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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29권, 태종 15년 3월 4일 임인 2번째기사 1415년 명 영락(永樂) 13년

검교 의정부 참찬 설미수의 졸기

검교 의정부 참찬(檢校議政府參贊) 설미수(偰眉壽)가 졸(卒)하였다. 설미수의 자는 천용(天用)으로서 원(元)나라 고창(高昌)사람인데, 숭문감 승(崇文監丞) 백료손(伯僚遜)의 아들이었다. 어머니 조씨(趙氏)는 성격이 엄하여 그를 가르치는데 법도가 있었다. 병진년 18세에 문과에 합격하여 두루 중외(中外)에서 벼슬하고 영락(永樂) 계미년에 공조 전서(工曹典書)로 중국 조정(朝廷)에서 무역해 가는 마적(馬籍)043) 을 가지고 경사(京師)로 나아가 상주(上奏)하여 수(數) 안에서 줄어든 말 22필을 면제받았다. 정해년엔 판한성부사(判漢城府事)로 표문(表文)을 받들고 경사(京師)로 나아가 감로(甘露)044)예천(醴泉)045) 을 하례하고, 이어서 상주하여 실가(失加)의 소관(所管)인 찰한실라불화(察罕失剌不花)의 12호 인구의 기취(起取)를 면제받았다. 때마침 황후가 붕서(崩逝)하자 예부(禮部)에 품고(稟告)하여 최질(衰絰)로 들어가 곡(哭)하니, 황제가,

"예의를 지키는 나라이므로 다른 번방(藩邦)과 다르다."

하고 칭찬하고 깊이 탄상(嘆賞)하여 사여(賜與)함이 더욱 두터웠다. 돌아와서 지의정부사(知議政府事)에 임명되었다. 기축년에 성절(聖節)을 진하(進賀)하고, 이어서 조공하는 금(金)·은(銀)을 면제해 주도록 청하려고 하였으나, 예부에서 꾸짖고 힐난하여 상주(上奏)하지 못하였다. 졸(卒)하자 철조(輟朝)하고 사제(賜祭)하고 치부(致賻)하였다. 설미수(偰眉壽)는 효도와 우애에 공근(恭謹)하였다. 네 사람의 형이 먼저 죽으니, 어린 아이들을 돌보아 구제하였다. 중형(仲兄) 설연수(偰延壽)는 사자(嗣子)가 없었으나, 시비(侍婢)에게 한 여식(女息)이 있었는데, 척혼(戚混)이었다. 형수는 설미수에게 예속시키니, 형수(兄嫂)에게 고하고 양민(良民)이 되게 허락하여, 데리고 양육하면서 치장해서 시집보냈다. 그가 정부(政府)에 있을 때 관대(寬大)함을 힘써 숭상하고 분경(紛更)을 좋아하지 아니하여 가는 곳마다 위엄과 은혜가 아울러 이루어졌다. 시호를 공후(恭厚)라 하고, 외아들이 설유(偰猷)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13책 29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4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

  • [註 043]
    마적(馬籍) : 말을 기록한 장부.
  • [註 044]
    감로(甘露) : 임금이 선정(善政)을 베풀 때 하늘에서 내린다고 하는 단 이슬.
  • [註 045]
    예천(醴泉) : 중국에서 태평(太平)한 시대에 땅에서 솟아난다고 하는 단 샘.

○檢校議政府參贊偰眉壽卒。 眉壽天用, 大 高昌人, 崇文監丞伯僚遜之子也。 母趙氏性嚴, 敎之有法。 歲丙辰, 年十八中第, 歷仕中外。 永樂癸未, 以工曹典書, 齎朝廷易換馬籍赴京, 奏免數內欠少馬二十二匹。 丁亥, 以判漢城府事, 奉表赴京, 賀甘露醴泉, 仍奏免起取失加所管察罕失剌不花十二戶人口。 時適皇后崩逝, 告稟禮部, 以衰絰入哭, 帝稱其秉禮之邦, 異於他蕃, 深加嘆賞, 錫與尤厚。 還拜知議政府事。 己丑, 進賀聖節, 仍乞免貢金銀, 爲禮部誚詰不奏。 卒, 輟朝、賜祭、致賻。 眉壽孝友恭謹, 四兄皆先歿, 撫恤孤幼。 仲兄延壽無嗣, 於侍婢有息一女戚混。 嫂隷眉壽, 告嫂氏俾許爲良, 携養裝嫁。 其在政府, 務崇寬大, 不喜紛更, 所在威惠竝濟。 諡曰恭厚。 一子


  • 【태백산사고본】 13책 29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2책 54면
  • 【분류】
    인물(人物) / 왕실-사급(賜給)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