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종실록20권, 태종 10년 9월 17일 신사 1번째기사
1410년 명 영락(永樂) 8년
종묘에서 점괘를 보아 피방을 결정하다
임금이 상왕전(上王殿)에 나아가 하직을 고하였다. 하윤(河崙)·조영무(趙英茂)가 아뢰었다.
"액막이[度厄]는 반드시 옛 서울에서 할 것이 아니라, 이 땅에서 길(吉)한 날을 택하여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또 조정(朝廷)의 사신이 장차 이를 것이니, 참으로 옳지 않습니다."
임금이 말하였다.
"복서(卜筮)의 글은 성인(聖人)이 폐하지 않은 것이다. 복자(卜者)가 말하기를, ‘명년 운수가 신축일(辛丑日)이 되면 태세(太歲)에 임하리라.’ 하기 때문에, 장차 피방(避方)하여 기도하려는 것이다."
이에 이조 판서(吏曹判書) 윤저(尹柢)·찬성사(贊成事) 유양(柳亮)·지신사(知申事) 안등(安騰)을 보내어 종묘에 점쳐서, 동(動)하면 길하다는 점괘를 얻었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0권 17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64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왕실-행행(行幸) / 왕실-국왕(國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