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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31권, 태종 16년 2월 25일 무자 2번째기사 1416년 명 영락(永樂) 14년

간통한 죄로 고 대언 윤수의 아내 제석비와 장님 중 신전의 목을 베다

고(故) 대언(代言) 윤수(尹須)의 아내 제석비(帝釋婢)와 장님 중[僧] 신전(信全)을 목베었다. 처음에 윤수의 아내 제석비가 불경(佛經)을 읽어 액막이[度厄]하고자 하여 신전을 청해 와서 피적률(皮狄栗)069) 을 주면서,

"밤 맛이 어떠세요?"

하니, 장님이,

"매우 답니다."

하였다. 윤수의 아내가 희롱하기를,

"밤보다 맛이 더 좋은 것이 있어요."

하고, 인하여 그와 함께 사통(私通)한 지 여러 해였는데, 자식을 낳았으나 드러내지 않고 어린 시비(侍婢)를 죽여서 입을 막았었다. 이 때에 이르러 일이 발각되니, 헌사(憲司)에서 그 사실을 추핵(推劾)하여 아뢰었다. 임금이 순성(蓴城)에 있을 때에 여러 대언(代言)과 대가를 따라간 장상(將相)에게 명하여 그 죄를 의논하게 하니, 여러 사람들이,

"맹인(盲人)이 조사(朝士) 가문(家門)의 부녀자와 간통하였으므로, 다른 여리(閭里) 사람이 서로 간통한 예가 아니니, 마땅히 극형(極刑)을 가하여서 풍속을 바로잡으소서."

하였으나, 홀로 이숙번(李叔蕃)만은 세자에게 말하기를,

"화간(和奸)은 장(杖) 80대에 처한다는 율(律)이 있으니, 참(斬)하라고 명하는 것은 불가(不可)합니다."

하였다. 임금이 듣고,

"이숙번은 나와 말하여야 옳을 것인데, 어찌하여 몰래 세자에게 청하는가?"

하였다. 제석비(帝釋婢)는 세가(世家) 조하(趙何)의 딸이고, 신전은 바로 하천경(河千景)이었다. 임금이 환궁(還宮)하자, 육조(六曹)와 대간(臺諫)에서 아뢰기를,

"신전제석비를 극형에 처치하기를 청합니다."

하니, 임금이 그대로 따르고, 이어서 하교(下敎)하였다.

"옛사람이 이르기를, ‘이미 할 수 없는 일을 능히 하였다면 받지 않아야 할 형을 마땅히 받아야 한다.’한 것은 바로 이를 이름이다. 비록 율(律) 외의 형(刑)에 좌죄(坐罪)되었다고 하더라도 또한 해로울 것이 없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3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103면
  • 【분류】
    사법-법제(法制) / 사법-행형(行刑) / 윤리(倫理) / 사상-불교(佛敎)

  • [註 069]
    피적률(皮狄栗) : 껍질 밤.

○斬故代言尹須帝釋婢及盲僧信全。 初, 帝釋婢欲讀經度厄, 請信全來, 與皮狄栗曰: "栗之味如何?" 盲曰: "甚甛。" 妻戲曰: "有勝栗之味焉。" 因與之私者累年, 生子不擧, 殺小侍婢以滅口, 至是事覺, 憲司推劾其實以聞。 上之在蓴城也, 命諸代言及隨駕將相議其罪, 僉曰: "盲人與朝士家門婦女相奸, 非他閭里人相奸之例, 宜加極刑, 以正風俗。" 獨李叔蕃言於世子曰: "和奸杖八十有律, 命以斬不可。" 上聞之曰: "叔蕃可與予言者, 何密請於世子乎?" 帝釋婢, 世家趙何之女也; 信全河千景也。 及上還宮, 六曹、臺諫啓: "信全帝釋婢請置極刑。" 從之, 仍敎曰: "昔人謂: ‘旣能爲不能爲之事, 宜當受不當受之刑。’ 正謂此爾。 雖坐律外之刑, 亦無傷也。"


  • 【태백산사고본】 14책 31권 1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103면
  • 【분류】
    사법-법제(法制) / 사법-행형(行刑) / 윤리(倫理) / 사상-불교(佛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