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평전에 술자리를 마련, 신료에게 술을 내리고, 한재의 까닭과 신선의 도를 말하다
보평전(報平殿)에 술자리를 마련하여 일을 계사(啓事)하는 신료에게 작(爵)196) 을 내려 주고, 또 입직(入直)하는 대소 신료에게 술을 내려 주어 두루 군사에게까지 미치었다. 임금이 한재(旱災)의 까닭을 논하여 말하였다.
"《춘추(春秋)》에 정월부터 비가 오지 않아서 가을 7월까지 이르렀다고 썼고, 또 역대에 5년 가뭄·2년 가뭄이 있었으니, 내가 부덕(否德)한 사람으로서 어찌 감히 이를 피하겠는가? 또 가뭄[旱乾]의 재앙은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백성을 수고롭게 하는 때에는 일어나지 않고, 반드시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백성을 수고롭게 한 뒤에야 있었다. 태조(太祖)가 이 도성을 영건하였는데, 내가 살피지 못하고 송도(松都)로 돌아갔다가 오래지 않아서 돌아왔는데, 도읍(都邑)을 짓고 고치는 까닭으로 해마다 많은 사람을 동원하여 백성을 수고롭게 하니, 오늘의 가뭄은 내가 실로 당할 만하다. 지난번 예조 판서 이원(李原)이 중을 모아 비를 빌기를 청하였으나, 내가 즉시 허락하지 않았는데, 양(梁)나라 무제(武帝)는 호걸스런 임금으로서 이를 더욱 심히 좋아하였으니, 내가 어찌 감히 옳지 않다고 생각하여 하지 않겠는가? 우리 나라에 지공 대사(指空大師)·나옹 대사(懶翁大師) 이후에 내가 보고 아는 바로서는 한 사람의 중도 그 도에 정통한 자가 없었다. 지금 비를 빌어 얻으면 반드시 남의 비웃음을 받을 것이요, 만일 비를 빌어 얻지 못하면 반드시 부처를 헐뜯은 까닭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므로 가볍게 허락하지 않은 것이다."
임금이 인하여 신선(神仙)의 도(道)를 논하여 말하였다.
"진 시황(秦始皇)·한무제(漢武帝)가 좋아하지 않은 바가 없으나, 진서산(眞西山)의 《대학연의(大學衍義)》를 보면 이를 배척하기를 극진히 하였고, 《문헌통고(文獻通考)》·《산당고색(山堂考索)》에는 그 말을 아울러 실었다. 근자에 내가 비를 근심하기를 심히 하여, 황자후(黃子厚)로 하여금 태을 초제(太乙醮祭)197) 를 행하게 하였더니, 과연 비를 얻었다. 어제 내가 태을편(太乙篇)을 강구(講求)하다가 병으로 끝내지 못하였다. 예조에서 천존(天尊)198) 에 호(號)를 올리는 예(例)를 상고하여 아뢰어라."
- 【태백산사고본】 13책 30권 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74면
- 【분류】왕실-사급(賜給) / 과학-천기(天氣) / 사상-불교(佛敎) / 사상-도교(道敎) / 건설-건축(建築) / 재정-역(役)
- [註 196]작(爵) : 술잔.
- [註 197]
태을 초제(太乙醮祭) : 태을성(太乙星)에 지내는 제사. 태을성은 하늘 북쪽에 있어 병란(兵亂)·재화(災禍)·생사(生死)를 맡아 다스린다 함.- [註 198]
천존(天尊) : 신선(神仙).○癸卯/置酒報平殿, 賜爵啓事臣僚, 且賜酒于入直大小臣僚, 徧及軍士。 上論旱災之故曰: "《春秋》書正月不雨, 至于秋七月, 且歷代有五年、二年之旱。 予以否德, 何敢避之? 且旱乾之災, 非作於勞民用衆之日, 必在於勞民用衆之後。 太祖營建此都, 而予不審, 歸于松都, 未久還來, 以都邑營修之故, 頻年用衆勞民, 今日之旱, 予實當之。 曩, 禮曹判書李原請聚僧禱雨, 予不卽諾。 梁武帝豪傑之主, 而好之尤甚, 予豈敢以爲非是而不爲哉? 我國自指空、懶翁之後, 予所見知者, 無一僧精於其道者。 今禱雨而得之, 必被人之欺笑, 若祈雨而不得, 必以爲毁佛之故。 是以, 不輕許也。" 因論神仙之道曰: "秦 皇、漢 武莫不好之。 以眞西山 《大學衍義》觀之, 斥之極矣, 而《文獻通考》、《山堂考索》則竝載其說。 近予閔雨之甚, 使黃子厚行太乙醮而果得雨。 昨予講求《太乙》之篇而以疾未就, 禮曹宜考其天尊上號之例以聞。"
- 【태백산사고본】 13책 30권 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74면
- 【분류】왕실-사급(賜給) / 과학-천기(天氣) / 사상-불교(佛敎) / 사상-도교(道敎) / 건설-건축(建築) / 재정-역(役)
- [註 19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