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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25권, 태종 13년 6월 8일 을묘 2번째기사 1413년 명 영락(永樂) 11년

예조에서 사전(祀典)을 개정하여 올리다

사전(祀典)을 개정하여 예조에서 아뢰었다.

"삼가 《문헌통고(文獻通考)》를 살펴보건대, 산천(山川)에 작(爵)을 봉해 준 것은 무후(武后)189) 로부터 시작하였고, 송나라 진종(眞宗) 때에 이르러 오악(五岳)을 모두 봉하여 제(帝)로 삼았으며, 또 각기 후(后)로 봉했습니다. 진무(陳武)190) 가 말하기를, ‘제(帝)는 단지 하나의 상제(上帝)가 있을 뿐인데, 어찌 산(山)을 제(帝)라 이를 수 있겠는가? 또 후전(后殿)을 그 뒤에다 세운다하니 알지 못하겠지만, 어느 산이 그 짝으로서 부부(夫婦)가 되겠는가?’하였습니다. 《홍무예제(洪武禮制)》에서는 악진해독(岳鎭海瀆)을 제사하는데, 모두 모악(某岳)·모해(某海)의 신(神)이라 일컬었고, 아직 작(爵)을 봉한 호(號)는 없었습니다. 전조(前朝)191) 에 경내(境內)의 산천에 대하여 각기 봉작(封爵)을 가하고, 혹은 처첩(妻妾)·자녀(子女)·생질(甥姪)의 상(像)을 설치하여 모두 제사에 참여했으니 진실로 미편(未便)하였습니다. 우리 태조(太祖)가 즉위하자 본조(本曹)192) 에서 건의하기를, ‘각관(各官)의 성황지신(城隍之神) 작호를 혁거(革去)하고, 단지 모주(某州)의 성황지신이라 부르게 하소서.’하여, 즉시 유윤(兪允)을 받아 이미 뚜렷한 법령으로 되었으나, 유사(有司)에서 지금까지 그대로 따라 이를 행하지 않아 작호(爵號)와 상설(像說)이 아직도 그전대로이어서 음사(淫祀)를 행하니, 엎드려 바라건대, 태조가 이미 내린 교지를 거듭 밝혀 단지 ‘모주(某州)의 성황지신(城隍之神)이라’ 부르게 하고, 신주(神主) 1위(位)만 남겨 두되 그 처첩(妻妾) 등의 신은 모두 다 버리게 하소서. 산천(山川)·해도(海島)의 신 역시 주신(主神) 1위만을 남겨 두고 모두 목주(木主)에 쓰기를, ‘모해(某海)·모산천지신(某山川之神)’이라 하고, 그 상설(像設)은 모두 다 철거(撤去)하여 사전(祀典)을 바루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예조에서 또 아뢰었다.

"1. 삼가 당(唐)나라 《예악지(禮樂志)》를 살펴보니, 악진해독(岳鎭海瀆)은 중사(中祀)이고, 산림천택(山林川澤)은 소사(小祀)입니다. 《문헌통고(文獻通考)》의 송제(宋制)에서도 악독(岳瀆)을 중사로 하였고, 본조(本朝)에서도 전조(前朝)의 제도를 이어받아 산천의 제사는 아직도 등제(等第)를 나누지 아니하였으니, 경내(境內)의 명산 대천(名山大川)과 여러 산천[諸山川]을, 바라건대, 고제(古制)에 의하여 등제를 나누소서.

1. 제사(諸祀)의 단유(壇壝) 안에서는 오직 사직단(社稷壇)과 풍운뢰우단(風雲雷雨壇)만이 법식대로 축조(築造)되었고, 그 나머지 영성(靈星)·사한(司寒)·마조(馬祖)·선목(先牧)·마사(馬社)·마보(馬步)·중농(仲農)·후농(後農)의 단유는 모두 아직 축조되지 못했으며, 선농(先農)·선잠(先蠶)·노인성(老人星)·북교(北郊)·여제(厲祭)의 단유는 비록 축조하였다 하더라도 또한 법식과 다르니, 윗항의 단유는 고제(古制)를 상고하여 땅을 보아서 축조하소서.

1. 여러 사단(祀壇) 안에 비록 제단을 둔 곳이 있으나, 신주(神廚)와 제기고(祭器庫)와 제관(祭官)의 재소(齋所)가 없는 까닭에 신(神)의 위판(位版)과 축판(祝版)을 제사한 뒤에는 항상 남의 집에다 두게 되고, 혹 비나 눈을 만나면 전물(奠物)의 공비(供備)와 제관이 재숙(齋宿)할 장소조차 없으니, 신(神)을 공경하는 도리가 아닌듯 합니다. 바라건대, 고제(古制)에 의하여 신주와 제기고, 제관의 재소를 짓게 하소서."

임금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25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73면
  •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풍속-예속(禮俗) / 출판-서책(書冊) / 역사-고사(故事)

  • [註 189]
    무후(武后) : 당(唐)나라 중기의 측천무후(則天武后)를 말함. 고종(高宗)의 후궁으로 고종이 죽고 난 다음에 자신이 황제가 되었음.
  • [註 190]
    진무(陳武) : 송(宋)나라 때 학자. 자(字)는 번수(蕃叟). 《춘추(春秋)》에 정통하였음. 벼슬은 국자정(國子正)·우문전수찬(右文殿修撰)에 이르렀고 저서는 《강동지리론(江東地理論)》이 있음.
  • [註 191]
    전조(前朝) : 고려초.
  • [註 192]
    본조(本曹) : 예조.

○改正祀典。 禮曹啓曰: "謹按《文獻通考》, 山川封爵, 肇自武后, 至 眞宗朝, 五岳皆封爲帝, 又各封后。 陳武曰: ‘帝只一上帝而已, 安有山而謂之帝? 又立后殿於其後, 不知何山, 可以當其配, 而爲夫婦耶?’ 《洪武禮制》, 祀岳鎭海瀆, 皆稱某岳某海之神, 而未有封爵之號。 前朝於境內山川, 各加封爵, 或設妻妾子女甥姪之像, 皆與於祭, 誠爲未便。 及我太祖卽位之初, 本曹建議, 各官城隍之神, 革去爵號, 但稱某州城隍之神, 卽蒙兪允, 已爲著令。 有司因循至今, 莫之擧行, 爵號像設, 尙仍其舊, 以行淫祀。 伏望申明太祖已降敎旨, 但稱某州城隍之神, 只留神主一位, 其妻妾等神, 悉皆去之; 山川海島之神, 亦留主神一位, 皆題木主曰某海某山川之神, 其像設, 竝皆徹去, 以正祀典。" 從之。 禮曹又啓: "一, 謹按 《禮樂志》, 岳鎭海瀆爲中祀; 山林川澤爲小祀, 《文獻通考》, 制亦以岳瀆爲中祀。 本朝承前朝之制, 山川之祀, 未分等第。 境內名山大川及諸山川, 乞依古制分等第。 一, 諸祀壇壝內, 唯社稷壇、風雲雷雨壇, 如式造築, 其餘靈星、司寒、馬祖、先牧、馬社、馬步、仲農、後農壇壝, 竝未造築。 先農、先蠶、老人星、北郊厲祭壇壝, 雖已造築, 亦不如式。 上項壇壝, 稽古制, 相地造築。 一, 諸祀壇內, 雖有壇之處, 以無神廚及庫祭官齋所, 故神位版及祝版, 祭後恒置人家, 或値雨雪, 則奠物供備祭官, 齋宿無所, 似非敬神之道。 乞依古制, 作神廚及庫、祭官齋所。" 從之。


  • 【태백산사고본】 11책 25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73면
  •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풍속-예속(禮俗) / 출판-서책(書冊)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