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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27권, 태종 14년 3월 27일 경자 1번째기사 1414년 명 영락(永樂) 12년

처음으로 세자 시사관(侍射官)을 두다

처음으로 세자 시사관(世子侍射官)을 설치하여 나누어 3번(番)으로 하였다. 전 총제(摠制) 이교(李皎)·예조 참의 홍섭(洪涉)·첨지통례문사(僉知通禮門事) 조흥(趙興)·첨지돈녕부사(僉知敦寧府事) 이회(李淮)·이점(李漸)·첨총제(僉摠制) 심정(沈泟)·종부 판관(宗簿判官) 조모(趙慕)·대호군(大護軍) 김유량(金有良)·종부 직장(宗簿直長) 조최(趙漼) 등에게 명하여 세자를 모시고 습사(習射)하게 하였으니, 모두 공신(功臣)의 아들과 사위였다. 세자(世子)가 3번(番)을 모아 활[弓] 1장(張)을 내어서 능히 잘 쏘는 자로 하여금 내기를 하게 하였는데, 오시(午時)에서 술시(戌時)까지 하였으며 다음날도 또한 이와 같이 하였다. 하루는 세자(世子)가 병을 칭탁하여 강(講)을 정지시키니, 우빈객(右賓客) 이내(李來)가,

"금일 강(講)을 정지하는 것은 전날 습사(習射)한 피로(疲勞) 때문이 아닙니까? 이제 이미 ‘몸이 아프다’고 하였으니, 만약 오후에 습사(習射)한다면 이것은 활 쏘는 데에만 마음을 기울이고 강습(講習)하는 일에는 게을리 하는 것입니다."

하니, 세자가 부득이하여 강(講)을 들었다.


  • 【태백산사고본】 12책 27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책 9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행행(行幸)

○庚子/初置世子侍射官, 分爲三番。 命前摠制李皎、禮曹參議洪涉、僉知通禮門事趙興、僉知敦寧府事李淮李漸、僉摠制沈泟、宗簿判官趙慕、大護軍金有良、宗簿直長趙漼等侍世子習射, 皆功臣子壻也。 世子聚三番, 出弓一張, 使能射者賭之, 自午至戌。 翼日亦如之。 一日, 世子托疾停講, 右賓客李來曰: "今日停講, 無乃以前日習射之勞乎? 今旣曰身疾, 若午後習射, 則是馳心於射, 而怠於講習之事也。" 世子不得已而聽講。


  • 【태백산사고본】 12책 27권 18장 A면【국편영인본】 2책 9면
  • 【분류】
    왕실-종친(宗親) / 왕실-행행(行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