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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28권, 태종 14년 7월 8일 기묘 2번째기사 1414년 명 영락(永樂) 12년

대간들을 외방에 부처하다

대간(臺諫)의 관원을 외방(外方)에 부처(付處)하였다. 임금이 대간의 관원을 순금사(巡禁司)에 가두고 그 까닭을 형문(刑問)하고자 하여, 대언(代言)으로 하여금 당직 관원(當直官員)을 갑자기 소환하게 하니, 대언이 아뢰었다.

"이제 대간(臺諫)에서 은휘(隱諱)한 것이 있지 않으니, 다시 형문(刑問)할 사연(辭緣)이 없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대간에서 불법(不法)한 일을 하였으면 형(刑)을 가하여 신문(訊問)할 것이데, 옛날에도 이러한 법이 없었는가? 나는 장차 이를 엄격히 징계하겠다. 너희들은 다시 서리(書吏)·소유(所由) 등에게 물어서 문안(文案)을 만들어 아뢰도록 하라."

서리(書吏) 등이 아뢰었다.

"홍의(洪義) 등의 신장(訊杖)은 2, 30번에 지나지 않았고 압슬(壓膝)은 2,3번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만약 더하거나 덜함이 있다면, 일이 이미 하루 건너이므로 능히 다 기록할 수 없습니다. 그 문안(文案)이 갖추 본부(本府)에 있으니, 이를 고찰하는 것이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임금이,

"이 일은 오래지 않은데 반드시 입을 다물고 말하지 않는 것이다."

하고, 이에 왕패(王牌)195) 를 내려 주고 말하였다.

"대간(臺諫)의 임무는 옳은 것을 헌의(獻議)하고 나쁜 것을 배척하여 공도(公道)를 행하는 것이요, 옥송(獄訟)을 밝게 변정(辨正)하는 데에 이르러서는 원통하고 억울함이 없도록 하는 것이 바로 그 직책이다. 지난번에 헌부(憲府)에서 이양우(李良祐)회안군(懷安君)과 사통(私通)하였다고 하여 홍의(洪義)·석구지(石仇知)의 공초를 취하여 두세 번 죄를 청하였으나, 그러나 정적(情迹)이 나타나지 않았던 까닭으로 내가 친히 묻기를 재차 하였고, 또 근신(近臣)으로 하여금 재차 묻도록 하였다. 또 육조의 장관(長官)과 대사헌·순금사 겸판사(巡禁司兼判事) 등으로 하여금 다시 분변(分辨)을 더하게 하니, 홍의는 이르기를, ‘헌부의 고문(栲問)으로 인하여 연일 추초(箠楚)196) 하는 것을 견디지 못하여, 드디어 스스로 자복하였습니다.’고 하였고, 석구지는 이르기를, ‘사사로운 원한으로 인하여 무고(誣告)하여 회안군(懷安君)을 해치고자 하였습니다.’고 하였다. 위의 사람들을 즉시 순금사에 내려서 안율(按律)하여 등(等)을 감하여 시행하도록 하라. 이제 헌부에서 강제로 형(刑)을 써서 공초를 받은 죄를 면하려고 꾀하여 소청(疏請)하기를 마지 않는 것이다. 사간원(司諫院)에서 마땅히 헌부(憲府)를 탄핵해야 하는데, 도리어 부화(附和)하여 교장(交章)하는 것은 심히 부당하다고 하겠다. 아울러 외방에 폄출(貶黜)하도록 하여 후래(後來)를 경계하도록 하라."

순금사(巡禁司)에 명하여 대간의 관원을 불러 오도록 하여 왕패(王牌)를 내보이고 아울러 자원 안치(自願安置)시켰는데, 집의(執義) 이작(李作)부여(扶餘)에, 장령(掌令) 복간(卜僴)대흥(大興)에, 이유희(李有喜)춘천(春川)에, 지평(持平) 이맹진(李孟畛)충주(忠州)에, 이문간(李文幹)신은(新恩)에, 사간(司諫) 윤회종(尹會宗)진산(珍山)에, 헌납(獻納) 유미(柳渼)곡성(谷城)에, 김이상(金履祥)보천(甫川)에, 정언(正言) 이심(李審)아산(牙山)에, 한권(韓卷)황간(黃澗)에 안치시켰으나, 다만 대사헌 유관(柳觀)태조의 원종 공신(元宗功臣)이라 하여 면제시켰다. 지사간(知司諫) 김익정(金益精)은 병 때문에 처음에 참여하지 않았었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8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6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왕실-국왕(國王) / 변란(變亂)

  • [註 195]
    왕패(王牌) : 임금이 특별한 일을 하명(下命)할 때 어압(御押)을 두고 대보(大寶)를 찍어서 내려 주던 패(牌). 이 패를 소지한 자는 그 일을 수행하는데 특권을 행사할 수 있었음. 또 공(功)이 있는 자에게도 이 패를 주었는데, 이는 자손 대대로 그 특전(特典)을 보장하여 주는데 목적이 있었음.
  • [註 196]
    추초(箠楚) : 매나 곤장으로 때림.

○付處臺諫官于外方。 上欲囚臺諫員于巡禁司, 刑問其由, 令代言趣召當直官員, 代言啓曰: "今臺諫未有隱諱, 更無刑問之辭。" 上曰: "臺諫有不法之事, 則加刑訊問, 古無是法耶? 予將痛懲之矣。 爾等再問書吏、所由等, 成文案以聞。" 書吏等白: "洪義等訊杖不過二三十度, 壓膝不過二三度。 若有加減, 則事已隔日, 不能盡記。 其文案俱在本府, 考之何難?" 上曰: "此事不久, 必閟而不白也。" 乃下王牌曰: "臺諫之任, 獻可替否, 以行公道, 至於明辨獄訟, 俾無冤抑, 乃其職也。 頃者, 憲府以良祐爲私通懷安, 取洪義石仇知之招, 再三請罪, 然情迹未著, 故予親問至再, 且令近臣再問, 又令六曹長官、大司憲、巡禁司兼判事等更加分辨。 洪義云: ‘因憲府拷問連日, 不忍箠楚, 遂自誣服。’ 石仇知云: ‘因私恨誣告, 欲害懷安。’ 右人等卽下巡禁司, 按律減等施行。 今憲府規免强刑取招之罪, 請之不已。 司諫院當劾憲府, 而反和附交章, 甚爲不當。 其令竝黜于外, 以戒後來。" 命巡禁司, 召致臺諫員, 宣示王牌, 竝令自願安置。 執義李作扶餘, 掌令卜僴 大興, 李有喜 春川, 持平李孟畛 忠州, 李文幹 新恩, 司諫尹會宗 珍山, 獻納柳渼 谷城, 金履祥 甫川, 正言李審 牙山, 韓卷 黃澗, 唯大司憲柳觀太祖元從功臣免, 知司諫金益精以病, 初不與焉。


  • 【태백산사고본】 12책 28권 2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6면
  • 【분류】
    정론(政論) / 사법-행형(行刑) / 왕실-국왕(國王) / 변란(變亂)