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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31권, 태종 16년 6월 4일 갑자 5번째기사 1416년 명 영락(永樂) 14년

안성 부원군 이숙번에게 농장에 거주하게 하다. 이숙번의 죄를 청하는 여러 상소문

안성 부원군(安城府院君) 이숙번(李叔蕃)에게 명하여 농장(農庄)에 거주하게 하였다. 처음에 임금이 우의정 박은(朴訔)과 병조 판서 이원(李原)을 불러서 이숙번(李叔蕃)이 범한 죄상을 유시(諭示)하였다. 그때에 임금이 가뭄을 걱정하고, 여러 대신들이 날마다 나아가 다투어 미재(弭災)의 의논을 드리고 두려워하고 몸둘 곳을 모르고 분주(奔走)하였으나, 이숙번은 병을 핑계하여 여러 달 동안 대궐에 나오지 아니하였다.

이날 승정원(承政院)에 전지(傳旨)하기를,

"이숙번은 근래에 어찌 하여 출입하지 않는가?"

하고, 인하여 불경(不敬)·무례(無禮) 등 여섯 가지 죄목을 헤아려 말하기를,

"이와 같은 신하가 있으니, 하늘이 어찌 비를 내리겠는가?"

하니, 좌대언(左代言) 서선(徐選)이 말하였다.

"지난 5월 25일에 신이 마침 강무(講武)의 상소(常所)를 하나로 정하는 일 때문에 명(命)을 받고, 이숙번의 집에 이르니, 이숙번이 말하기를, ‘오늘날의 정사는 어떠한가?’ 하므로, 대답하기를, ‘박은(朴訔)이 우의정(右議政)이 되었다.’하니, 이숙번이 기뻐하지 않는 기색이었는데, 말하기를 ‘박은은 일찍이 내 밑에 있었는데 명이 통하는 자이다.’고 하였습니다. 그 마음은 필시 ‘어찌 하여 나를 버리고 박은을 천거하였는가?’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마침 삼공신(三公臣)과 우의정 박은 등이 상소(上疏)하였다.

"공자(孔子)가 말하기를, ‘임금을 섬기는 데 예절을 다한다.’고 하였고, 또 말하기를 ‘신하가 임금을 충성으로 섬긴다.’고 하였으니, 만약 인신(人臣)이 된 자가 무례(無禮)하고 불충(不忠)하다면, 죄가 이보다 큰 것은 없습니다. 이숙번이 성상의 은혜를 치우쳐 입었으니, 마땅히 충성을 다하고 예절을 다하여서 만에 하나라도 갚아야 합니다. 성상이 일찍이 칠성군(漆城君) 윤저(尹抵)를 불러 경계하기를 ‘붕당(朋黨)을 만들지 말라.’고 하였는데, 윤저권완(權緩)에게 전하여 이숙번에게 사연이 알려졌습니다. 권완이 마침내 그 말을 통지하니, 이숙번이 이를 듣고 마음으로 분개하고 원망함을 품고, 내전(內殿)에 들어가 뵈올 때 사색(辭色)에 나타냈습니다. 참찬의정부사(參贊議政府事)가 되었을 때에도 정승(政丞) 하윤(河崙)과 성상 앞에 들어가 앉았다가, 이숙번이 먼저 나오고, 하윤이 머물러 있으면서 국정을 아뢨는데, 이숙번이 계하(階下)에 잠복하여 엿듣고 의이(疑貳)273) 하는 마음을 가졌습니다. 주상이 장차 태안(泰安)에서 강무(講武)하려 할 때에도 이숙번이 정승 하윤의 말을 가지고 나아가 고하기를 ‘순제(蓴堤)에 운하[渠]를 파는 것은 중론(衆論)이 분분(紛紛)하여 아직 가부(可否)를 정하지 못하였으니, 성상께서 친히 보시고 재단(裁斷)하면 다행하겠습니다.’고 하였습니다. 그 후 성상께서 그 땅으로 행차하시어 여러 대신과 함께 이를 의논하였으나, 이숙번은 옆에서 모시고 있으면서도 홀로 말을 하지 아니하였습니다. 성상께서 재삼 묻기에 이르러서도 또한 대답하지 아니하였으니, 대개 반복(反覆)하는 마음을 품어서입니다. 민무구(閔無咎)민무질(閔無疾)이 그 죄에 스스로 복죄한 것은 실로 신충(宸衷)에 의하여 결단된 것인데, 이숙번이 들어가 고하기를, ‘세자(世子)가 신을 싫어하지 아니하겠습니까?’ 하였고, 그 뒤 며칠 만에 문성군(文城君) 유양(柳亮)과 모의하여 함께 대궐로 나아가 이에 고하기를, ‘신 등은 이제부터 세자(世子)를 상견(常見)하기를 원합니다.’ 하였으니, 금장(今將)274) 의 마음이 있었지 않겠습니까? 그가 무례하고 불충함이 심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유사(攸司)에 내려 그 정상을 국문(鞫問)하여 그 죄를 밝게 결단하여서 뒤에 오는 무례하고 불충한 자들의 감계(鑑戒)로 삼으소서."

임금이 바로 예조 우참의(禮曹右參議) 정효문(鄭孝文)으로 하여금 이숙번에게 전지(傳旨)하여 그 불경한 죄를 헤아리게 하고, 이어서 명하여 자원(自願)에 따라 연안부(延安府)로 나가 거주하게 하였다. 사헌부의 대사헌 김여지(金汝知) 등이 상소하니, 대략은 이러하였다.

"대신이 비록 자원(自願)한 곳이라 하더라도 외방(外方)에 있게 하는 것은 관계되는 바가 가볍지 아니합니다. 원컨대, 유사(攸司)로 하여금 범한 것을 국문하여서 법대로 처치하소서."

사간원(司諫院) 우사간 대부(右司諫大夫) 박수기(朴竪基) 등이 상소하였다.

"그윽이 생각하건대, 훈구(勳舊)의 신하는 나라 사람들이 우러러보는 것이니, 무릇 출입이 있게 되면 이를 알지 못함이 없습니다. 이숙번(李叔蕃)은 성명(聖明)을 만나서 지위가 1품에 이르렀는데, 갑자기 외방으로 추방하게 하였으나, 사람들이 그가 범한 것을 알지 못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는 유사(攸司)에 명하여 그 이유를 국문하게 하여 사람마다 밝게 함께 알게 하소서."

형조 판서 안등(安騰) 등이 상소하였다.

"신 등이 듣건대, 근일에 삼공신(三功臣)이 대궐로 나아가 상서(上書)하였다 하는데, 아직 그 연고를 알지 못하다가, 이어서 이숙번이 성문 밖으로 나갔다는 말을 듣고서야, 공신들의 상언한 것이 이숙번의 죄를 청한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숙번은 정사 좌명 공신(定社佐命功臣)으로 지위가 극품(極品)에 이르렀고, 총권(寵卷)도 더함이 있었으니, 만약 그 범한 것이 종묘와 사직에 관계되지 않는다면 삼공신이 어찌 감히 그 죄를 청하였겠습니까? 그러나, 전하께서 다만 외방에 나가 거주하도록 하니, 온 나라의 신하와 백성들이 범한 것을 알지 못하여 놀라와하지 않음이 없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비록 선비로서 미미한 자라 하더라도 죄가 있으면 반드시 유사(攸司)에 내려 추국(推鞫)하여 죄를 정하는 것이 나라의 상전(常典)이라.’하는데, 하물며 훈구(勳舊) 대신으로서 이숙번 같은 자이겠습니까? 원컨대, 전하께서는 유사(攸司)에 명하여 그 직첩을 거두고 실정과 이유를 국문하여 그 죄를 밝게 바로잡아서 뒤에 오는 사람을 경계하게 하소서."

임금이 듣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31권 48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21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

  • [註 273]
    의이(疑貳) : 의심하고 딴 마음을 먹음.
  • [註 274]
    금장(今將) : 신하가 임금을 배반하여 난(亂)을 일으키는 것. 장(將)은 역란(逆亂)을 뜻함. 장(將).

○命安城府院君 李叔蕃出居農庄。 初, 上召右議政朴訔、兵曹判書李原, 諭李叔蕃所犯之罪。 時, 上憂旱, 諸大臣日進爭獻弭災之議, 跼蹐奔走, 淑蕃托疾, 累月不詣闕。 是日傳旨承政院曰: "叔蕃近來何不出入乎?" 因數不敬無禮六事曰: "有如此之臣矣, 天何雨乎?" 左代言徐選曰: "去五月二十五日, 臣適以講武常所一定, 承命至叔蕃第, 叔蕃曰: ‘今日政事何如?’ 答曰: ‘朴訔爲右議政。’ 叔蕃有不豫色然曰: ‘嘗在吾下, 命通者也。’ 其心必以謂, 何捨我而擧也。" 會, 三功臣、右議政朴訔等上疏曰:

孔子曰: "事君盡禮。" 又曰: "臣事君以忠。" 若爲人臣而無禮不忠, 則罪莫大焉。 叔蕃偏蒙上恩, 宜盡忠盡禮, 以報萬一。 上嘗召漆城君 尹抵, 戒以毋爲朋黨, 而傳於權緩, 辭連叔蕃遂通其言, 叔蕃聞之, 心懷憤怨, 入覲內殿, 見于辭色。 爲參贊議政府時, 與政丞河崙入坐上前, 叔蕃先出, 留啓國政, 叔蕃潛伏階下竊聽, 以有疑貳之心也。 上將講武于泰安之時, 叔蕃以政丞河崙之言進告曰: "蓴堤鑿渠, 衆論紛紜, 可否未定, 幸上親監裁斷。" 其後上幸其地, 與諸大臣議之, 叔蕃侍側獨不言, 上問至再三, 亦不對焉, 蓋懷反覆之心也。 無咎無疾自伏其辜, 實由宸衷所斷, 叔蕃入告曰: "世子其不厭臣乎?" 厥後數日, 謀於文城君 柳亮, 俱詣闕乃告曰: "臣等自今願常見於世子。" 無乃有今將之心乎? 其爲無禮不忠甚矣。 伏望命下攸司, 鞫問其情, 明斷其罪, 以爲後來無禮不忠者之戒。

上乃使禮曹右參議鄭孝文傳旨于叔蕃, 數其不敬之罪, 仍命從自願, 出居于延安府。 司憲府大司憲金汝知等上疏, 略曰:

大臣雖自願之處, 居于外方, 則所係匪輕。 願令攸司鞫問所犯, 以置於法。

司諫院右司諫大夫朴竪基等上疏曰:

竊惟, 勳舊之臣國人所瞻, 凡有出入, 莫不知之。 李叔蕃遭遇聖明, 位至一品, 遽令放于外方, 而人莫知其所犯。 伏望殿下, 命攸司鞫問其由, 使人人曉然共知。

刑曹判書安騰等上疏曰:

臣等聞, 近日三功臣詣闕上書, 未知其故, 繼而聞, 李叔蕃出于門外, 乃知功臣上言請叔蕃之罪也。 叔蕃以定社佐命功臣, 位至極品, 寵眷有加, 若其所犯, 不干宗社, 三功臣焉敢請其罪乎? 然而殿下只令出居于外, 一國臣民罔知所犯, 無不驚駭。 臣等以謂, 雖士之微者, 有罪則必下攸司, 推鞫定罪, 國之常典也。 況勳舊大臣, 如叔蕃者乎? 願殿下, 命攸司收其職牒, 鞫問情由, 明正其罪, 以戒後來。

不聽。


  • 【태백산사고본】 14책 31권 48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21면
  • 【분류】
    사법-행형(行刑) / 사법-탄핵(彈劾) / 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