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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26권, 태종 13년 11월 26일 임인 3번째기사 1413년 명 영락(永樂) 11년

왕거을오미를 석방하고 김여지를 파직시키다

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를 석방하라고 명하고 지신사 김여지(金汝知)의 직을 파면 하였다. 왕거을오미의 옥사에 체포되어 갇힌 자가 심히 많았다. 매를 때리기를 소란하게 하였는데도 여러 날 동안 그 정상을 파악할 수 없었다. 임금이 순금사(巡禁司)와 정부·대간(臺諫)·형조의 문사관(問事官) 등을 불러서 말하였다.

"때가 바야흐로 한창 추우니, 체옥(滯獄)423) 하는 것은 진실로 참지 못할 일이다. 즉시 왕거을오미를 석방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 연루된 자를 속히 판결하라."

또 말하였다.

"중 성여(性如)는 그 아비가 있으니, 왕휴(王庥)의 아들이 아닌 것이 분명하다. 내가 일찍이 사책(史冊)을 상고하니, 역대의 제왕(帝王)이 역성 혁명(易姓革命)하여 혹은 그 후손을 봉(封)하여 제사가 끊어지지 않게 하거나, 혹은 작명(爵命)을 더 하여서 그 어진 이를 포장하고, 완전히 멸망시켜 후사를 남기지 않은 경우는 있지 아니하였다. 비록 말세에 간혹 있기는 하였으나 인군(人君)의 호생지덕(好生之德)이 아니며, 진실로 족히 취할 만한 것도 아니다. 내가 마땅히 왕씨의 후예(後裔)를 보전하겠다."

모두가 말하였다.

"중 성여(性如) 등의 일은 반드시 핵실하여 변정(辨正)하기를 청합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옳지 않다. 왕거을오미(王巨乙吾未)가 비록 왕휴(王庥)의 아들이라고 하더라도 나는 죄를 가하고 싶지 않다. 두 중이 실제 적자(嫡子)라고 하더라도 또 어찌 죄를 주겠느냐?"

이숙번(李叔蕃)이 아뢰었다.

"상교(上敎)는 진실로 만세의 제왕(帝王)의 모범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이 옥사는 오래 된다. 정부 대신들은 어찌하여 한 마디도 이에 언급하지 않는가! 월(越)나라 사람이 진(秦)나라 사람의 비척(肥瘠)을 보는 것과 같구나424) !"

여러 신하가 부끄러워하였다. 형조와 대간에서 왕거을오미를 주살(誅殺)하도록 청하였으나 임금이 따르지 않고 말하였다.

"옛부터 제왕(帝王)은 하나의 성(姓)이 아니었고 천지(天地)와 더불어 시종(始終)이 상응하였으니, 모두 조부(祖父)가 덕(德)을 쌓았기 때문에 흥하는 것이고 그 자손(子孫)에 이르러 덕이 없어지면 망하는 것이다. 만약 이씨(李氏)가 도(道)가 있으면 비록 백 사람의 왕씨(王氏)가 있다고 하더라도 무어 걱정할 것이 있겠느냐? 그렇지않다면 비록 왕씨가 아니라 하더라도 천명(天命)을 받아 흥기(興起)하는 자가 없겠느냐? 더군다나 국초(國初)에 왕씨를 제거한 것은 실제 태조(太祖)의 본의가 아니었으니, 마땅히 다시 말하지 말라."

정부에 교지(敎旨)를 내렸다.

"금후로는 왕씨의 후손이 혹은 스스로 나타나거나, 혹은 남에게 고발을 당하는 자는 아울러 자원(自願)하여 거처(居處)하는 것을 들어주어서 그 삶을 평안하게 하라."

순금사에게 아뢰었다.

"왕거을오미의 정상을 알고도 숨겨 준 오인영(吳仁永) 등 4인은 죄가 참형(斬刑)에 해당하고, 정상을 알고도 자수하지 않은 우홍부(禹洪富) 등 20인은 장(杖) 1백대에 유(流) 3천 리에 해당합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왕거을오미도 오히려 또 방면하는데 하물며 그 다른 사람이겠느냐? 그러나, 이들을 징계하지 않으면 뒤에 큰 일이 있을 때에도 또한 고(告)하지 않을 것이니, 각각 2등을 감면하는 것이 옳다. 김여지는 비록 즉시 계문(啓聞)하지 않았으나 마침내 자수하였으니, 파직만 시키는 것이 마땅하다."

이에 이관(李灌)으로 김여지를 대신하여 지신사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26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98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

  • [註 423]
    체옥(滯獄) : 판결이 나지 않아 옥에 머물러 있음.
  • [註 424]
    월(越)나라 사람이 진(秦)나라 사람의 비척(肥瘠)을 보는 것과 같구나 : 월(越)나라는 지금의 절강성(浙江省)에 있었고, 진(秦)나라는 지금의 섬서성(陜西省)에 있었는데, 월나라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는 진나라의 비척(肥瘠)을 보아도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것이니, 자기와 관계가 없는 것은 아무래도 생각이 덜 간다는 뜻. 한유(韓愈)의 《쟁신록(諍臣錄)》에 "若越人之視秦人之肥瘠 忽馬不加善戚於其心"이라 하였음.

○命釋王巨乙吾未, 罷知申事金汝知職。 巨乙吾未之獄, 逮捕囚繫者甚衆, 箠楚亂下, 累日不得其情。 上召見巡禁司、政府、臺諫、刑曹問事官等曰: "時方祁寒, 滯獄誠不忍也。 宜卽放王巨乙吾未, 又速決連繫者。" 且曰: "僧性如, 乃有其父, 非王庥之子明矣。 予嘗考史編, 歷代帝王, 易姓受命, 或封其後, 致不絶祀, 或加爵命, 以旌其賢, 未有殄滅之無遺者也。 雖於衰世, 容或有之, 非人君好生之德, 固無足取。 予當保全王氏之裔。" 僉曰: "僧性如等事, 請須覈實辨正。" 上曰: "不然。 巨乙吾未王庥之子, 予不欲加罪, 二僧雖實爲嫡子, 又何罪之?" 李叔蕃曰: "上敎眞萬世帝王之模範也。" 上曰: "此獄久矣, 政府大臣, 何無一言及之, 若人視人之肥瘠?" 群臣羞愧。 刑曹、臺諫, 請誅王巨乙吾未, 上不從曰: "自古帝王, 非一姓與天地相爲終始, 皆由祖父積德以興, 及其子孫, 滅德以亡。 若李氏有道, 則雖百王氏存, 何憂之有! 不爾, 雖非王氏, 其無受命而興起者乎? 況國初王氏之除, 實非太祖之本意乎? 宜勿更言。" 下旨政府曰: "今後王氏之裔, 或自現, 或爲人見告者, 竝聽自願居處, 以安其生。" 巡禁司啓: "王巨乙吾未, 知情藏匿吳仁永等四人, 罪當斬; 知情不首禹洪富等二十人, 杖一百流三千里。" 上曰: "巨乙吾未, 猶且放免, 況其他乎? 然不懲之, 則後有大事, 亦不告矣, 可各減二等。 金汝知, 雖不卽啓聞, 終乃自首, 宜只罷職。" 乃以李灌汝知爲知申事。


  • 【태백산사고본】 11책 26권 45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98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 인사-임면(任免)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