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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30권, 태종 15년 7월 16일 신해 2번째기사 1415년 명 영락(永樂) 13년

좌대언 탁신이 병비에 대해 올린 사의 조목

좌대언(左代言) 탁신(卓愼)이 병비(兵備)에 대한 사의(事宜)를 올렸다.

"첫째는, 각 고을에서 성자(城子)를 정하지 않은 곳과 쌓지 않은 곳을 빠짐없이 의논하여 정해서 때때로 단단히 쌓고, 각각 그 성 위의 여장(女墻)206) 수와 합하여 들어간 인정(人丁)수와 들어간 양식 수와 사방 가까운 성(城)의 거리 이수(里數)와 도로의 험하고 평이한 것과 봉화(烽火)의 서로 바라보이는 곳을 모조리 책(策)에 써서 나라를 지키는 방도를 갖출 것.

둘째는, 사방 변경의 산하(山河)가 험조(險阻)하여서 적은 사람으로 많은 사람을 당할 수 있는 곳, 큰 배가 정박하여 언덕에 의지할 수 있는 곳, 병기를 갈무리하고 많은 사람을 가리울 수 있는 곳을 고루 알아서 군사를 쓸 수효를 헤아리고, 적을 제어할 방도를 갖추어 써서 갈무리하여 획책(劃策)의 도구를 삼을 것.

세째는, 중외의 각 고을의 군정(軍丁)·병선(兵船)·군기(軍器)·의갑(衣甲)207) ·각색 기휘(旗麾)·쟁요(錚鐃)·고각(鼓角)의 수와, 각기 가지고 있는 마필, 대중소의 총수(摠數)를 병조(兵曹)로 하여금 호조(戶曹)의 전곡(錢穀)예에 의해 회계(會計)하여 시행케 해서, 하나는 내전(內殿)에 들이고 하나는 승정원(承政院)에 비치하는 것으로써 항식(恒式)을 삼을 것.

네째는, 군기감(軍器監)의 화통(火㷁)이 비록 이미 1만여 자루[柄]에 이르나, 각도의 성자(城子) 1백여 곳과 각포(各浦)의 병선 1백 60여 척과 산하(山河)의 험조(險阻)한 데 설비할 곳 등, 그 쓰이는 것이 대단히 많아서 1만여 자루도 오히려 부족합니다. 남아 있는 주철(鑄鐵) 2만여 근으로 오는 8월에 녹여 만들기 시작하여 그 용도를 족하게 하고, 전습하는 사람은 별군(別軍) 가운데 개월(箇月)은 이미 차고 아직 거관(去官)하지 않은 자를 쓸 것.

다섯째는, 병선(兵船)은 왜구(倭寇)가 오래 잠잠함으로 인하여 태만하고 해이해져 적을 제어하는 도구를 수리하지 않는데, 매등(每等)의 경차관(敬差官)이 다만 그 군인의 의갑(衣甲)·군기(軍器)·화통(火㷁)·기휘(旗麾)와 선체의 실하고 실하지 않은 것만을 상고할 뿐이니, 그 나머지 기계(器械)를 어찌 다 상고하겠습니까? 또 화통(火㷁)·화약(火藥) 같은 것은 점화(點火)만 되면 해가 오래 되어도 쓸 수 있고, 배 위에서 또한 점화할 수 있으니 곰팡이가 끼지 않게 하여야 하는데, 근래 각도에서 바다 기운으로 곰팡이가 끼고, 해가 오래 되도록 쓰지 않다가 고쳐 받는 자가 매우 많으니, 그 나머지는 허실(虛實)을 따라서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 대선(大船)·중선(中船)의 쓰는 기계의 수량과 종목을 각도 수군 절제사(水軍節制使)로 하여금 일일이 써서 갖추 병조에 보고하게 하고, 병조에서는 그 수량과 종목을 사람에게 위임하여 점고(點考)하게 하고, 아울러 화통의 점화하는 형태를 상고하여 상벌을 가하고, 실하지 않은 것은 다시 갖추어 실하게 하여 불우(不虞)에 대비할 것.

여섯째는, 거북선[龜船]208) 의 법은 많은 적과 충돌하여도 적이 능히 해하지 못하니 가위 결승(決勝)의 좋은 계책이라고 하겠습니다. 다시 견고하고 교묘하게 만들게 하여 전승(戰勝)의 도구를 갖추게 하소서."

탁신(卓愼)이 이 때에 병조를 맡았는데, 임금이 보고 병조에 내리었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30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75면
  • 【분류】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기(軍器) / 외교-왜(倭)

  • [註 206]
    여장(女墻) :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 [註 207]
    의갑(衣甲) : 갑옷.
  • [註 208]
    거북선[龜船] : 이분(李芬)의 《이순신행록(李舜臣行錄)》에 의하면, "위에는 판자를 덮고 판자 위에 십자 모양의 작은 길을 내어서 사람들이 위로 다닐 수 있게 하였다. 나머지는 모두 칼과 송곳을 꽂아서 사방으로 발붙일 곳이 없었다. 앞에는 용머리를 만들고 입에는 총구멍을 만들고 뒤에는 거북꼬리를 만들었다. 대개 모양이 거북 모양과 같았으므로, 이름을 거북선[龜船]이라 하였다."하였음.

○左代言卓愼上兵備事宜:

其一, 各官城子未定處及未築處, 無遺議定, 以時堅築。 各其城上女墻數、合入人丁數、所入糧餉數、四方隣城相去里數、道路險易、烽火相望處, 悉書于策, 以備守國之道。

其二, 四方邊境山河險隘, 以寡當衆處、大船泊立依岸處、藏兵覆衆處, 無不周知, 以量用軍之數, 以備制敵之方, 書而藏之, 以爲畫策之具。

其三, 中外各目軍丁兵船軍器衣甲, 各色旗麾錚鐃鼓角之數、各持馬匹大中小摠數, 令兵曹依戶曹錢穀例, 會計施行, 一入內, 一置承政院, 以爲恒式。

其四, 軍器監火㷁雖已至萬餘柄, 各道城子百餘, 各浦兵船百六十餘隻及山河險阨設備處, 其用甚多, 萬餘柄猶爲不足。 以餘在鑄鐵二萬餘斤, 來八月始鑄成, 以足其用; 傳習人用別軍箇月已滿未去官者。

其五, 兵船因倭寇久息, 制敵之具怠弛不修。 每等敬差官但考其軍人衣甲、軍器、火㷁、旗麾、船體實不實而已, 其餘器械焉能悉考? 且如火㷁火藥, 苟能點火, 年久可用, 船上亦可點火, 不令着霾。 近來各道以海氣着霾, 年久不用, 改受者頗多有之, 其餘虛實, 從可知矣。 其大中船所用器械數目, 令各道水軍節制使開寫具報兵曹, 以其數目, 委人點考, 竝考火㷁點火形止, 仍加賞罰, 其不實者, 更令備實, 以備不虞。

其六, 龜船之法, 衝突衆敵, 而敵不能害, 可謂決勝之良策。 更令堅巧造作, 以備戰勝之具。

時知兵曹。 上覽之, 下兵曹。


  • 【태백산사고본】 13책 30권 4장 B면【국편영인본】 2책 75면
  • 【분류】
    군사-관방(關防) / 군사-군기(軍器)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