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태종실록 22권, 태종 11년 윤12월 25일 신사 1번째기사 1411년 명 영락(永樂) 9년

예조에서 올린 인군과 신하가 잔치하는 예도와 악장의 차례를 의논하다

예조에서 인군과 신하가 함께 잔치하는 예도(禮度)와 악장(樂章)의 차례를 올렸는데, 몽금척(夢金尺)·수보록(受寶籙)으로 첫째를 삼고, 근천정(覲天庭)·수명명(受明命)으로 다음을 삼고, 또 정동방곡(靖東方曲)·납씨곡(納氏曲)·문덕곡(文德曲)·무덕곡(武德曲) 등의 곡(曲)으로 그 다음을 삼았다. 임금이 보고 승정원(承政院)에 이르기를,

"만일 먼저 태조의 일을 노래하고자 한다면, 몽금척(夢金尺)·수보록(受寶籙)은 꿈 가운데 일이거나, 혹은 도참(圖讖)의 설이다. 어찌 태조(太祖)의 실덕(實德)을 기록할 곡조가 없느냐? 너희들이 의논하여 아뢰라."

하니, 대언(代言) 유사눌(柳思訥)·한상덕(韓相德)·탁신(卓愼)이 대답하였다.

"전하의 말씀이 참 옳습니다. 신 등은 생각하기를, 여러 신하가 헌수(獻壽)하는 날에 마땅히 먼저 근천정·수명명 등의 곡조를 노래한 뒤에 태조(太祖)정동방곡·납씨곡·수보록·몽금척 등의 곡조를 노래하는 것이 가합니다. 신 등이 주상의 뜻을 맞추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대개 예악(禮樂)이라는 것은 인정에 맞추어 하는 것인데, 만일 먼저 태조(太祖)의 실덕의 곡조를 노래하면 납씨곡·정동방곡 등의 곡조는 잔치를 파할 때의 음절이고, 초연(初筵)에 연주(演奏)할 것이 아닙니다."

우부대언(右副代言) 조말생(趙末生)은 말하였다.

"기린(麒麟)의 태어남은 개와 양과 다르고 신인(神人)의 태어남은 보통 사람과 다릅니다. 그러므로 직(稷)의 태어남을 찬미하는 자가 말하기를, ‘상제(上帝)의 발자취를 밟고 빠르게 흠동(歆動)하였다.’하였고, 설(契)의 태어남을 찬미하는 자가 말하기를, ‘하늘이 현조(玄鳥)를 명하였다.’하였으니, 지금 보록을 받고 금척을 꿈꾼 것이 실상 태조가 천명을 받은 부험(符驗)이니, 악장(樂章)의 첫머리를 삼는 것이 불가할 것이 없고, 하물며, 이 예는 만대(萬代)의 군신이 함께 잔치하는 악장이니, 반드시 태조의 덕을 미루어 근원하여 먼저 노래하는 것이 가할 것입니다. 만일 몽금척·수보록으로 악장의 첫머리를 삼을 수 없다면, 마땅히 태조의 실덕의 곡조로 첫머리를 삼고, 몽금척·수보록으로 다음을 삼은 뒤에 근천정·수명명으로 다음을 삼는 것이 또한 가할 것입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큰 발자취[巨跡]와 현조(玄鳥)의 설은 참으로 거짓이 아니다. 그러나, 그날 여러 신하가 내게 헌수(獻壽)하는 것은 예조(禮曹) 상정색(詳定色)과 함께 다시 의논하라."

그때 지신사(知申事) 김여지(金汝知)가 복제(服制)로 집에 있었다. 임금이 불러서 의논하니, 조말생의 말과 같았다. 영의정(領議政) 하윤(河崙)이 상서하였다.

"신이 부재(不才)한데도 외람되게 예를 의논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지금 예조에서 정조(正朝) 하례(賀禮)와 연례(宴禮)를 가지고 와서 의논하는데, 절목이 같지 않은 것이 있는 것을 감히 마음대로 스스로 절충하지 못하고, 삼가 기록하기를 다음과 같이 합니다.

1. 조하(朝賀)의 치어(致語)277) 는 당(唐)·송(宋) 때에는 조관(朝官) 반수(班首)가 치어(致語)를 쓰고 표문(表文)은 쓰지 않았는데, 지금 조정에서 또한 같고, 원(元)나라 조정에서는 중서성(中書省)에서 표문을 썼는데, 전조(前朝) 문하부(門下府)에서 또한 표문을 썼습니다. 신은 생각건대, 중국은 예의(禮義)가 나온 곳인데, 당·송과 지금 조정의 예를 마땅히 준용(遵用)하여야 합니다.

1. 시연(侍宴)하는 여러 신하의 좌차(坐次)는 당나라에서는 문관·무관을 나누지 않고 다만 직차(職次)로 앉았는데, 지금 조정에서도 또한 같습니다. 전조(前朝)에서는 송조(宋朝)를 인습하여 문신 4품 이상은 시신(侍臣)으로 상계(上階)에 앉고, 6품 이상은 중계(中階)에 앉고, 무신 3품 이하는 반(班)에 따라 동서랑(東西廊)에 앉았습니다. 신은 생각건대, 문무를 경(輕)하게 하거나 중(重)하게 할 수 없으니, 조정의 예에 의하여 문무를 나누지 말고, 모두 직차로 상계에 앉고, 좌석이 좁으면 중계에 앉고, 또 좁으면 양랑(兩廊)에 앉는 것이 편하겠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치어(致語)하는 것은 마땅히 당(唐)·송(宋)을 따르고, 시신(侍臣)은 전조의 예에 의하여 가까이 앉는 것이 가하다."

하윤이 또 진언(進言)하였다.

"마땅히 수보록·몽금척의 곡조로 정조(正朝)에 군신(君臣)이 동연(同宴)하는 악장(樂章)의 첫머리를 삼아야 합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예로부터 제왕(帝王)이 흥(興)하는 것이 천명(天命)과 인심(人心)에 있으니, 어찌 부참(符讖)을 족히 믿을 수 있겠는가? 광무제(光武帝)가 도참(圖讖)을 믿었는데, 사람들이 모두 비난하였고, 당(唐)나라 배도(裵度)278) 가 장차 회(淮)·채(蔡)를 칠 때에 또한 참서(讖書)가 있었으니, 제왕의 상서(祥瑞)가 아니다. 또 이러한 보록을 받은 것과 금척의 꿈은 태조(太祖)의 실덕(實德)이라고 가리켜 말할 수 없다. 주관(周官)에 육몽(六夢)의 설이 있고 무왕(武王)이 또한 말하기를, ‘짐의 점(占)과 꿈에 합한다.’하였으니, 비록 예전 사람이 하기는 하였으나, 악장(樂章)의 첫머리를 삼을 것은 아니다."

하윤이 말하였다.

"보록에 대한 말은 신이 일찍이 들었는데, 개국하기 전에 어떤 중이 이를 얻었다고 하니, 허망하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공자(孔子)가 비록 괴력(怪力)은 말하지 않았으나, 그러나 촉산(蜀山) 사람 동오경(董五經)의 말이 《중용(中庸)》에 보이고, 청청천리초(靑靑千里草)라는 것은 동탁(董卓)을 가리킨 것인데, 주자(朱子)가 감흥(感興)의 시(詩)에 붙였으니, 참서(讖書)도 또한 고인이 폐하지 않은 것입니다. 또 제왕(帝王)의 흥함에 반드시 앞서 정(定)한 참서가 있으면 사람의 분수가 아닌 욕망(欲望)을 저지할 수 있는 것입니다."

임금이 말하기를,

"도참(圖讖)이 제왕의 일은 아닌데 만일 폐하지 않는다면, 다만 악부(樂府)에 넣을 것이요, 첫머리에 내는 것은 마땅치 않다."

하고, 근천정(覲天庭)·수명명(受明命)의 곡조를 수장(首章)으로 하였다. 임금이 또 대언(代言) 등에게 일렀다.

"예로부터 도참(圖讖)을 믿을 수 없다. 지금 보록(寶籙)의 설을 내가 믿지 않는다.

첫째는 ‘삼전 삼읍(三奠三邑)이 응당 삼한(三韓)을 멸할 것이다.’하였는데, 사람들이 삼전(三奠)의 정도전(鄭道傳)·정총(鄭摠)·정희계(鄭熙啓)라고 하는데, 정희계는 재주와 덕이 없고 개국하는 데도 별로 공이 없으니, 이것이 과연 때에 응하여 나온 사람이겠는가?

둘째는 ‘목자장군검(木子將軍劍)·주초대부필(走肖大夫筆)·비의군자지(非衣君子智)·부정 삼한격(復正三韓格)이라.’ 하였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비의(非衣)는 배극렴(裴克廉)이라.’고 한다. 배극렴이 정승이 된 것이 오래지 않고, 보좌하여 다스린 것이 공효가 없었다. 마땅히 다시 영의정에게 고하여 하윤(河崙)이 지은 근천정(覲天庭)을 제1곡으로 하고, 수보록(受寶籙)은 악부에서 삭제하라."

하윤이 대궐에 나와 친히 청하여, 보록의 곡조를 제3장으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9책 22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18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예술-음악(音樂)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註 277]
    치어(致語) : 치사(致辭).
  • [註 278]
    배도(裵度) : 당(唐)나라 헌종(獻宗)·목종(穆宗) 때의 명신(名臣). 자는 중립(中立). 시호는 문충(文忠). 회채(淮蔡)의 난을 평정하고 평장사(平章事)가 되었음.

○辛巳/禮曹上君臣同宴禮度及樂章次第: 以《夢金尺》《受寶籙》爲首, 次之以《覲天庭》《受明命》, 又次之以《(正東方)〔靖東方〕《納氏》《文德》《武德》等曲。 上覽之, 謂承政院曰: "若先歌太祖之事, 則《夢金尺》《受寶籙》, 是夢中之事, 或圖讖之說耳。 豈無記太祖實德之曲乎? 爾等議聞。" 代言柳思訥韓尙德卓愼對曰: "殿下之言, 誠是也。 臣等以爲群臣獻壽之日, 宜先歌殿下《覲天庭》《受明命》等曲, 然後歌太祖 《(正東方)〔靖東方〕《納氏》《受寶籙》《夢金尺》等曲可也。 臣等非以逢迎上意, 夫禮樂, 稱人情而爲之也。 若先歌太祖實德之曲, 則《納氏》《(正東方)〔靖東方〕等曲, 乃罷宴音節, 非初筵所奏也。" 右副代言趙末生曰: "麒麟之生, 異於犬羊; 神人之生, 異於常人, 故美之生者曰履帝武敏歆, 美之生者曰天命玄鳥, 今《受寶籙》《夢金尺》, 實太祖受命之符也。 以爲樂章之首, 未爲不可, 況此禮乃萬世君臣同宴之樂, 必推源太祖之德, 而先歌之可也。 若以《夢金尺》《受寶籙》, 不可爲樂章之首, 則當以紀太祖實德之曲爲首, 而次之以《夢金尺》《受寶籙》, 然後次之以《覲天庭》《受明命》亦可也。" 上曰: "巨跡玄鳥之說, 誠不誣矣。 然其日群臣獻壽於我也, 其與禮曹詳定色更議之。" 時, 知申事金汝知以服在家, 上召議之, 與末生之言同。 領議政河崙上書曰:

臣以不才, 濫承議禮之命。 今者禮曹以正朝賀禮及宴禮來議, 其有節目不同者, 不敢擅自折中, 謹錄如左。 一。 朝賀致語, 朝官班首用致語, 不用表文, 今朝廷亦同。 朝中書省用表文, 前朝門下府亦用表文。 臣竊謂中國, 禮義所自出, 及今朝廷之禮, 宜當遵用。 一。 侍宴群臣坐次, 不分文武, 只以職次而坐, 今朝廷亦同。 前朝因朝文臣四品以上, 以侍臣坐於上階, 六品以上, 坐於中階, 武臣三品以下, 隨班坐於東西廊。 臣竊謂文武不可輕重, 依朝廷之禮, 不分文武, 俱以職次而坐上階, 座狹則坐中階, 又狹, 然後乃坐兩廊便。

上曰: "致語宜遵, 侍臣則依前朝之禮近坐可也。" 又進言曰: "宜以《受寶籙》《夢金尺》之曲爲正朝君臣同宴樂章之首。" 上曰: "自古帝王之興, 在乎天命人心, 豈符讖之足恃哉! 光武信圖讖, 人共非之; 裵度將討, 亦有讖書, 非帝王之瑞也。 且此《寶籙》之受、《金尺》之夢, 不可指爲太祖之實德也。 《周官》有六夢之說, 武王亦曰: ‘協朕卜占夢。’ 雖古人所爲, 不宜爲樂章之首也。" 曰: "《寶籙》之說, 臣嘗聞之, 開國之前, 有僧得之, 而不可謂妄也。 孔子雖不言怪力, 然蜀山董五經之說, 見於《中庸》。 靑靑千里草, 指董卓, 而朱子寓諸感興之詩, 則讖亦古人所不廢也。 且帝王之興, 必有前定之讖, 則可以沮人非分之望矣。" 上曰: "圖讖, 非帝王之事。 若不廢, 則但序於樂府耳, 不宜首進。" 乃以《覲天庭》《受明命》之曲爲首章。 上又謂代言等曰: "自古圖讖不足信也。 今《寶籙》之說, 予不信矣。 其一曰: ‘三奠三邑, 應滅三。’ 人謂三奠爲鄭道傳鄭摠鄭熙啓也。 熙啓無才德, 於開國固無功, 是果應時而出者乎? 其二曰: ‘木子將軍劍, 走肖大夫筆。 非衣君子智, 復正三格。’ 人謂非衣是裵克廉也, 克廉亦作相不久, 輔治無效。 宜更告於領議政, 以河崙 《覲天庭》爲第一曲, 《受寶籙》則削之樂府。" 詣闕親請, 乃以《寶籙》之曲爲第三。


  • 【태백산사고본】 9책 22권 55장 A면【국편영인본】 1책 618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예술-음악(音樂) / 왕실-의식(儀式) / 왕실-국왕(國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