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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28권, 태종 14년 7월 17일 무자 1번째기사 1414년 명 영락(永樂) 12년

성균관에 나아가 문묘에 참배하고 유생들에게 시험보이다

임금이 성균관(成均館)에 나아가서 선성(先聖)·선사(先師)에게 작헌(爵獻)을 행하고, 이어서 명륜당(明倫堂)에 나아갔다. 관원(館員)이 제생(諸生) 5백여인을 이끌고 전정(前庭)에 들어와 행례(行禮)하기를 끝마치자, 임금이 친히 시무(時務)를 책문(策問)하였다.

"인군(人君)의 직(職)은 사람을 아는 것보다 어려움이 없고 사람을 임명하는 것보다 어려움이 더욱 없는데, 그 사람을 알고 사람을 임명하는 법을 얻어 들을 수 있겠느냐? 삼공(三公)204) 이 치도(治道)를 논하고 육경(六卿)205) 이 직분(職分)을 나누는 것은 주(周)나라 관제(官制)의 남긴 뜻이지만, 그러나 지금 조정(朝廷)의 성제(盛制)이다. 이 같은 것을 어떻게 하면 능히 그 치도를 다하고 능히 그 직분을 다하겠는가? 대간(臺諫)의 설치는 그 정론(正論)을 직언(直言)하여 허물을 다스리고 잘못을 규탄하는 것이다. 종종 편견의 억설을 가지고 기필코 종간(從諫)206) 하고자 하는데, 종간(從諫)의 명분을 따르고자 하면 반드시 의(義)를 해치는 데 이르고, 실언(失言)의 죄책을 가하고자 하면 반드시 거간(拒諫)207) 이라 생각한다. 그와 같다면 어떻게 하여야 편견은 섞이지 않고 정론(正論)은 날마다 들을 수 있겠는가? 학교(學校)는 권장하지 아니할 수 없다. 그러나 사장(詞章)을 기송(記誦)하는 습속이 오히려 있으되 진실로 실천(實踐)을 아는 자는 대개 적으니, 어떻게 하여 교학(敎學)을 갖추고 밝혀서 인재(人材)를 배출하도록 하겠느냐? 민생(民生)은 후하게 하지 않을 수 없으나 수재(水災)와 한재(旱災)가 여러 번 일어나서 여염(閭閻)의 탄식이 서로 잇달으니, 어떻게 하여 우양(雨暘)208) 을 제때에 있게 하여서 집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유족하겠는가? 다만 사람을 쓰기 전에 능히 변별(辨別)하고 사람을 쓴 뒤에 의심하지 말아서 여러 어진이가 힘을 다하고 서관(庶官)이 태만하지 아니하여, 천심(天心)을 누려 융평(隆平)한 다스림에 이르고자 하니, 그 술책(術策)이 어디에 있는지 빠짐없이 진술하라."

하윤(河崙)·조용(趙庸)·변계량(卞季良)·탁신(卓愼)에게 명하여 시권(試券)을 거두는 것을 감독하게 하였는데, 유시(酉時) 초1각(初一刻)으로 한정하였다. 진시(辰時)에 환궁(還宮)하였는데, 대책(對策)한 자는 5백 40여 인이었다. 거자(擧子) 백일장(白日場)은 여기에서 비롯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8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8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 왕실(王室)

  • [註 204]
    삼공(三公) : 중국 주(周)나라의 태사(太師)·태부(太傅)·태보(太保)를 말함.
  • [註 205]
    육경(六卿) : 중국 주(周)나라의 육관(六官)의 장(長). 천관(天官)의 장인 총재(冢宰), 지관(地官)의 장인 사도(司徒), 춘관(春官)의 장인 종백(宗伯), 하관(夏官)의장인 사마(司馬), 추관(秋官)의 장인 사구(司寇), 동관(冬官)의 장인 사공(司空)을 말함.
  • [註 206]
    종간(從諫) : 임금이 대간(臺諫)의 청을 따르는 것.
  • [註 207]
    거간(拒諫) : 임금이 대간의 간(諫)하는 것을 따르지 않는 것.
  • [註 208]
    우양(雨暘) : 비가 오고 햇볕이 남.

○戊子/上詣成均館, 行爵獻于先聖先師, 仍御明倫堂。 館員率諸生五百餘人, 入庭行禮畢, 親策時務, 若曰:

人君之職, 莫難於知人, 尤莫難於任人。 其所以知人任人之法, 可得而聞歟? 三公論道, 六卿分職, 《周官》之遺意, 而今朝廷之盛制也。 若之何則能盡其道, 而能盡其職歟? 臺諫之設, 欲其直言正論, 而繩愆糾繆也。 往往以偏見之說, 期於必從。 欲循從諫之名, 則必至於害義, 欲加失言之責, 則必以爲拒諫。 若之何則偏見者不雜, 而正論日聞歟? 學校非不勸也, 而記誦詞章之習猶在, 眞知實踐者蓋寡。 何以使敎學俱明而人材輩出歟? 民生非不厚也, 而水旱之災屢作, 閭閻之愁嘆相仍, 何以使雨暘時若, 而家給人足歟? 伊欲能辨於任人之前, 勿疑於任人之後, 群賢盡力, 庶官無曠, 以享天心, 以底隆平之治, 其術安在? 陳之無隱。

河崙趙庸卞季良卓愼監收試券, 以酉初一刻爲限, 辰時還宮。 對策者五百四十餘人。 擧子白日場, 自此始。


  • 【태백산사고본】 12책 28권 6장 A면【국편영인본】 2책 28면
  • 【분류】
    인사-선발(選拔) / 왕실(王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