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무의 정지를 청하는 사간원의 계문과 그 논의
사간원(司諫院)에서 강무(講武)를 정지하도록 청하였다. 계문(啓聞)은 이러하였다.
"지난해에 경기(京畿)에서 가물어 실농(失農)하였으니, 청컨대, 올봄의 강무(講武)는 정지하소서."
임금이 말하였다.
"춘추(春秋)의 강무(講武)는 천하에서 통행(通行)하는 법이다. 내가 만약 백성을 걱정하지 않고 다만 일예(逸豫)029) 만을 위한다면 그렇게 말하여도 옳다. 내가 거의 늙었으니, 어찌 염려하지 않겠는가? 기내(畿內)가 비록 실농(失農)하였다고 하더라도 무릇 이바지하는 비용은 백성에게 관여됨이 없고, 백성들이 이바지하는 것은 단지 들풀[郊草]뿐인데, 어찌 이 때문에 수수(蒐狩)030) 를 폐지하겠는가? 또 내가 반드시 오랫동안 역사시켜 농사를 방해하지도 않을 것이다. 이제부터 무릇 이와 같은 법으로서 마땅히 시행하여도 큰 해가 없을 것은 다시는 말하지 말라."
임금이 이튿날을 지나서 승정원(承政院)에 전지(傳旨)하였다.
"사간원(司諫院)에서 까닭없이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흉년이기 때문에 강무를 정지하도록 청하는 까닭에 내가 충청도로 가지 않으려 한다."
유사눌(柳思訥)이 아뢰었다.
"하지 않는다면 그만이지만, 만약에 평강(平康) 등지로 거둥한다면 충청도로 거둥하는 것이 가장 편(便)할 것 같습니다. 사철에 사냥하는 것은 바로 선왕(先王)의 제도이니, 간원(諫院)의 말은 정식(程式)031) 에 맞지 않는다 하겠습니다."
이튿날 대사헌(大司憲) 이원(李原)이 아뢰었다.
"강무(講武)는 바로 고전(古典)인데, 그것을 누가 정지시키겠습니까? 전하께서 숨기고서 반포(頒布)하지 않다가 그 때에 임해서야 명령을 내리기 때문에 신민(臣民)이 가는 곳을 알지 못합니다. 만약 일찍 정한다면 호종(扈從)하는 사람들도 또한 알고 대비가 있을 것입니다. 또 지금 백성들은 농사에 실패하여 혹은 굶주리거나 곤궁한 자도 있을 것이니, 만약 먼 곳으로 거둥한다면 사필(史筆)은 반드시 이르기를, ‘때가 흉년이었는데 멀리 거둥하였다.’고 할 것이니, 이것이 불가합니다. 가을이라면 멀리 행차하여도 좋을 것이니, 바라건대, 시종(侍從)과 일수(日數)를 감하고, 구군(驅軍)을 준비하여 잠시 행차하였다가 돌아오소서."
임금이 말하였다.
"나도 또한 멀리 행차하는 것이 불가하다는 말을 염려하여 먼곳으로 거둥하고자 아니하였는데, 좌우(左右)에서 모두 말하기를, ‘강무(講武)의 모든 일을 순제(蓴堤)로 벌써 정했다.’고 하니, 또 나의 일은 모두 간편함을 따르겠다."
그 뒤에 임금이 말하였다.
"내가 충청도에서 강무(講武)하고자 아니한다. 조치(趙菑)가 간 지 벌써 18일이나 되었다. 내가 듣건대, 관찰사가 조치와 함께 곶이[串] 안으로 들어갔다니, 반드시 사장(射場)032) 을 닦을 것이다. 사장(射場)을 닦고서 사냥을 하다가 사책(史冊)에 적히게 되면 후세에 웃음을 받게 될 것이다. 내가 사어(射御)033) 에 유능(有能)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또한 알지 못한다고 할 수도 없다. 그러나 임금[人君]은 정사를 잘하면 가하지, 사어(射御)를 잘한다 해서 무엇에 쓰겠는가? 내 나이 50인데 어찌 한두 마리의 노루를 쏘아서 이름을 얻고자 하겠는가? 이미 사장(射場)을 닦았는데도 가지 않는다면 뒤에 반드시 이와 같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병조 판서 박신(朴信)이 아뢰기를,
"충청도의 모든 일이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하고, 이원(李原)도 또한 아뢰었다.
"안한다면 그만이지만 한다면 하도(下道)에 공억(供億)이 이미 준비되었습니다."
- 【태백산사고본】 14책 31권 6장 B면【국편영인본】 2책 100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재정-공물(貢物) / 군사-병법(兵法)
- [註 029]일예(逸豫) : 편안하게 즐기는 것.
- [註 030]
수수(蒐狩) : 사냥.- [註 031]
정식(程式) : 법.- [註 032]
사장(射場) : 임금이 사냥하는 곳을 말함. 사장(射場)에서는 사렵(私獵)이 금지되었을 뿐만 아니라 밭 갈고 나무하는 것까지 금지되었음.- [註 033]
사어(射御) : 활쏘고 말타기 함.○癸丑/司諫院請停講武。 啓曰: "前年京畿旱而失農, 請停今春講武。" 上曰: "春秋講武, 天下通行之法。 予若不憂民, 而只爲逸豫, 則言之是矣。 予幾老矣, 豈不慮乎? 畿內雖失農, 凡所供費, 無與於民, 民所供者, 但郊草耳。 豈可以此廢蒐狩乎? 且予不必久役妨農。 自今凡如此法所當行而無大害者, 勿復言。" 越翼日, 傳旨承政院曰: "司諫院非無因而言, 乃以儉年請停講武, 故予欲不之忠淸道。" 柳思訥啓曰: "不爲則已, 若幸平康等處, 則莫若幸忠淸道之爲便。 四時之田, 乃先王之制, 諫院之言, 可謂不中程式矣。" 翼日, 大司憲李原啓曰: "講武是爲古典, 其誰止之? 殿下隱而不布, 臨時而發命, 故臣民罔知所之。 若早定則扈從之人, 亦且知而有備矣。 且今民失農業, 容有飢困者。 若有遠行, 史筆必以爲, 時屈而擧遠, 是不可也, 秋則遠行可矣。 乞減侍從與日數, 備驅軍暫行而還。" 上曰: "予亦慮有遠行不可之言, 不欲幸于遠處, 而左右皆曰: ‘講武凡事, 於蓴堤已定。’ 且予事皆從簡矣。" 厥後, 上曰: "予不欲講武於忠淸道矣, 趙菑之行, 已十八日矣。 予聞, 觀察使與趙菑入于串內, 必修射場也。 修射場而田, 書於史冊, 則取笑於後矣。 予不可謂射御有能, 亦不可謂不知。 然人君善於政事, 則可矣, 能爲射御, 則何用? 予年五十, 豈欲以射一二獐得名乎? 已修射場而不往, 則後必不爲如此事矣。" 兵曹判書朴信白曰: "(忠道淸)〔忠淸道〕 諸事已備。" 李原亦白曰: "不爲則已, 爲之則下道供億已備矣。"
- 【태백산사고본】 14책 31권 6장 B면【국편영인본】 2책 100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재정-공물(貢物) / 군사-병법(兵法)
- [註 0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