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사단을 흥인문 밖에 세우다
비로소 우사단(雩祀壇)을 흥인문(興仁門) 밖에 세웠다. 처음에 임금이 가뭄을 근심하여 친히 《주례(周禮)》 월령(月令) 등의 책을 보니, 제후(諸侯)가 상공(上公)에 우사(雩祀)한다.’는 글이 있었으므로, 예조에 명하여 상고하여 아뢰게 하였는데, 예조에서 아뢰었다.
"삼가 《예기(禮記)》 월령(月令)을 살펴보니, ‘중하(仲夏)의 달에 여러 현(縣)에 명하여 우사(雩祀)하는데, 백벽(百辟)130) 과 향사(鄕士)가 백성을 돕는 것은 곡식이 여물도록 비는 것이다.’고 하였습니다. 《주례(周禮)》에 사직(社稷)·오사(五祀)를 제사지냈으니, 《가어(家語)》에 말하기를, ‘옛날 소호(少皞)의 아들이 네 사람으로서 「중(重)」이라 하고 「해(該)」라 하고 「수(脩)」라 하고 「희(熙)」라 하였는데, 중(重)으로 하여금 구망(句芒)이 되게 하고, 해(該)로 하여금 욕수(蓐收)가 되게 하고, 수(脩)와 희(熙)로 하여금 현명(玄冥)이 되게 하고, 전욱(顓頊)의 아들 여(黎)로 축융(祝融)을 삼고, 공공씨(共工氏) 아들 구룡(句龍)을 후토(后土)로 삼아, 이 다섯 사람이 각가 그 능한 업(業)으로써 관직(官職)을 삼았으며, 살아서는 상공(上公)이 되고 죽어서는 귀귀(貴鬼)가 되었으므로 따로 오사(五祀)라 일컫는다.’고 하였습니다.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 말하기를, ‘열산씨(烈山氏)의 아들을 「주(柱)」라 하는데 직(稷)으로 삼아서 하(夏)나라 이전부터 제사지냈고, 주(周)나라의 기(棄)도 또한 직(稷)으로 삼아서 상(商)131) 나라 이후부터 제사지낸다.’고 하였고, 오정(五正)132) 은 《가어(家語)》와 같았습니다. 《문헌통고(文獻通考)》에 말하기를, ‘천자(天子)은 상제(上帝)에 우사(雩祀)하고, 제후(諸侯)는 상공(上公)에 우사한다.’고 하였습니다. 위의 항목의 오정(五正)과, 후직(后稷)이 또 백성에게 공덕(功德)이 있었으므로 옛부터 상사(常祀)가 있었습니다. 빌건대, 고전(古典)에 의하여 동교(東郊)에 단(壇)을 설치하되 6위(六位)를 같은 단(壇)으로 하여 매양 중하(仲夏)의 달을 당하거든 날짜를 골라서 제사를 행하며, 제품(祭品)은 산천단(山川壇)의 예에 의하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랐는데, 이때에 이르러 이를 쌓으라고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7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7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과학-천기(天氣) / 건설-건축(建築) / 역사-고사(故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130]백벽(百辟) : 제후(諸侯).
- [註 131]
상(商) : 은(殷).- [註 132]
오정(五正) : 오관(五官)의 장(長). 오관(五官)은 목정(木正)·화정(火正)·금정(金正)·수정(水正)·토정(土正)을 말하는데, 그 장(長)은 구망(句芒)·축융(祝融)·욕수(蓐收)·현명(玄冥)·후토(后土)임.○始建雩祀壇于興仁門外。 初, 上憂旱, 親覽《周禮》、《月令》等書, 有諸侯雩上公之文, 命禮曹稽考以聞。 禮曹啓: "謹按, 《禮記》 《月令》: ‘仲夏之月, 命百縣雩祀, 百辟、卿士有益於民者, 以祈穀實。’ 《周禮》, 祭社稷五祀。 《家語》曰: ‘昔少皡之子有四, 曰重, 曰該, 曰脩, 曰熙。 使重爲句芒, 該爲蓐收, 脩及熙爲玄冥。 顓頊之子黎爲祝融, 共工氏之子句龍爲后土。 此五者, 各以其所能業爲官職, 生爲上公, 死爲貴鬼, 別稱五祀。’ 《春秋》 《左氏傳》曰: ‘烈山氏之子曰柱爲稷, 自夏以上祀之; 周 棄亦爲稷, 自商以來祀之。’ 五正與《家語》同。 《文獻通考》曰: ‘天子雩上帝, 諸侯雩上公。’ 上項五正與后稷, 且有功德於民, 古有常祀。 乞依古典, 設壇於東郊, 六位同壇, 每當仲夏之月, 擇日行祭, 祭品依山川壇例。"
從之, 至是命築之。
- 【태백산사고본】 12책 27권 33장 A면【국편영인본】 2책 17면
- 【분류】왕실-종사(宗社) / 과학-천기(天氣) / 건설-건축(建築) / 역사-고사(故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1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