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 27권, 태종 14년 6월 8일 기유 1번째기사
1414년 명 영락(永樂) 12년
요절한 왕녀의 졸기
왕녀(王女)가 졸(卒)하였으니, 나이가 3세였다. 임금이 말하였다.
"옛날에 그 딸을 지나치게 사랑하다가 가상(嫁殤)150) 하여 사당(祠堂)을 세우니, 후세에 비난을 받은 자가 있었다. 이 아이는 하상(下殤)151) 에 이르지도 못하였으니, 예(禮)를 이루어 장사(葬事)를 지낼 것도 없다."
예조 정랑(禮曹正郞) 곽존중(郭存中)이 아뢰었다.
"신이 하윤(河崙)에게 예(禮)를 물으니, 비록 하상(下殤)에 이르지 못하였으나, 또한 마땅히 예(禮)로써 장사를 치러야 한다고 한다.’고 하였습니다. 또 지난번에 상자(殤子)152) 의 장사(葬事)에도 도감(都監)이 있었으니, 원컨대, 그 예(例)에 의하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라서 이응(李膺)·박자청(朴子靑)을 제조(提調)와 사(使)로 삼고, 부사(副使)·판관(判官)을 각각 2명으로 하였다. 조회(朝會)와 저자[市]를 3일 동안 정지하고, 성동(城東) 사한(沙寒)의 언덕에 장사지냈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7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2책 20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왕실-의식(儀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