可以是告乎?" 世子仰而思之曰: "心則至矣, 而不知所以言之。 願賓客等明以敎我, 我皆從之。" 季良等曰: "若告天、告文昭殿、告社稷、告宗廟, 則可矣。 然天與社稷則遠矣, 祖宗昭昭之靈, 尤不可以妄告。 旣告之後, 祖宗之靈, 其可欺乎? 殿下亦謂世子旣告宗廟之靈, 則將不復行前日之不道, 某等亦皆信聽。 是以, 某等以告宗廟爲切。" 世子仰而思之良久, 乃曰: "我將何顔, 而見宗廟祖宗之靈之前乎?" 告曰: "是言誠是矣。 然世子無乃以謂告宗廟, 則不可復行前日之事, 有所憚而發是言歟?" 世子曰: "是何言歟? 不謂是也。 我將告之, 告宗廟誓文, 願賓客等聽我言而製之。 旣告宗廟之後, 又欲上書, 竝製之。" 季良等聞之, 詣闕以啓, 上曰: "然矣。 若誠心改過而告宗廟, 則予何不信? 旣告宗廟, 而又如前日, 則是實欺祖宗之靈也, 予何不信哉?"


  • 【태백산사고본】 15책 33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148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