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과·무과의 별시를 시행하게 하다
예조(禮曹)·병조(兵曹)에 명하여 문과(文科)·무과(武科)를 별시(別試)367) 하였다. 임금이,
"지난 여름에 가뭄을 근심하였으니, 많은 사람이 함께 기뻐하는 일을 하고자 한다. 장차 경복궁(景福宮)에 거둥하여 문과·무과를 시험하겠다."
하고, 이어서 주서(注書)에게 명하여 하윤(河崙)에게 고하니, 하윤이,
"명년이 식년(式年)368) 이고, 또 외방(外方) 사람이 시기에 맞추어 오지 못하면 실망할 것이니, 청컨대, 새 사람을 시험하지 말고 중시과(重試科)369) 를 베푸소서."
하였다. 임금이,
"중시(重試)는 내가 옛날에 이미 하였고 외방 사람은 오는 식년이 또한 있으니, 지금 우선 서울 사람을 시취(試取)하여 음덕(陰德)을 남기는 것이 가하다. 문과(文科)는 대책(對策)을 시험하고, 무과(武科)는 기사(騎射)·보사(步射)와 창을 쓰는 것[弄槍]을 시험하라."
하고 이어서,
"이문(移文)하여 외방 사람이 오는 것을 금하라."
하니, 서선(徐選)이 대답하기를,
"다만 부르지 않을 뿐이지 반드시 금할 것은 없지 않습니까?"
하였다. 서운관(書雲觀)에 명하여 택일(擇日)하니, 서운관에서 18일·22일로 아뢰었다. 임금이,
"태조(太祖) 생존시에는 3명일(名日)370) 을 만나면 헌수(獻壽)하였는데, 지금은 15일에 경복궁에 거둥하여 상왕(上王)을 받들어 맞아 헌수(獻壽)하고 이어서 문과·무과를 시험하고자 한다. 이날이 길하냐, 길하지 않으냐?"
하니, 서운관이 통길(通吉)371) 로 대답하였다. 병조 참판(兵曹參判) 이춘생(李春生)이 아뢰기를,
"신이 일찍이 《무경칠서(武經七書)》를 강하여 벼슬이 2품에 이르렀으나, 아직도 병법을 알지 못합니다. 지금 만일 다만 기사(騎射)·보사(步射)·창쓰는 것[弄槍]만을 시험하고 병서(兵書)를 시험하지 않으면 갑사(甲士)가 모두 다투어 시험에 나올 것이니, 비록 사람을 얻더라도 어떻게 장수가 되겠습니까? 청컨대, 무경의 칠서와 《삼경(三經)》 이상을 시험하고, 혹 문자를 아는 자로 부시(赴試)하게 허락하소서."
하니, 임금이 그렇게 여기었다. 이에 병조(兵曹)에서 계목(啓目)을 올리기를,
"지금 무과에 응시하는 인원은 처음에 8월 3일로 훈련관(訓鍊觀)과 함께 취재(取才)하되, 《병서삼경(兵書三經)》 이상과 보사(步射) 1백 50보, 기사(騎射) 3과녁[革], 창쓰는 데 입격(入格)한 자로 하여금 응시하게 허락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이춘생이 또 아뢰기를,
"이 앞서 친시(親試)에는 3품 이하가 응시하고, 식년(式年)에는 4품 이하가 응시하였는데, 이번에는 어떤 것을 따르렵니까?"
하니, 임금이,
"식년의 예를 따르겠다."
하였다.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부시(赴試)하는 생도는 성명을 기록할 때를 당하여 《문공가례(文公家禮)》를 강(講)하는 것은 없애고, 시직(時職)과 산직(散職) 4품 이하는 전례에 의하여 부시하는 것을 허락하되, 모두 사모(紗帽)와 품대(品帶)를 착용하고, 경사(經史) 시무책(時務策) 일도(一道)로 시취(試取)하는 여러 일을 전례에 의하여 본조(本曹) 계제사(稽制司)372) 2원(員)으로 주관하게 하고, 독권관(讀券官)은 양부(兩府) 이상 2원, 3품 이상 2원으로 하고, 거두어 관장하는 시권관(試券官)·봉미관(封彌官)373) ·대독관(對讀官)은 아울러 전례에 의하고, 시권을 거두는 것은 유시(酉時)374) 까지 한정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르고, 이조(吏曹)에 명하여 각사(各司)의 원리(員吏)가 문과·무과에 부시(赴試)하기를 자원하는 자는 시가(試暇)375) 를 주게 하였다. 병조(兵曹)에서 아뢰기를,
"무과를 친시(親試)하는 여러 일은 전시례(殿試例)에 의하여 무선사(武選司)가 주관하고, 참고관(參考官)과 동참고관(同參考官)은 병조 당상관(兵曹堂上官)·훈련관 제조(訓鍊觀提調)로 하고, 봉전관(封箭官)은 훈련관 낭청(訓鍊觀郞廳)으로 하고, 부시하는 사람은 《무경(武經)》에 3서(書) 이상을 통하면 시취(試取)하라는 것은 일찍이 하교(下敎)가 있었고, 향공(鄕貢)은 《무경칠서(武經七書)》와 2백 보(步) 중에 능한 자가 있으면 바야흐로 부시하는 것을 하락하소서. 친시할 때에는 보사(步射)의 3전(箭)은 2백 보, 1백 50보, 70보에 각각 한 화살을 쏘는 것을 쓰고, 기사(騎射) 3과녁[革]을 1차(次)로, 농창(弄槍)을 1차(次)로 하고, 분수(分數)는 일찍이 내린 교지(敎旨)에 의하소서."
하니, 모두 그대로 따랐다. 예조(禮曹)에 명하여 4품 이하와 생도들을 성균관(成均館)에 모아서 의(義) 1도(道)를 시험하여 50인을 취하고, 병조에서 또한 50인을 취하여 친시(親試)에 부시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32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책 130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왕실-의식(儀式)
- [註 367]별시(別試) : 나라의 경사(慶事)가 있을 때나 또는 병년(丙年)마다 하던 문무(文武)의 과거.
- [註 368]
식년(式年) : 과거를 보이기로 정한 해. 태세(太歲)가 자(子)·오(午)·묘(卯)·유(酉)가 드는 해임.- [註 369]
중시과(重試科) : 이미 과거에 급제한 조정의 관리들에게 다시 보이던 시험. 이 시험에 합격한 사람은 정3품 당상관(堂上官)에 승진 시켰음.- [註 370]
3명일(名日) : 임금의 탄신일(誕辰日)과 정월 초하루 및 동지(冬至)의 세 명절. 삼명절(三名節).- [註 371]
통길(通吉) : 모두 길(吉)함.- [註 372]
계제사(稽制司) : 예조(禮曹)의 한 분장(分掌). 의식(儀式)·제도(制度)·조회(朝會)·경연(經筵)·사관(史館)·학교(學校)·과거(科擧)·인신(印信)·표전(表箋)·책명(冊命)·천문(天文)·누각(漏刻)·국기(國忌)·묘휘(廟諱)·상장(喪葬) 등에 관한 일을 맡아 보았음.- [註 373]
봉미관(封彌官) : 과거를 볼 때 답안지의 오른편 끝에 성명·생년월일·주소·사조(四祖)를 쓰고 봉(封)하여 붙였는데, 이를 떼는 시관(試官).- [註 374]
유시(酉時) : 오후 5시 부터 7시.- [註 375]
시가(試暇) : 관원에게 정기적으로 주던 규정된 휴가(休暇). 말미.○命禮曹、兵曹別試文武科。 上曰: "過夏憂旱, 欲爲衆人所共喜之事。 將幸景福宮, 試文武科。" 仍命注書, 告于河崙, 崙曰: "明年是式年, 且外方之人不及來, 則缺望。 請毋試新人, 而設重試科。" 上曰: "重試則予昔者已爲之矣。 其外方之人則來式年亦有之矣, 今姑將京中人試取, 以垂陰德可也。 文科則試對策, 武科騎步射、弄槍耳。" 仍曰: "移文禁外方人至。" 徐選對曰: "但不召之耳, 不必禁之也。" 命書雲觀擇日, 書雲觀以十八日、二十二日聞, 上曰: "太祖生時, 遇三名日則獻壽, 今欲以十五日幸景福宮, 奉迎上王獻壽, 仍試文武科, 是日吉乎否?" 書雲觀以通吉對。
〔○〕 兵曹參判李春生啓: "臣嘗講武經七書, 位至二品, 尙不知兵。 今若但以騎步射、弄槍而不試兵書, 則甲士皆爭赴試, 雖得人, 何以爲將帥乎? 請試武經七書及三經以上, 或以解文字者許令赴試。" 上然之。 於是, 兵曹進啓目: "今武科赴試人員, 始以八月初三日, 同訓鍊觀取才, 以兵書三經以上, 步射一百五十步, 騎射三革, 弄槍入格者許令赴試。" 從之。 春生又啓: "前此親試則三品以下赴試, 式年則四品以下赴試, 今將何從?" 上曰: "依式年例。" 禮曹啓: "赴試生徒當姓名記錄之時, 除講《文公》 《家禮》, 時散四品以下, 依前例許令赴試, 竝着紗帽品帶。 經史、時務策一道試取, 諸事依前例, 令本曹稽制司二員主之。 讀券官兩府以上二員, 三品以上二員, 其收掌試券官、封彌官、對讀官竝依前例, 收券限酉時。" 從之。 命吏曹, 各司員吏自願赴文武科者, 給試暇。 兵曹啓: "武科親試諸事, 依殿試例, 武選司主之, 參考官、同參考官以兵曹堂上官、訓鍊觀提調, 封箭官以訓鍊觀郞廳爲之。 赴試人武經通三書以上試取, 曾有敎, 其鄕貢則七書、二百步中有能者, 方許赴試。 親試之時, 步射三箭, 用二百步及一百五十步、七十步各一箭, 騎射三革, 一次弄槍、一次分數, 依曾降敎旨。" 皆從之。 命禮曹聚四品以下及生徒等于成均館, 試義一道, 取五十人, 兵曹亦取五十人, 使赴親試。
- 【태백산사고본】 14책 32권 9장 B면【국편영인본】 2책 130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인사-관리(管理) / 왕실-의식(儀式)
- [註 36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