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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23권, 태종 12년 6월 14일 정묘 4번째기사 1412년 명 영락(永樂) 10년

사헌부에서 올린 시무 사의를 의정부에 내려 검토시키다

사헌부(司憲府)에서 상소하였다. 상소는 이러하였다.

"1. 외방(外方) 각 고을에서 백성으로서 공아(公衙)의 구종(丘從)에 충당하여 부리기를 관노(官奴)같이 하니, 대단히 옳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정부에서 일찍이 신청(申請)하여 이를 없애고, 그 고을의 노비로써 그 역사를 대신하게 하였으니 참으로 편익(便益)한 일입니다. 그러나, 각 고을의 노비가 많고 적은 것이 같지 않아서 많은 것은 천백(千百)에 이르고, 적은 것은 두어 사람도 없으니, 고을의 역사가 오히려 부족한데, 또 어찌 구종(丘從)의 임무에 충당할 수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노비가 없는 각 고을에서 도리어 촌민(村民)으로 서로 교대하여 사역시키는데, 그 나무하는 노고와 영송(迎送)하는 번거로움이 비록 농삿달을 당하여도 복무를 쉬지 않으니, 백성이 심히 근심하고 원망합니다. 원컨대, 이제부터 각 고을의 구종(丘從)은 그 고을의 등급에 따라 액수(額數)를 정하여, 노비가 없는 각 고을은 수가 많은 각 고을의 노비를 덜어 내어 충당하여 정하고, 만일 오히려 부족하거든 속공(屬公)한 사사노비(寺社奴婢)로써 수에 충당하면, 고을에서는 사령(使令)을 맡기기에 족하고 촌민(村民)은 근심하고 괴로워하는 탄식이 없을 것입니다.

1. 국가에서 이미 수참(水站)100) 을 세우고 또 참리(站吏)를 정하여, 조운(漕運)이 쉽고 국용(國用)이 충족합니다. 그러나, 사선(私船)을 가진 자가 조운(漕運)을 함께 하지 않은 까닭으로 수가 적은 참부(站夫)가 농업을 돌아보지 못하고, 봄부터 여름까지 힘을 다하여 조운하여도 능히 끝내지 못하고, 장마 비를 만나면 가을까지도 오히려 다 수운(輸運)하지 못하고, 또 얼음이 얼면 겨울이 지나도록 간수하니, 백성이 괴로움을 견디지 못하여 유이(流移)하는 자가 서로 계속합니다. 전운(轉運) 관원이 그 궐한 액수를 상고하여 주군(州郡)으로 하여금 독촉하고 책임지워 보충하게 하나, 또 한가한 백성이 없으니 액수를 채우기가 어려워서 그 폐단이 심히 큽니다. 빌건대, 이제부터 물가의 주군에 살고 있는 속공(屬公)한 사사 노비(寺社奴婢)와 신량 수군(身良水軍)으로써 참부(站夫)를 더 두고, 배를 더 만들어서 서로 교대하여 번(番)들게 하면, 조운하는 것이 때를 잃는 폐단이 없고, 참부가 도망하여 피하는 근심이 없을 것입니다.

1. 지금 인녕부(仁寧府)·경승부(敬承府) 두 부(府)에 판사(判事)·윤(尹)을 더 두고 사윤(司尹)을 고치지 않으니, 상관(上官)은 많고 하관(下官)은 적어서 여러 일에 맡아 볼 사람이 없습니다. 빌건대, 인녕부에서는 마땅히 사윤을 혁파하고, 한결같이 공안부(恭安府)의 예에 의하여 소윤(少尹) 한 사람을 두어 낭청(郞廳)을 삼고, 경승부에는 일찍이 소윤을 두었으니, 사윤을 또한 마땅히 혁거하여 없애소서.

1. 조정(朝廷)은 높이지 않을 수 없고 관작(官爵)을 중히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본래 일찍이 양부(兩府)101) 를 거친 자를 ‘재추(宰樞)102) ’라고 일컬어 비록 한산(閑散)에 있더라도 나라에 의논할 일이 있으면 반드시 모여 앉아서 가부를 논하니, 직임이 중한 것이 이와 같았습니다. 그러므로, 백성을 다스리는 외방 수령의 직임에 전보(轉補)한 자는 비록 양부(兩府)이상의 산관(散官)을 띠었더라도 또한 참여하지 못합니다. 하물며 실직이 없는 검교(檢校)의 직임이겠습니까? 지금 양부를 거치지 않은 검교 가선(檢校嘉善) 이상이 또한 모두 전함 재추소(前銜宰樞所)103) 에 합좌(合坐)하므로, 반(班)의 차서가 혼란할 뿐만 아니라, 명분이 등수가 없으니 깊이 미편합니다. 빌건대, 양부를 거치지 않은 검교(檢校)로 하여금 따로 회소(會所)를 만들어서, 관작을 중하게 하고 조정(朝廷)을 높게 하소서.

1. 작록(爵祿)은 인주(人主)가 어진 선비를 대접하는 것입니다. 본조(本朝)에서 벼슬을 베풀고 관원을 둔 것이 많지 않은 것이 아니므로, 이것으로 어진 인재를 대접하기에 족합니다. 조관(朝官) 이외에 또 검교(檢校)를 두어서 일없이 녹을 먹는 자가 많으니, 빌건대, 검교의 벼슬을 모두 파하소서. 만일 재덕이 직책을 맡길 만한 자가 있으면, 드러나게 조관의 관직을 주고, 단지 훈구(勳舊)만 있고 조관에 마땅치 않는 자는 다만 제수를 허락하고 녹은 먹지 말게 하소서.

1. 의관(衣冠)과 예도(禮度)를 모두 중국 제도에 따르면서 여복(女服) 한 가지 일은 아직 예전 풍습을 그대로 따릅니다. 또 본조의 예복(禮服)이 참람하고 사치하여 절도가 없습니다. 노의(露衣)·오(襖)·군(裙)·입모(笠帽)는 높은 자의 옷인데, 지금 장사치[商賈]의 천한 여자가 모두 입으니 높고 낮은 것이 다시 분별이 없습니다. 빌건대, 이제부터 4품 이상의 정처(正妻)는 노의·오·군·입·모를 착용하고, 5품 이하의 정처는 다만 장삼(長衫)·오·군·입·모를 착용하되 노의를 입는 것을 허락하지 마소서. 전일 본부에서 신청한 바, ‘종비(從婢)는 오·군을 허락하지 아니하고, 그 입·모는 다만 저포(苧布)를 쓰고, 첨(襜)의 길고 짧은 것은 주인의 모자와 똑같지 않고 반을 감하여 제도를 정한다.’고 하였으나, 또한 상하(上下)가 아직도 분별이 되지 않습니다. 지금부터 궁녀(宮女)와 상기(上妓) 이외에 서인(庶人)의 부녀(婦女)와 종비(從婢)·천례(賤隷)의 옷은 다만 면주와 저포의 몽두의(蒙頭衣)를 쓰고, 나사(羅紗)·단자(段子)와 입(笠)·모(帽)·말(襪)·군(裙)을 허락하지 말고, 상기(上妓)도 또한 입·모를 허락하지 말아서 존비(尊卑)의 등급을 구별하소서."

임금이 보고 의정부에 내리니, 의논하였다.

"공아(公衙)의 구종(丘從)은 관노(官奴)를 쓰되, 주(州)·부(府)·군(郡)의 차등을 보아 수를 정하고, 검교(檢校)의 합좌(合坐)하는 것과 참부(站夫)의 일은 예전대로 하고, 여복(女服)의 일은 예조에 내리어 상정하고, 그 나머지는 모두 헌사(憲司)의 아뢴 것에 따르소서."

임금이 명하였다.

"검교(檢校)가 녹을 받는 것과 여복(女服)에 대한 일은 예전대로 하고, 그 나머지 사건은 의논한 것에 의하여 시행하라."


  • 【태백산사고본】 10책 23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39면
  • 【분류】
    의생활(衣生活)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신분-천인(賤人) / 교통-수운(水運) / 재정-역(役) / 인사-관리(管理)

  • [註 100]
    수참(水站) : 전라도·경상도·충청도 등지에서 세곡(稅穀)을 서울로 조운(漕運)할 때 중간에서 쉬던 곳.
  • [註 101]
    양부(兩府) : 고려 때에는 중서 문하성(中書門下省)과 처음에는 중추원(中樞院), 뒤에는 밀직사(密直司)의 두 부(府)를 가리켰는데, 조선조 때에는 의정부(議政府)와 중추부(中樞府)를 가리키는 말이었음.
  • [註 102]
    재추(宰樞) : 양부(兩府)의 가선 대부(嘉善大夫) 종2품관 이상을 지낸 관원.
  • [註 103]
    전함 재추소(前銜宰樞所) : 종2품 이상의 한량(閑良)·기로(耆老)들이 모인 기관. 전함 재추의 수는 처음 태조 때에는 40여 명이었으나, 태종 때에는 70여 명이었음. 태종은 공해전(公廨田) 1백 결, 노비 50명, 서제(書題) 20명을 주어 아문(衙門)을 설치하고 매양 정지(正至), 탄일(誕日)에 반열에 출입하게 하였음.

○司憲府上疏。 疏曰:

一, 外方各官, 以百姓充公衙丘從, 使之如官奴, 甚無謂也。 故政府嘗申請除之, 以其官奴婢代其役, 誠爲便益。 然各郡奴婢, 多小不等, 多者或至千百, 少者曾無數口。 官中役使, 尙且不足, 又焉能充丘從之任哉? 是以無奴婢各郡, 反以(材)〔村〕 民相遞使之, 其樵木之勞、送迎之煩, 雖當農月, 服勤不已, 民甚愁怨。 願自今, 各郡丘從, 以其州縣等級, 定爲額數, 無奴婢各郡, 以數多各郡奴婢, 除出充定。 若猶不足, 以屬公寺社奴婢充數, 則州郡足任使令, 而村民無愁苦之嘆矣。 一, 國家旣立水站, 又定站吏, 漕運易而國用周矣。 然持私船者, 不與共漕運, 故數少站夫, 不顧農業, 自春至夏, 盡力漕運, 亦未能辦, 必遭霖雨, 至秋猶未畢輸。 又遭氷合, 經冬看守, 民不堪苦, 流移者相繼。 轉運之官, 考其闕額, 縱使州郡督責而充之, 且無閑民, 固難充額, 其弊甚巨。 乞自今, 以其水邊州郡所居屬公寺社奴及身良水軍, 增置站夫, 加造船隻, 更相遞番, 則漕運無失時之弊, 站夫無逃避之患矣。 一, 今以仁寧敬承二府, 加置判事尹, 而不革司尹, 上官多而下官小, 庶事無掌之者。 乞於仁寧府, 宜革司尹, 一依恭安府例, 置少尹一員, 以爲郞廳。 敬承府則嘗置少尹, 其司尹亦宜革除。 一, 朝廷不可不尊, 官爵不可不重。 本以曾經兩府者稱宰樞, 雖在閑散, 國有議事, 則必會坐可否。 職任之重如此, 故其補外寄臨民職者, 雖帶兩府已上散官, 亦不得與焉。 況檢校無實之職乎? 今也兩府未行檢校, 嘉善已上, 亦皆合坐於前銜宰樞所, 不唯班序混殽, 名分無等, 深爲未便。 乞令兩府未行檢校, 別爲會所, 以重官爵, 以尊朝廷。 一, 爵祿, 人主所以待賢士也。 本朝設官置員, 不爲不多, 以此待賢材足矣, 朝官之外, 又設檢校, 無事食祿者多矣。 乞悉罷檢校之官, 如有才德可任以職, 則顯授朝着; 但有勳舊, 不宜朝官者, 只許除授, 毋令食祿。 一, 衣冠禮度, 悉遵華制, 女服一事, 尙循舊習, 且本朝禮服, 僭侈無節。 若夫露衣襖裙笠帽, 尊者之服也。 今商賈賤女, 皆得而服之, 尊卑無復辨矣。 乞自今, 四品以上正妻, 着露衣襖裙笠帽; 五品以下正妻, 只着長衫襖裙笠帽, 不許着露衣。 前日本府所申, 從婢不許襖裙, 其笠帽則只用苧布, 襜之長短, 不與主帽齊等, 減半定制, 然亦上下猶未辨也。 自今宮女上妓外, 庶人婦女及從婢賤隷之服, 只用紬苧布蒙頭衣, 不許羅紗叚子與笠帽襪裙; 上妓亦不許笠帽, 以別尊卑之等。

上覽之, 下議政府。 議得: "衙丘從用官奴, 視州府郡等差定數; 檢校合坐站夫之事依舊; 女服之事, 請下禮曹詳定, 其餘皆從憲司所申。" 命檢校受祿及女服之事仍舊, 其餘事件, 依擬議施行。


  • 【태백산사고본】 10책 23권 40장 B면【국편영인본】 1책 639면
  • 【분류】
    의생활(衣生活)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신분-천인(賤人) / 교통-수운(水運) / 재정-역(役)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