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사헌 윤향이 종친의 서얼 구별 문제와 공신전·별사전의 세습 문제로 상소하다
사헌부 대사헌 윤향(尹向) 등이 상소하였다. 소(疏)의 대락은 이러하였다.
"신(臣) 이원계(李元桂)·이화(李和) 등은 이미 종실(宗室)의 지파(支派)이었는데, 그 자손이 이에 왕자(王子)·왕손(王孫)과 더불어 작위(爵位)에 병렬(竝列)함은 분별이 없고 오로지 귀천(貴賤)에 등차가 없다고 이미 일찍이 일일이 갖추어 계문(啓聞)하였습니다. 지난달 19일에 이지숭(李之崇)에게 판경승부사(判敬承府事)를, 이징(李澄)에게 순성진 병마사(蓴城鎭兵馬使)를, 이흥발(李興發)에게 장연진 병마사(長淵鎭兵馬使)를 제수하였습니다. 신 등은 그윽이 듣건대, 나라는 예(禮)로 다스리는데, 예(禮)는 존비(尊卑)와 귀천(貴賤)을 변별(辨別)하는 것보다 앞서는 것이 없고, 이름은 문란하게 할 수 없고, 분별은 범할 수 없음이 천지(天地)의 상경(常經)이고 고금(古今)의 통의(通義)라 하니, 일시적으로 사정(私情)을 쓸 바가 아닙니다. 또 고신(告身)을 서경(署經)하는 법은 비록 아래 사람에게 있으나 오히려 또한 족속(族屬)과 적서(嫡庶)를 분변(分辨)하여서 사류(士流)를 맑게 하는데, 하물며 이지숭 등은 천황(天潢)330) 의 분파(分派)이고 지류(支流)이며, 또 맑지도 않는 자이겠습니까? 전하께서는 더러운 것도 받아들이는 도량과 친애하는 은의로써 높이고 사랑함이 지극하여, 서얼(庶孽) 출신의 천한 자로 하여금 위로 금지옥엽(金枝玉葉)의 귀한 신분에 섞이게 하나, 신 등은 직책이 헌사(憲司)에 있으니, 어찌 감히 법을 굽혀 사은(私恩)을 펴서 나라의 법을 무너뜨리고 조정(朝廷)에 누(累)가 되겠습니까? 이징과 이흥발은 나라에 우환(虞患)이 있는 때를 당하여 변방 지방에 나아가 수자리를 사니, 잠정적으로 그 고신(告身)에 서경(署經)하겠으나, 이지숭은 관직이 높고 작위(爵位)가 높으므로 실로 그 분수에 넘치며 또 두 사람과 비할 바가 아니니, 어찌 감히 서경(署經)하여 통과시키겠습니까? 엎드려 성상의 재결(裁決)을 바랍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고신(告身)에 서경(署經)하는 법이 이와 같은 데 이르렀다면 그 옛날로 복귀하는 것이 마땅하다."
또 상소하였다.
"신 등이 그윽이 생각건대, 전조(前朝)의 말년에 기강(紀綱)의 흐트러짐은 사전(私田)에서 말미암았으므로, 우리 태조(太祖)가 잠저(潛邸)에 계실 때 건의하여 폐단을 혁거하여서 겸병(兼幷)을 없애고 백성의 기운을 소생시켜 국용(國用)을 넉넉하게 하였으니, 우리 동방(東方)의 천만세 생민(生民)의 복락과 이익은 실로 전제(田制)를 바로 잡은 데 힘입은 것입니다. 나라를 개국하던 시초에 어질고 지혜로운 신하와 충성스럽고 의로운 선비로서 익대(翼戴) 협천(協贊)한 자는 공이 일시에 그치지 않고 거의 장차 사직(社稷)과 더불어 시종(始終)해야 하므로, 공을 보답하는 전장(典章)은 토전(土田)을 상주어 그들로 하여금 대대로 먹고 살게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뒤이어 정사 공신(定社功臣)·좌명 공신(佐命功臣)도 아울러 모두 토전을 가지게 되었는데 전하께서는 또한 대대로 전하게 하고, 이를 《육전(六典)》에 새겨서 우대하여 보이심이 끝이 없으니, 진실로 정사(定社)·좌명(佐命)의 공훈이 개국(開國)보다 못지 않으며, 만세에 힘입어 잊지 않으려는 것입니다. 원종 공신(元從功臣)인 경우에는 그 시종 훈구(始從勳舊)에게는 진실로 상을 후하게 주는 것이 마땅하나, 살아서 가만히 앉아서 공전(公田)의 수입으로 먹고 살며, 죽어서는 자손이 죄를 용서받는 은전을 받으니 훈로(勳勞)에 대한 보답이 가히 지극하다고 하겠습니다. 기타 일시(一時)의 전지로서 ‘별사전(別賜田)’이라 칭하는 것이 전지의 결수(結數)가 또한 많습니다. 그러나, 이제 모두 세전(世傳)하는 예에 넣으니 대저 전토(田土)로써 공에 보답하는 법이 비록 아름답기는 하나, 본조(本朝)의 한정된 전토를 가지고 또한 모두 세전(世傳)한다면 사세가 후세(後世)에 전할 수 없으며, 토전(土田)의 부족함이 있을까 두렵습니다. 또 일시의 공으로써 3 공신(三功臣)331) 의 예에 참여하여 같이 세전(世傳)의 은사(恩賜)를 받는다면 대소의 공과 가볍고 무거운 상이 또한 어찌 구별되겠습니까? 더군다나 이 3 공신(三功臣) 외에 공신전(功臣田)·별사전(別賜田)은 세전(世傳)시키지 말자고 하여, 정부에서 이미 일찍이 계달(啓達)하여 윤허를 받고 이를 중외(中外)에 반포하여서 성전(成典)이 되었습니다. 이제 다시 명(命)이 있으시기를, ‘사패(賜牌)332) 에 자손에게 상전(相傳)한다는 글이 있으면 세전(世傳)하도록 허락한다.’고 하였는데, 신 등이 생각건대, 가볍게 스스로 법을 고치는 것은 아름다운 일이 아닙니다. 만약 이렇게 한다면 전조(前朝)와 같은 사전(私田)의 폐단이 여기에서 다시 일어날 것이며, 장차 태조(太祖)의 좋은 법과 아름다운 뜻이 불과 수세(數世)를 가지 못하여 그치고 땅을 쓸어버리듯이 없어질 때를 볼 것입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3 공신(三功臣) 이외에 원종 공신전(元從功臣田)과 별사전(別賜田)을 없애고, 의정부에서 수교(受敎)한 것에 의하여 세전(世傳)을 허락하지 말고 영세(永世)의 전장(典章)을 내리소서. 회군 공신(回軍功臣)인 경우에는 공료(攻遼)333) 의 역(役)에서 다만 의거(義擧)하였을 뿐이요, 국가에 관계되는 것이 없으니, 이로써 공을 칭한다면 이미 후세(後世)에 신(信)을 전할 수도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받은 전지는 오로지 세전(世傳)하는 것이 부당할 뿐만 아니라, 또한 그들로 하여금 안연(安然)히 앉아서 먹고 살게 할 수 없습니다. 빌건대, 이 전지를 가지고 국용(國用)에 충당하여 길이 무명(無名)의 상(賞)을 없애소서."
정부에 내려서 상량 의논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26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87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註 330]천황(天潢) : 임금의 왕통(王統).
- [註 331]
○司憲府大司憲尹向等上疏。 疏略曰:
臣元桂、和等, 旣是宗室支派, 其子孫, 乃與王子王孫, 竝列于位, 無所分別, 不唯貴賤無等, 已嘗開具以聞。 前月十九日, 授之崇判敬承府事, 李澄 蓴城鎭, 興發 長淵鎭兵馬使。 臣等竊聞爲國以禮, 禮莫先於別尊卑辨貴賤。 名不可亂, 分不可犯, 天地之常經, 古今之通義, 非一時之所得私也。 且署告身之法, 雖在下士, 尙且辨族屬分嫡庶, 以淸士流。 況之崇等, 分派天潢, 而流且不澄者乎? 殿下以納汙之量、親愛之恩, 尊寵之, 致使孼芽之賤, 上雜金枝之貴。 臣等職在憲司, 何敢屈法伸恩, 以毁國章, 以累朝廷哉? 澄及興發, 當國有虞, 出戌邊疆, 姑且署其告身, 之崇官崇位顯, 實踰其分, 又非二人之比, 其告身何敢署過? 伏望上裁。
上曰: "署告身之法, 至如此, 則當復其舊。" 又疏曰:
臣等竊惟, 前朝之季, 紀綱之靡, 由於私田。 我太祖在潛邸, 建議革弊, 以絶兼幷, 而民氣乃蘇, 國用以贍, 吾東方千萬世生民之樂利, 實賴田制之歸正也。 肇國之始, 仁智之臣、忠義之士, 翼戴協贊者, 功不止一時, 庶將與社稷爲終始, 則報功之典, 至有土田之賞, 而俾之世食; 繼而定社佐命功臣, 竝皆有田。 殿下亦令世傳, 刊之《六典》, 優示無窮, 誠以定社佐命之勳, 不降於開國, 而萬世所賴而不忘者也。 若元從功臣, 則其侍從勳舊, 誠宜重賞, 然生則坐享公田之入, 死則子孫承宥罪之恩, 勳勞之報, 可謂至矣。 其他一時之田, 稱爲別賜者, 田數亦多, 而今皆在世傳之例。 夫以田報功之法雖美, 以本朝有限之田, 亦皆世傳, 則事非可傳於後世, 而恐土田之有不贍也。 且以一時之功, 得與三功臣之例, 同蒙世傳之賜, 則大小之功, 輕重之賞, 亦奚辨哉? 況此三功臣外, 功臣別賜田, 勿令世食, 政府已嘗啓達蒙允, 頒之中外, 以爲成典, 今復有命曰: "賜牌有子孫相傳之文, 許令世傳。" 臣等謂輕自更改, 非美事也。 若是則前朝私田之弊, 復起於此, 將見太祖之良法美意, 曾不數世而已掃地矣。 伏望除三功臣外, 將元從功臣田別賜田, 依議政府受敎, 勿許世傳, 以垂永世之典。 至若回軍功臣, 則特擧義於攻遼之役耳, 非關於國家也。 以此稱功, 已非傳信於後世, 其所受之田, 不惟不當世傳, 亦不可使之安然坐食也。 乞將此田, 以充國用, 永除無名之賞。
下政府擬議。
- 【태백산사고본】 11책 26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87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註 3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