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원록·종친록·유부록을 만들다
《선원록(璿源錄)》250) ·《종친록(宗親錄)》251) ·《유부록(類附錄)》252) 을 만들었다. 임금이 일찍이 하윤(河崙) 등과 의논하고, 이때에 이르러 이숙번(李叔蕃)·황희(黃喜)·이응(李膺)을 불러 그들에게 비밀히 말하였다.
"이원계(李元桂)와 이화(李和)는 태조의 서형제(庶兄弟)이다. 만약 《선원록》에 섞어 올리면 후사(後嗣)는 어찌하겠는가? 마땅히 다시 족보(族譜)를 만들어 이를 기록하게 하라."
곧 3록(三錄)으로 나누어 조계(祖系)를 서술한 것은 ‘선원(璿源)’이라 하고, ‘종자(宗子)’를 서술한 것은 ‘종친(宗親)’이라 하고, 종녀(宗女)와 서얼(庶孽)을 서술한 것은 ‘유부(類附)’라 하여, 하나는 왕부(王府)에 간직하고, 하나는 동궁(東宮)에 간직하게 하였다. 이원계와 이화는 모두 환왕(桓王) 비첩(婢妾)의 소생이었다. 이원계는 아들 넷을 낳았는데, 이양우(李良祐)·이천우(李天祐)·이조(李朝)·이백온(李伯溫)이었고, 맏딸은 장담(張湛)에게 시집갔고, 둘째는 변중량(卞仲良)에게 시집갔다가 다시 유정현(柳廷顯)에게 시집갔고, 막내는 홍노(洪魯)에게 시집갔다가 다시 변처후(邊處厚)에게로 시집갔다. 이화는 아들 일곱을 낳았는데, 이지숭(李之崇)·이숙(李淑)·이징(李澄)·이담(李湛)·이교(李皎)·이회(李淮)·이점(李漸) 등이었고, 1녀는 고려(高麗) 종실(宗室) 왕 아무[王某]에게 시집갔다가 다시 최주(崔宙)에게 시집을 갔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4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53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가족-친족(親族)
- [註 250]《선원록(璿源錄)》 : 목조(穆祖)·익조(翼祖)·도조(度祖)·태조(太祖) 등의 조상(祖上)의 내계(來系)를 기록한 책.
- [註 251]
《종친록(宗親錄)》 : 왕실(王室)의 전범(典範) 안에 들어 있는 종실 자손[宗子]을 기록한 책. 다만 적실(嫡室)은 남자 자손에만 한했음.- [註 252]
《유부록(類附錄)》 : 종실의 여자[宗女]와 서얼(庶孽) 자손을 따로 기록한 책.○作《璿源錄》、《宗親錄》、《類附錄》。 上嘗與河崙等議, 至是, 召李叔蕃、黃喜、李膺密語之曰: "元桂及和, 太祖庶兄弟也。 若混施於《璿源錄》, 則後嗣何知! 宜更爲族譜以誌之。" 乃分三錄, 其敍祖系者曰璿源, 敍宗子者曰宗親, 敍宗女及庶孽者曰類附。 一藏于王府, 一藏于東宮。 元桂與和, 皆桓王婢妾之生也。 元桂四子: 良祐、天祐、朝、伯溫, 女長適張湛, 次適卞仲良, 再適柳廷顯, 季適洪魯, 再適邊處厚。 和生七子: 之崇、淑、澄、湛、皎、淮、漸, 一女適高麗宗室王某, 再適崔宙。
- 【태백산사고본】 10책 24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53면
- 【분류】왕실-종친(宗親) / 가족-친족(親族)
- [註 2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