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태종실록 33권, 태종 17년 1월 19일 병오 3번째기사 1417년 명 영락(永樂) 15년

사간원에서 집현전 창립·과거·향역·축성·양잠 등 치도 6조목을 건의하다

사간원에서 치도(治道)에 대한 몇 가지를 올렸다.

"1. 인재(人材)는 국가의 기용(器用)이므로 미리 양성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금 이르는 바 수문전(修文殿)·집현전(集賢殿)·보문각(寶文閣) 등은 그 이름만 있을 뿐이요, 그 실상이 없으니, 바라건대, 나라 안에 집현전(集賢殿)을 창립하고 관각(館閣)034) 의 제학(提學) 중에서 글을 주관한 만한 자 수원(數員)을 택하여 제조(提調)로 삼으소서. 3품 이하의 시직(時職)·산직(散職) 문신으로 나이가 젊고 자질이 근사(近似)한 자를 가려 뽑도록 명하여, 그 액수(額數)035) 를 정하고, 모두 구전(口傳)036) 으로 종사(從仕)하게 하되, 제조(提調)는 항상 이곳에 모여서, 혹은 경사(經史)037) 를 강독(講讀)하게 하며, 혹은 글제[題]를 명하여 제술(製述)하게 함으로써 문풍(文風)을 진작(振作)케 하소서.

1. 《육전(六典)》 안에, ‘과거(科擧)의 초장(初場)에는 강론(講論)만을 전용(專用)한다.’고 하였으나, 영락(永樂) 5년 4월 일에, 길창군(吉昌君) 권근(權近)이 진언(陳言)하여 수교(受敎)하기를, ‘강론(講論)은 파하고 제술(製述)을 시험하라.’하여, 이것이 《속육전(續六典)》에 실려 시행한 지 수년이 되었는데, 이제부터는 한결같이 《원전(元典)》을 좇아 다시 강론(講論)을 쓰게 함이 진실로 아름다운 법이라 하겠습니다. 신 등의 생각으로는 제술(製述)만을 시험하고 강론(講論)에 근본을 두지 않는다면, 부조(浮躁)038) 함에 치우쳐 명경(明經)의 실상을 볼 수 없을 것이고, 강론(講論)으로써 시험하고 제술(製述)을 시험하지 않는다면 고체(固滯)039) 함에 치우쳐 문사(文辭)의 기상을 더할 수 없을 것이니, 바라건대, 이제부터는 강론(講論)과 제술(製述)의 법을 둘다 두어서 식년(式年)040) 에 이르면, 예조(禮曹)에서 임시로 취지(取旨)하여, 혹은 의의(疑義)로써 시험하고 혹은 강론으로써 시험하여 유생(儒生)으로 하여금 모두 경학(經學)과 문사(文辭)에 힘쓰도록 하소서.

1. 향리(鄕吏)로서 면역(免役)하는 법은 《육전(六典)》에 실려 있어 시행한 지 이미 오래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군공(軍功)으로 인하여 면역(免役)되었다면 할 말이 있겠지만, 일찍이 적(敵)을 이기어 사공패(賜功牌)041) 를 받은 일이 없는데도, 단지 원수(元帥)의 입안(立案)만으로 향역(鄕役)을 규면(規免)042) 한 자가 간혹 있습니다. 이로 말미암아 아전의 액(額)043) 이 날로 적어져 폐단이 적지 않으니, 바라건대, 사패(賜牌)를 제외하고, 단지 원수의 입안만으로 향역을 면한 자는 모두 본역(本役)에 종사하게 하여 주군(州郡)을 충실하게 하소서.

1. 성곽(城郭)은 폭도를 막고 백성을 보호하는 것이라 완비(完備)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따라서 지금 각도의 요해처(要害處)에 성자(城子)를 쌓도록 명하여 환란(患亂)에 대비하는 염려가 지극합니다만, 신 등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민력(民力)을 사용함은 반드시 그 해의 풍흉(豐凶)을 보아야 할 것이라 여겨집니다. 근년 이래로 풍재(風災)와 한기(旱氣)가 서로 잇따라 곡식을 해쳤고, 지난해의 농삿달에는 가뭄[亢陽]으로 비가 오지 않더니, 다행히 전하의 지극한 정성이 하늘을 감동케 하여 단비[甘雨]가 패연(霈然)044) 하게 내려, 백성들이 가을 농사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큰 풍년[大稔]에는 이르지 못하여서 공물(貢物)을 바치고 빚을 갚은 나머지 민간에 저장된 곡식은 넉넉하다고 말할 수 없습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이 역사를 잠깐 정지하였다가 연사가 풍년들고 민용(民用)045) 이 넉넉해진 뒤에 거행하면 어찌 민생(民生)의 다행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만약 부득이하다면 1도(一道)마다 1성(一城)씩만을 쌓게 함이 어떻겠습니까?

1. 잠상(蠶桑)은 왕정(王政)의 근본이요, 민사(民事)의 소중한 것입니다. 따라서 전하께서 전년부터 외방(外方)으로 누에치기에 적당한 곳에 사인(使人)을 보내 분양(分養)케 하였으니, 그 소이는 백성이 근본에 힘쓰기를 권장하는 뜻의 지극함입니다. 그러나, 공상(公桑)이 자라고 무성하기를 기다리지 않고 해마다 누에를 치게 한다면, 혹 백성의 이익을 빼앗음이 될까 두려우니, 엎드려 바라건대, 몇 해 동안 기한을 두었다가 시행토록 하소서."

육조(六曹)에 내려 의논[擬議]하게 하니,

"향리(鄕吏)로서 공패(功牌)도 없이 향역(鄕役)을 규면(規免)한 자들은 마땅히 모두 본역(本役)으로 돌려보내소서."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33권 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44면
  • 【분류】
    재정-역(役)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군사-관방(關防) / 농업-양잠(養蠶)

  • [註 034]
    관각(館閣) : 교서관(校書館)과 예문관(藝文館).
  • [註 035]
    액수(額數) : 원수(員數).
  • [註 036]
    구전(口傳) : 3품 이하의 관원을 임명할 때 전조(銓曹)에서 인물을 천거하면 임금이 구두(口頭)로 이를 승인하던 제도. 3망(三望)을 거치지 않고 많은 사람을 임명할 때 쓰던 제도임.
  • [註 037]
    경사(經史) : 경서(經書)와 사기(史記).
  • [註 038]
    부조(浮躁) : 성질이 부박(浮薄)하고 경조(輕躁)함.
  • [註 039]
    고체(固滯) : 성질이 편협하고 너그럽지 못함.
  • [註 040]
    식년(式年) : 과거 보이는 시기로 정한 해.
  • [註 041]
    사공패(賜功牌) : 군공(軍功)을 세운 사람에게 내려 주던 패(牌). 공패(功牌).
  • [註 042]
    규면(規免) : 책임이나 맡은 일을 면하려고 꾀함.
  • [註 043]
    액(額) : 원수(員數).
  • [註 044]
    패연(霈然) : 비가 억수로 쏟아지는 모양.
  • [註 045]
    민용(民用) : 백성들의 비용.

○司諫院上治道數條:

一, 人材, 國家之器用, 不可以不預養也。 今所謂修文集賢寶文等閣, 徒有其名, 而無其實。 乞於國中, 創立集賢殿, 擇館閣提學中, 可主文者數員, 以爲提調, 命擇三品以下時散文臣年富資近者, 定其額數, 皆口傳從仕。 提調常會于此, 或講讀經史, 或命題製述, 以振文風。

一, 《六典》內, 科擧初場, 專用講論。 永樂五年四月日, 吉昌君 權近陳言受敎, 罷講論, 而試製述, 載在《續六典》, 行之數年。 今一從《元典》, 復用講論, 誠爲令典。 臣等以爲, 但試製述, 而不本於講論, 則失於浮藻, 而無以見明經之實; 試以講論, 而不試其製述, 則失於固滯, 而無以增文辭之氣。 乞自今講論製述之法, 兩皆存之, 至於式年, 禮曹臨時取旨, 或疑義、或講論, 俾儒生皆務經學文辭。

一, 鄕吏免役之法, 載在《六典》, 行之已久, 然其中以軍功而免役, 有可言者, 曾無克敵, 受賜功牌, 而但以元帥立案, 規免鄕役者, 間或有之。 由是吏額日減, 弊固不小。 乞除賜牌外, 但有元帥立案者, 皆令從本, 以實州郡。

一, 城郭所以禦暴而保民, 不可不完。 今於各道要害之處, 命築城子, 備患之慮至矣。 臣等竊謂, 用民力, 必視歲之豐歉。 近年以來, 風災旱氣, 相仍害穀, 而去歲農月, 亢陽不雨, 幸賴殿下至誠格天, 甘雨霈然, 民不失秋。 然不至於大稔, 而納貢償債之餘, 民間所儲之粟, 不可謂之足矣。 伏望姑停此役, 視年豐稔, 民用有餘, 然後乃擧, 則豈非民生之幸? 如不得已, 則每於一道, 只築一城何如?

一, 蠶桑王政之本, 民事之所重也。 殿下自前年, 於外方宜蠶之處, 遣使分養, 其所以勸民務本之義至矣。 然不待公桑長茂, 而連年養蠶, 恐或奪民之利。 伏望期以數年, 然後行之。

下六曹擬議: "鄕吏無功牌, 而規免役者, 宜悉還本役。" 從之。


  • 【태백산사고본】 15책 33권 4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44면
  • 【분류】
    재정-역(役)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군사-관방(關防) / 농업-양잠(養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