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덕왕후 및 성비가 계모인가 하는 문제를 신하들에게 묻다
편전에서 정사를 보았다. 임금이 좌우에 이르기를,
"계모(繼母)란 무엇을 말하는 것인가?"
하니, 유정현(柳廷顯)이 대답하기를,
"어머니가 죽은 뒤에 이를 계승하는 자를 계모라고 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그렇다면 정릉(貞陵)이 내게 계모가 되는가?"
하니, 대답하기를,
"그때에 신의 왕후(神懿王后)가 승하하지 않았으니, 어찌 계모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정릉(貞陵)이 내게 조금도 은의(恩義)가 없었다. 내가 어머니 집에서 자라났고 장가를 들어서 따로 살았으니, 어찌 은의가 있겠는가? 다만 부왕(父王)이 애중(愛重) 하시던 의리를 생각하여 기신(忌晨)의 재제(齋祭)를 어머니와 다름 없이 하는 것이다."
하고, 또 묻기를,
"성비(誠妃)는 내게 계모인가?"
하니, 유정현(柳廷顯) 등이,
"계모입니다."
하매, 임금이,
"그렇다면 성비가 내 궁(宮)에 오면 중궁(中宮)은 남쪽을 향하고, 성비는 동쪽에 있으니, 그 예가 잘못 되었다."
하였다. 조말생(趙末生)이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하윤(河崙)과 더불어 성비의 일을 의논하였는데, 하윤이 말하기를, ‘제후(諸侯)는 두 번 장가 들지 않으니, 예(禮)에 두 적처(嫡妻)가 없다.’고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이것은 내가 알지 못하는 것이다."
하고, 예조 참판(禮曹參判) 허조(許稠)와 조말생에게 묻기를,
"제후(諸侯)는 재취를 하지 않으므로 예에 두 적처가 없다는 것은, 이것은 적비(嫡妃)의 생시(生時)를 말하는 것인가? 죽은 뒤를 말하는 것인가? 만일 죽은 뒤를 말한다고 하면 이것은 부인(婦人)의 도(道)와 같은 것이다."
하였다. 허조(許稠)는,
"죽은 뒤에도 또한 재취(再娶)하지 않아야 마땅합니다."
하고, 조말생은,
"《춘추(春秋)》에 이르기를, ‘성자(聲子)389) 로 계실(繼室)390) 을 삼았다.’ 하였으니, 신은 적비가 죽은 뒤에는 재취하여야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하니, 임금이 허조에게 말하였다.
"《춘추전(春秋傳)》의 주(註)에 이 일을 자세히 말하였으니, 경은 자세히 보라."
- 【태백산사고본】 14책 32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32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庚辰/視事于便殿。 上謂左右曰: "繼母者, 何謂也?" 柳廷顯對曰: "母歿而繼之者, 謂之繼母。" 曰: "然則貞陵於予爲繼母乎?" 對曰: "于時神懿未薨, 豈得謂之繼母?" 上曰: "貞陵片無恩義於我。 我長於母家, 有室而居, 豈有恩義哉? 但念父王愛重之義, (忌晨)〔忌辰〕 齋祭, 無異於母也。" 又問誠妃於予繼母乎?" 廷顯等曰: "繼母也。" 曰: "然則誠妃來吾宮, 中宮向南, 誠妃在東, 其禮失矣。" 趙末生啓曰: "臣嘗與河崙議誠妃之事, 崙言: ‘諸侯不再娶, 於禮無二嫡。’" 上曰: "此予所不知。" 乃問禮曹參判許稠及末生曰: "諸侯不再娶, 於禮無二嫡, 是嫡妃生時之謂乎? 歿後之謂乎? 若謂歿後, 則是如婦人之道也。" 稠曰: "歿後亦不宜再娶。" 末生曰: "《春秋》云繼室以聲子, 則臣謂歿後宜再娶。" 上謂稠曰: "《春秋傳》註詳言此事, 卿宜仔細看。"
- 【태백산사고본】 14책 32권 1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32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비빈(妃嬪)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