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평 부원군 이서의 졸기
안평 부원군(安平府院君) 이서(李舒)가 졸(卒)하였다. 이서는 홍주(洪州) 사람인데, 자(字)는 양백(陽伯)이요, 자호(自號)는 당옹(戇翁)이며, 고려(高麗) 시중(侍中) 이연수(李延壽)의 6세손이다. 과거에 올라 벼슬을 거쳐 군부 좌랑(軍簿佐郞)에 이르렀는데, 고려 말년에 조정의 정치가 날로 문란하매, 이서는 물러가 전리(田里)에 거(居)하였다. 홍무(洪武) 병진(丙辰)에 우헌납(右獻納)을 제수하니, 부모가 늙었다고 하여 부름에 나오지 않았고, 부모를 여의매 6년을 시묘(侍墓)하였다. 무진(戊辰)에 내부 소윤(內府少尹)을 제수하니, 상(喪)을 마치지 못하였다고 하여 사양하였다. 국가에서 그 효행을 높이 여기어 문려(門閭)를 정표(旌表)하였다. 그해 겨울에 우리 태조(太祖)께서 당국(當國)하자, 노성(老成)한 이를 천거하고 유일(遺逸)을 물어서 불러다가 내서 사인(內書舍人)을 삼으니, 이서가 또한 전(箋)을 올려 사양 하였으나, 윤허하지 않았다. 임신(壬申)에 태조(太祖)께서 즉위하매, 형조 전서(刑曹典書)로 승진하여 익대 개국 공신(翊戴開國功臣)의 호(號)를 주고, 안평군(安平君)에 봉(封)하였다. 갑술(甲戌)에 사헌부 대사헌(司憲府大司憲)을 제수받고, 어명을 받아 정릉(貞陵)을 3년 동안 지켰다. 무인(戊寅)에 참찬문하부사(參贊門下府事)를 제수하고, 신사(辛巳)에 시랑찬성사(侍郞贊成事)로 옮겼다가, 조금 뒤에 우정승(右政丞)을 제수하여 부원군(府院君)으로 진작(進爵)하고, 동덕 공신(同德功臣)의 호(號)를 가사(加賜)하였다. 6월에 고명(誥命)을 사례하는 일로 표문(表文)을 받들고 경사(京師)에 입조(入朝)하였고, 7월에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를 제수받아 임오(壬午)에 본관(本官)으로 치사(致仕)하니, 나이 71세였다. 그해 겨울에 화엄 도승통(華嚴都僧統) 설오(雪悟)와 더불어 태조(太祖)를 안주(安州)에서 맞아 행궁(行宮)에 이르러 알현(謁見)하니, 태조께서 기뻐하여 조용히 담소(談笑)하였다. 갑신(甲申)에 다시 우정승(右政丞)을 제수받아 을유(乙酉)에 재차 치사(致仕)하였고, 기축(己丑)에 또 우정승(右政丞)을 제수하였는데, 스스로 몸이 쇠약하다고 진달하여 간절히 파면하기를 구(求)하니, 달포가 지나서 영의정(領議政)을 제수하고, 얼마 아니 되어 군(君)으로 봉하여 사제(私第)로 물러났다. 죽으니 나이 79세였다. 철조(輟朝)하기를 3일 동안 하였으며, 임금이 대언(代言)을 보내어 치제(致祭)하고, 시호(諡號)를 문간(文簡)이라 하였다. 이서는 정직(正直)하고 방엄(方嚴)하며, 청백(淸白)하고 검소(儉素)하여 스스로 분수를 지켰으며, 평생[平居] 동안 단정히 앉아 나날을 보냈다. 일찍이 계사(啓事)로 인하여 어좌(御座)에 황릉요(黃綾褥)를 깐 것을 보고, 이서가 말하기를,
"신이 요빛을 보니 전하께서 까실 것이 아닙니다."
하니, 임금이 부끄러워서 사례하였다. 비록 늦게 귀하고 현달하였으나 겸양하고 공손하여 자기를 낮추고, 일찍이 세력과 지위로써 남에게 교만하지 않았으며, 이단(異端)에 혹하지 않아서 죽을 때에 가인(家人)에게 경계하여 상제(喪制)를 한결같이 주자(朱子)의 가례(家禮)를 따르고, 불사(佛事)를 짓지 말게 하였다. 서자(庶子)가 두 사람이 있으니, 이신지(李愼止)·이신유(李愼猷)이다.
- 【태백산사고본】 8책 20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64면
- 【분류】인물(人物) / 사상-불교(佛敎)
○癸酉/安平府院君 李舒卒。 舒, 洪州人, 字陽伯, 自號戇翁, 高麗侍中延壽六世孫也。 登第歷官至軍簿佐郞。 高麗之季, 朝政日紊, 舒屛居田里。 洪武丙辰, 拜右獻納, 以親老不就徵。 喪父母, 廬墓六年。 戊辰, 除內府少尹, 以喪未終制辭, 國家高其孝行, 旌表門閭。 其年冬, 我太祖當國, 擧老成訪遺逸, 徵爲內書舍人, 舒又上箋辭, 不允。 壬申, 太祖卽位, 進刑曹典書, 賜功臣號翊戴開國, 封安平君。 甲戌, 拜司憲府大司憲, 承命守貞陵三年。 戊寅, 拜參贊門下府事, 辛巳, 遷侍郞贊成事, 尋拜右政丞, 進爵府院君, 加賜同德功臣之號。 六月, 以謝誥命, 奉表朝京師, 七月, 拜領議政府事。 壬午, 以本官致仕, 年七十一。 其冬, 與華嚴都僧統雪悟, 迎太祖于安州, 至行宮謁見, 太祖喜, 從容談笑。 甲申, 復拜右政丞, 乙酉, 再致仕。 己丑, 又拜右政丞, 自陳衰憊, 懇求罷免。 踰月, 拜領議政, 未幾, 封君就第, 卒年七十九。 輟朝三日, 上遣代言致祭, 諡文簡。 舒正直方嚴, 淸儉自守, 平居危坐終日。 嘗因啓事, 見御坐設黃綾褥, 舒進曰: "臣觀褥色, 非殿下所宜用。" 上愧謝之。 晩雖貴顯, 謙恭下士, 未嘗以勢位驕人, 不惑異端。 臨終, 誡家人喪制一遵《朱子家禮》, 毋作佛事。 庶子二, 愼止、愼猷。
- 【태백산사고본】 8책 20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1책 56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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