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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25권, 태종 13년 5월 19일 정유 1번째기사 1413년 명 영락(永樂) 11년

큰 비가 내려서 개경사 관음전 법석에 참여하지 못하다

큰 비가 내렸다. 처음에 임금이 개경사(開慶寺)관음전(觀音殿) 법석(法席)에 가 보고자 하였는데, 사간원에서 상소하였다.

"임금은 사방(四方)의 의표(儀表)이니, 의표가 이곳에서 바르면 그림자가 저곳에서 곧을 것입니다. 《시경(詩經)》에 이르기를, ‘이 사람을 다투어 따르지 아니하랴? 사방에서 이것을 교훈으로 하니, 이 덕이 나타나지 아니하랴? 백벽(百辟)180) 이 이것을 본받는다.’ 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전하는 태조가 창조한 업(業)을 이어받아 법제(法制)를 갖추고 풍교(風敎)를 바로 하여 법을 후손에게 드리워야 할 때이니, 불씨(佛氏)의 이단(異端)의 폐해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지난번 신 등이 상소하여 아뢰었던 바, 전하가 의논을 온 나라 사람에게 미치시니, 모두가 ‘혁파함이 가합니다.’하여, 바로 유음(兪音)이 내리매, 대소 신민(大小臣民)이 기뻐서 하례하지 않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근일에 중궁(中宮)이 편안치 못하여 중을 맞이하여 부처에게 기도함은, 절박(切迫)하고도 지극한 점에서 스스로 그만둘 수 없어서 하는 일입니다만, 전하의 지극한 정성과 세자의 효성이 황천(皇天)에까지 이르러 병이 나음에 이른 것입니다. 예전에 주나라 무왕(武王)이 편치 못하자 주공(周公)삼왕(三王)181) 에게 명(命)을 청하여 자기 몸으로 대신하려 하였는데, 이튿날 바로 병이 나았다고 합니다. 이때에는 아직 부처가 없었으니, 이것은 주공의 정성이 지극한 소치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지금 전하의 지극한 정성이 하늘을 감동하게 한 것을 가지고 공을 부처에게로 돌려, 미포(米布)로 상(賞)을 주고, 토전(土田)을 더해 주며, 또 건원릉(健元陵) 재궁(齋宮) 가까이에 절을 세우고, 이어서 법석(法席)을 베풀어 전하가 이를 보고자 하니, 신 등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유감입니다. 저 부처로 말하면 세상을 미혹(迷惑)하고 백성을 속인 지 오래 됩니다. 지금 지존(至尊)을 굽혀서 이에 친히 임석함으로써 아랫사람에게 보여 주면 사람들이 장차 말하기를, ‘성명(聖明)께서도 이와 같은데, 하물며 어리석은 자야 말해 무엇하겠는가?’하게 되어, 미연(靡然)182) 히 풍습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일시(一時)의 사람들만이 그렇게 여길 뿐 아니라, 백세(百世)의 뒤를 이어받는 임금도 반드시 이를 본받아 말하기를, ‘중과 부처의 일은 우리 선군(先君)도 금하지 못했다.’할 것입니다. 전하의 영명(英明) 과단(果斷)한 자질로써 도리어 이단(異端)에 빠진 것을 만민에게 보여주어 후세의 의혹을 열게 한다면 어찌 매우 가석한 일이 아니겠습니까? 원컨대, 전하는 법석(法席)에 임하지 말고, 토전을 환수(還收)하여서 만세의 법을 남기소서."

임금이 말하였다.

"이미 제사할 때를 택하였으니, 그대들은 다시 교묘한 말을 하지 말라. 만일 비를 만났다든가 혹은 다른 연고가 있다면 가지 않겠지만, 어찌 그대들이 말 때문에 이번 행차를 중지하겠는가?"

간신(諫臣)들이 곧 물러갔는데, 이 날 비 때문에 행차를 그만두었다.


  • 【태백산사고본】 11책 25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71면
  • 【분류】
    과학-천기(天氣)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농업-전제(田制) / 정론-간쟁(諫諍)

  • [註 180]
    백벽(百辟) : 여러 제후.
  • [註 181]
    삼왕(三王) : 중국 고대(古代)의 세 임금. 곧 하(夏)의 우왕(禹王)과 은(殷)의 탕왕(湯王)과 주(周)의 문왕(文王) 또는 무왕(武王)을 이르는 말.
  • [註 182]
    미연(靡然) : 초목이 바람에 나부끼어 쓰러지듯 쏠리는 모양.

○丁酉/大雨。 初, 上欲往觀開慶寺 觀音殿法席, 司諫院上疏曰:

人君, 四方之儀表也。 表正於此, 則影直於彼。 《詩》云: "無競維人, 四方其訓之; 不顯維德, 百辟其刑之。" 今我殿下, 承太祖創造之業, 備法制正風敎, 垂憲後昆之日, 佛氏異端之弊, 不可不慮。 頃者, 臣等上疏以聞, 殿下議及國人, 咸曰: "可革。" 乃下兪音, 大小臣民, 罔不欣賀。 近日中宮未寧, 邀僧禱佛, 是迫切至情, 不能自已而爲之, 殿下至誠, 世子孝懇, 格于皇天, 而致疾愈。 昔周武不豫, 周公請命三王, 以身代之, 翼日乃瘳。 時未有佛, 是周公誠格之致然也。 今殿下, 以至誠所感, 歸功於佛, 賞以米布, 加以土田, 且於健元陵齋宮之畔, 營立佛宇, 仍設法席, 殿下欲往觀之, 臣等竊有憾焉。 夫釋氏惑世誣民者久矣。 今屈至尊而親臨之, 以示于下, 則人將曰: "聖明若是, 況其愚者乎?" 靡然成風, 不可勝禁。 非獨一時之人爲然, 百世之下, 嗣君必效之曰: "僧佛之事, 我先君, 亦莫之禁也。" 以殿下英明果斷之資, 反陷異端, 以示萬民, 以啓後世之疑, 豈不甚可惜哉? 願殿下, 勿臨法席, 還收土田, 以貽萬世之法。

上曰: "業已擇祭時矣, 爾等毋更巧言。 若遇雨水, 或有他故, 則不往矣。 豈以爾等之言, 而停此行乎?" 諫臣乃退, 是日以雨而止。


  • 【태백산사고본】 11책 25권 26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71면
  • 【분류】
    과학-천기(天氣) / 사상-유학(儒學) / 사상-불교(佛敎) / 역사-고사(故事) / 농업-전제(田制) / 정론-간쟁(諫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