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태종실록 24권, 태종 12년 7월 21일 갑진 2번째기사 1412년 명 영락(永樂) 10년

큰 바람의 재변이 있으므로 임금이 자성하며 대신에게 구언하다

성석린(成石璘)·조영무(趙英茂), 이조 판서 이직(李稷), 병조 판서 황희(黃喜), 대사헌 유정현(柳廷顯), 사간(司諫) 이육(李稑) 등을 편전(便殿)으로 불러들여 말하였다.

"근일에 큰 바람의 재변이 있는 것은 인사(人事)에 감응함이 있었던 까닭에 그리 된 것이니, 과인이 황음(荒淫)한 실수가 있어서인가? 옛사람이 ‘황(荒)’자를 해석하기를, ‘안으로 색(色)에 빠지고, 밖으로는 짐승에 빠짐이라.’ 하였는데, 내가 안으로 빠진 것은 경 등이 알 바 아니지만, 밖으로 빠진 것은 모두가 함께 아는 바이다. 재변을 만난 뒤로 내 스스로 이르기를, ‘나의 소위(所爲)가 천의(天意)에 합하지 아니하여 이에 이른 것인가?’ 하고 물러가 몸을 닦고 반성함만 같지 못하다고 여겼으므로 정사를 보지 아니한 지 이제는 5, 6일이나 되었는데, 그렇지 않다면 호령과 정사가 백성들의 원망을 산 것이 되니 화기를 해친 것은 어떤 일인가? 사람을 씀에 아직도 적당함을 얻지 못했음인가? 저화의 새 법[新法]이 아직 인심에 흡족하지 못해서인가? 정부와 대간에서 한 마디라도 재변이 오게 한 이유를 말하여 과인을 책함이 없으니 내 매우 민망하게 여기노라. 경 등이 감히 면대하여 말할 수 없다면, 마땅히 각기 실봉(實封)하여 계문(啓聞)하게 하라."

성석린(成石璘)·유정현(柳廷顯)·이육(李稑) 등이 대답하였다.

"신 등은 아직도 전하의 성덕(盛德)에 잘못이 있으심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람을 임용한 한 가지 일로써 말하오면, 신 등과 같은 자도 중기(重寄)126)승핍(承乏)127) 하였은 즉, 그 점이 백료(百僚)의 사이에 외람되게 쓰여졌는지 어찌 알겠습니까?"

하고, 성석린(成石璘)이직(李稷)이 다시 아뢰었다.

"오늘날 전선(銓選)을 모두 신 등에게 맡기었으니, 실로 미편(未便)합니다. 원컨대, 이제부터는 전선할 때에 집정 대신(執政大臣) 등을 어전에 불러 1품에서 권무(權務)에 이르기까지 모두 친히 현부(賢否)를 물으시어 제수하면 외람되게 받은 자가 그 사이에 용납될 수 없을 것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그것은 그렇지가 아니하다. 오늘날 모든 지위에 열해 있는 자들도 경 등이 다 품신하여 내가 임명한 사람들이니, 어찌 경 등과 함께 친히 하여야만 정사를 한다고 하겠는가? 또 정사는 전선(銓選)하는 것뿐 아니라, 날마다 경 등과 서로 말하는 것도 모두가 정사를 하는 것이 되니 각기 자기의 마음을 다하라."

또 말하였다.

"내가 부덕(否德)한 사람으로 삼가 대업(大業)을 이어받으매, 오직 상제(上帝)에 어김을 얻을까 염려하였다. 그러므로 근자에 왕위를 세자(世子)에게 선양하고, 나로 말하면 별궁(別宮)에 물러가 거처하면서 여생을 마치려 하였으나, 대소 신료(大小臣僚) 모두가 ‘불가하다.’하고, 또 내 마음으로도 ‘내 비록 왕위를 사양한다 하더라도 호령(號令)과 정사(政事)는 모두 다 어린 임금에게 위임할 수 없다.’고 여겼는데, 정사에 참여하여 들었은즉, 그 정사의 실수 때문에 재변을 가져온 것은 실로 과인에게 말미암은 것이다. 만약 그렇다면 그 때에 대위(大位)를 사양했다 하더라도 국가에 이익됨이 없었을 것이므로, 드디어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곧 오늘에 이르렀다. 먼젓날 내 상제(上帝)에게 고(告)하기를,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은 내가 구하여서 얻은 것이 아니라, 바로 상제가 명한 것이니, 내가 만약 죄가 있다면 어찌하여 내 몸만 죄를 주지 아니합니까?’하였으니, 근일의 과인의 마음을 경 등이 어찌 다 알겠는가?"

성석린(成石璘)이 말하기를,

"어진이를 천거하고 구언(求言)128) 함도 또한 재변을 물리치는 일단(一端)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였다.

"어진이를 구해 천거함은 모두 전일에 이미 임용한 바이고, 구언(求言)하여 진언하게 함도 또한 목전의 보통일에 지나지 아니한다."


  • 【태백산사고본】 10책 24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4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인사-선발(選拔) / 과학-천기(天氣) / 정론(政論) / 금융-화폐(貨幣)

  • [註 126]
    중기(重寄) : 소중한 지위.
  • [註 127]
    승핍(承乏) : 인재가 부족해서 재능이 없는 사람이 벼슬을 차지함.
  • [註 128]
    구언(求言) : 천재지변(天災地變)이 일어날 때 임금이 정치를 바로잡기 위하여 널리 정치의 방도를 구하던 일. 이때는 말이 맞지 않더라도 용서하였음.

○召成石璘趙英茂、吏曹判書李稷、兵曹判書黃喜、大司憲柳廷顯、司諫李稑等, 引入便殿曰: "近日大風之變, 人事有以感而致之也。 寡人有荒淫之失歟? 古人釋荒字曰: ‘內荒於色, 外荒於獸。’ 我之荒於內者, 非卿等所知, 荒於外者, 則所共知也。 遇災之後, 私自謂曰: ‘我之所爲, 不合天意, 以至於此, 莫若退自修省’, 故不視事, 于今五六日矣。 抑謂號令政事, 致民怨而傷和氣者, 何事歟? 用人未得其當歟? 楮貨新法, 未愜於人心歟? 政府臺諫, 無一言及致災之由, 以責寡人, 予甚悶焉。 卿等不敢面言, 則宜各實封以聞。" 石璘廷顯等對曰: "臣等未見殿下盛德之失。 以用人一事言之, 如臣等者, 亦承乏重寄, 則其於百僚之間, 安知有冒濫者哉?" 石璘復啓曰: "今銓選, 皆委之臣等, 實爲未便。 願自今銓選之際, 召執臣等於前, 一品至權務, 皆親問賢否而除授, 則冒濫者無所容其間矣。" 上曰: "是不然也。 今列于庶位者, 卿等皆稟我命。 何必親與卿等爲政乎? 且政事, 非特爲銓選, 日與卿等相語者, 皆爲爲政也。 其各盡乃心。" 又曰: "予以否德, 祗承大業, 惟恐獲戾于上帝, 故頃者欲以禪于世子, 我則退處別宮, 以終餘年。 大小臣僚, 皆以爲不可, 且予心亦謂我雖辭位, 號令政事, 不能盡委於幼沖, 而得與聞焉, 則其以政事之失而致災變者, 實由寡人。 若爾則其辭大位, 無益於國家也。 是故未遂厥志, 式至今日。 日者, 我告于上帝曰: ‘我之居此位, 非我求而得之, 乃上帝所命。 我若有罪, 何不只罪我躬?’ 近日寡人之心, 卿等豈能悉知哉?" 石璘曰: "擧賢求言, 亦弭災之一端。" 上曰: "求賢而所擧, 皆昔日已用之人; 求言而所陳, 亦不過目前之常事也。"


  • 【태백산사고본】 10책 24권 4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44면
  • 【분류】
    왕실-국왕(國王) / 인사-선발(選拔) / 과학-천기(天氣) / 정론(政論) / 금융-화폐(貨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