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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21권, 태종 11년 1월 5일 병인 2번째기사 1411년 명 영락(永樂) 9년

사간원에서 경원의 성을 함락당한 죄로 곽승우를 파직토록 청하다

사간원(司諫院)에서 상소하여 곽승우(郭承祐)를 면직(免職)시키도록 청하였으니, 그 소(疏)는 이러하였다.

"상벌(賞罰)은 나라의 대병(大柄)이니, 한 사람을 상주면 천만 인이 권장되고, 한 사람을 벌주면 천만 인이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한번 상주고 한번 벌주는 것을 삼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군 동지총제(右軍同知摠制) 곽승우(郭承祐)는 성질이 우악하고 잔인하며, 행실이 경박하고 반복(反覆)하여 불충(不忠)한 사람입니다. 처음에 소도군(昭悼君)006) 을 섬길 때는 군사[干戈]를 움직이려 꾀하였고, 또 회안군(懷安君)007) 을 따라 사나운 행동을 마음대로 행하여, 온 나라의 신민(臣民)들이 모두 분노하고 있던 터인데, 전하께서 너그러이 용납하여 죄를 주지 아니하고, 여러 번 높은 벼슬을 더하여 주셨으니, 은혜가 몹시 우악(優渥)하였습니다. 곽승우는 마땅히 자신을 잊고 나라에 몸을 바쳐 전하의 망극(罔極)한 은덕에 보답해야 할 것인데, 변방의 소임(所任)을 받아 산융(山戎)을 막는 데 용병(用兵)의 규율을 잃어 적에게 패(敗)하였고, 또 침래(侵來)한 구적(寇賊)을 만나자 군사를 거두어 싸우지 아니하였을 뿐 아니라, 성(城)을 버리고 도망하여 마침내 선왕(先王)의 능침(陵寢)이 있는 땅을 적의 수중에 빠지게 하였으니, 곽승우의 죄는 용서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전하께서 오히려 부월(鈇鉞)의 형벌을 용서하여 가볍게 말감(末減)의 형벌을 시행하셨으니, 온 나라 신민(臣民)이 더욱 더 마음 아프게 생각하는 바입니다. 일찍이 한 해[年]도 넘기지 아니하여 이를 발탁해 추부(樞府)에 두셨으니, 신 등은 알지 못하거니와, 전하께서 곽승우가 공이 있다고 여기시며, 충성이 있다고 여기시며, 지혜와 용기가 있다고 여기십니까? 그의 관하(管下) 왕정(王庭)최철생(崔哲生)은 이미 벌써 복죄(伏罪)되었는데, 곽승우만이 홀로 목숨을 보전하였고, 또 은총을 받음이 우악(優渥)하니, 그것은 형벌을 쓰고 상을 주는 뜻에 있어서 어떠하겠습니까? 신 등은 생각건대, 후세에 변방의 소임(所任)을 맡은 자가 이로부터 권징(勸懲)하는 바가 없을까 염려됩니다. 또 성조(盛朝)에 충신(忠臣)·의사(義士)가 많지 않은 것도 아닌데, 지금 군사를 복멸(覆滅)시키고 성(城)을 함락당한 사람을 가지고 총제(摠制)의 직임을 맡기심은 옳지 못합니다. 엎드려 바라건대, 전하께서 교명(敎命)을 도로 거두시어 뒷 사람을 경계하도록 하소서."

임금이 소(疏)를 보고 언짢아하며 말하기를,

"나라를 다스리는 데 어찌 두세 사람의 문신(文臣)에게만 힘입겠는가? 내가 잠저(潛邸)에 있을 때 전라도 도원수(全羅道都元帥)가 되어 두 도(道)를 영솔(領率)하고, 그 나머지 여러 도(道)는 모두 주장하는 바가 있었다. 그런데 오늘날에 와서도 전라도 한 도(道) 사람만 쓰고 그 나머지는 모두 쓰지 말란 말인가? 그대들은 말할만한 일이 없으면 모두 집에 물러가서 말하지 않는 것이 옳다. 소(疏) 가운데 소도군(昭悼君)회안군(懷安君)을 섬겼단 말이 있는데, 오늘날 기용한 여러 신하들 가운데 오직 곽승우만이 전에 주인이 있었고, 그 나머지 사람들은 모두 의탁한 곳이 없었단 말인가? 반신(叛臣) 이무(李茂)여성군(驪城君)·여강군(驪江君)·무안군(撫安君) 같은 자에게도 모두 의탁한 바가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 있어서 쓰지 않을 수 없는 까닭에, 모두 거두어 쓰고 있는 것이다. 그대들의 이러한 말은 여러 신하의 마음만 소동(搔動)하고 난(亂)을 조장하는 데 알맞을 뿐이다."

하니, 정언(正言) 금유(琴柔)가 대답하기를,

"오늘날 청한 것은 바로 곽승우경원(慶源)에서 성(城)을 함락당하고 군사를 복멸(覆滅)시킨 죄입니다. 소도군(昭悼君)회안군(懷安君)에 미치게 된 것은 그가 옛날부터 죄가 있다는 것을 말한 것입니다."

하였다. 중관(中官) 노희봉(盧希鳳)이 이 말을 가지고 들어가 아뢰었는데, 착오된 곳이 있었다. 임금이 크게 노하여 그 목소리가 대궐 안을 진동하니, 근신(近臣)들이 모두 실색(失色)하였다. 중관(中官) 김화상(金和尙)에게 명하여 노희봉의 머리채를 잡아 끌고 중문(中門)으로 쫓아내게 하였다. 김화상이 중문에 이르러 벗겨진 사모(紗帽)를 노희봉에게 씌워 주니, 노희봉이 손으로 벗어서 땅바닥에 던져버렸다. 겨우 층계 한 계단을 내려서다 땅바닥에 떨어져 다쳐서 아팠으므로, 소수(小竪)008) 들을 불러 부액(扶腋)하여 나갔다. 김화상에게 명하기를,

"소(疏) 가운데 ‘충신(忠臣)·의사(義士)가 많지 않은 것이 아니라’ 하였으니, 마땅히 그 사람들의 성명(姓名)을 빨리 초록(抄錄)하여 아뢰라. 만약에 내가 알고 있는, 전일(前日)에 의탁한 적이 있는 사람도 아울러 기록하여 아뢴다면, 그 죄(罪) 헤아리지 못할 것이다."

하였다. 금유가 대답하기를,

"온 나라 안이 전하의 신민(臣民)인데, 어디서 다시 충의(忠義)의 인사를 얻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빨리 초록(抄錄)하여 아뢰라."

하고, 또 승정원(承政院)에 명하기를,

"너희들은 나의 후설(喉舌)이 되었으니, 이와 같은 소(疏)를 보았으면 마땅히 물리쳐야 할 것이지, 어찌하여 나에게 아뢰고 난 뒤에 옳거니 그르거니 하는가?"

하였다. 지신사(知申事) 김여지(金汝知)는 어명(御命)을 듣고 부들부들 떨었다.


  • 【태백산사고본】 9책 2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73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변란-정변(政變) / 정론-간쟁(諫諍) / 인물(人物) / 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

  • [註 006]
    소도군(昭悼君) : 이방석(李芳碩).
  • [註 007]
    회안군(懷安君) : 방간(芳幹).
  • [註 008]
    소수(小竪) : 어린 내시.

○司諫院上疏, 請免郭承祐職。 疏曰:

賞罰, 國之大柄, 賞一人而千萬人勸, 罰一人而千萬人懼。 然則一賞一罰, 誠不可不愼也。 右軍同知摠制郭承祐, 頑忍薄行, 反覆不忠人也。 始事昭悼, 謀動干戈, 又從懷安, 以肆强暴。 一國臣民, 所共憤懟, 殿下優容, 不卽加誅, 累增顯秩, 恩至渥也。 爲承祐者, 忘身徇國, 以報殿下罔極之恩, 職也, 一受邊寄, 以禦山戎, 行師失律, 爲敵所敗, 又値來寇, 斂兵不戰, 棄城逃遁, 遂使先王陵寢之地, 陷爲賊藪。 承祐之罪, 在所不宥, 殿下尙寬鈇鉞之誅, 薄施末減之刑, 擧國臣民, 倍增痛心, 曾不踰年, 擢置樞府。 臣等未審殿下, 以承祐爲有功乎? 爲有忠乎? 爲有智勇乎? 其所管王庭崔哲生, 旣已伏罪, 承祐獨保首領, 又蒙寵渥, 其於用刑行賞之義何如? 臣等竊恐後世之守邊寄者, 將自此而無所勸懲矣。 且當盛朝, 忠臣義士, 不爲不多, 今以覆軍陷城之人, 爲摠制之任, 未可也。 伏望殿下, 還收敎命, 以戒後來。

上覽疏不悅曰: "爲國豈獨賴二三文臣乎? 予於潛邸之時, 爲全羅都元帥, 領二道, 其餘諸道, 皆有所主。 及至今日, 獨用全羅一道之人, 而其餘皆不用乎? 汝等若無可言之事, 退坐私第, 不言可也。 疏內, 有事昭悼懷安之言。 今日所用群臣, 獨承祐前有主, 而其餘皆無所托乎? 有如叛臣李茂驪城驪江撫安等, 皆有所托, 然在此日, 不可不用, 故皆收而用之。 汝等此言, 騷動群臣之心, 適足以長亂耳。" 正言琴柔對曰: "今日之請, 乃承祐 慶源陷城覆軍之罪, 而及昭悼懷安者, 言其自昔有罪也。 中官盧希鳳悉以此言入啓, 而有錯誤處。" 上怒甚, 聲震宮中, 近臣皆失色。 命中官金和尙, 扶曳希鳳頭髮, 黜送中門。 和尙至門, 以所脫紗帽, 冠于希鳳, 希鳳以手脫而擲地。 纔下階一級, 墜地有傷痛。 呼小竪輩, 扶腋而出。 命和尙曰: "疏內忠臣義士不爲不多之言, 宜速抄錄姓名以聞。 若以予所知前日有托之人, 竝錄以聞, 則罪在不測。" 對曰: "一國之內, 皆殿下之臣民, 何處更得忠義之士乎?" 上曰: "速抄以聞。" 又命承政院曰: "汝等爲我喉舌, 見此等疏, 宜斥之, 豈可啓予而後, 可否之!" 知申事金汝知聞命戰慄。


  • 【태백산사고본】 9책 21권 2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73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변란-정변(政變) / 정론-간쟁(諫諍) / 인물(人物) / 왕실-국왕(國王) / 사법-탄핵(彈劾)