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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종실록 19권, 태종 10년 4월 1일 정유 1번째기사 1410년 명 영락(永樂) 8년

문소전에 제사지내고 축문 등의 제례 규식을 상고하게 하다

임금이 친히 문소전(文昭殿)에 제사하였다. 종전에는 축문(祝文)에 ‘초1일 삭(朔) 모갑자(某甲子)’라고 썼었는데, 역삭 교서 교감(役朔校書校勘) 이뇌(李賴)가 다만 ‘삭(朔)’ 자만 쓰고 ‘초일일(初一日)’ 세 글자는 쓰지 않았으니, 대개 그 말이 중복되는 것을 꺼려하였기 때문이다. 임금이 작(爵)을 올리고, 대축(大祝)이 축문(祝文)을 읽고 나니, 임금이 배위(拜位)로 돌아와서 말하기를,

"내가 일찍이 삭(朔)과 일(日)을 거듭 쓰는 것을 의심하였는데, 지금은 일(日)을 쓰지 않았으니 참 잘하였다."

하고, 예(禮)가 끝나니, 임금이 대언(代言)에게 이르기를,

"종묘(宗廟)의 제사 때에 ‘태위(太尉)’니, ‘사도(司徒)’니, ‘사공(司空)’이니, ‘태상(太常)’이니, ‘광록경(光祿卿)’이니 하는 것은 모두 천자(天子)의 벼슬인데, 지금 제후(諸侯)의 나라로서 이 벼슬 이름을 쓰는 것이 어찌 예(禮)이겠는가? 또 종묘에 제사를 행하는 날에 만일 비와 눈이 오는 날을 당하면 뜰 가운데에 비를 가릴 곳이 없어서 옷을 적시고 용의(容儀)를 잃게 되니, 두렵건대, 정성(精誠)과 공경(恭敬)이 지극하지 못하고 신명(神明)과 사람이 편안하지 못할 것 같다. 마땅히 제후(諸侯)의 제의(祭儀)를 상고하라. 내가 옛날 천조(天朝)에 봉사(奉使)하여 고황제(高皇帝)의 묘제(廟制)를 친히 보았는데, 궁내(宮內)에 사당[廟]이 있었고, 또 오문(午門) 밖에도 있었다. 이것이 어찌 의거(依據)한 데가 없겠느냐? 또한 예전 제도를 상고하여 아뢰라."

하고, 예조 정랑(禮曹正郞) 곽존중(郭存中)을 불러 이 뜻을 일렀다. 이에 하윤(河崙)이 태위(太尉)를 고쳐 초헌관(初獻官)으로 하고, 태상(太常)·광록경(光祿卿)을 고쳐 아헌(亞獻)·종헌관(終獻官)으로 하고, 사도(司徒)를 봉조관(奉俎官)으로 하고, 사공(司空)을 행소관(行掃官)으로 하기를 청하였다. 하윤이 또 말하기를,

"《주문공가례(朱文公家禮)》에 ‘뜰 아래를 지붕[屋]으로 덮는다’는 글이 있으니, 마땅히 비를 가릴 곳을 지어야 합니다."

하니, 임금이 옳게 여겼다. 예조(禮曹)에서 아뢰기를,

"삼가 고문(古文)을 상고하니, 《가례(家禮)》의 사당(祠堂) 주(註)에 이르기를, ‘뜰 아래를 지붕[屋]으로 덮어서 가중(家衆)을 용납하게 한다.’ 하였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이것은 가중(家衆)이 서립(序立)하는 곳이지, 배위(拜位)는 아니다. 다시 상정(詳定)하여 아뢰라."

하였다. 임금이 또 말하기를,

"내가 예조(禮曹)에서 상정(詳定)한 축판(祝版)의 서법(書法)을 보니, 초1일에는 1일을 쓰지 않고 다만 ‘모월삭(某月朔) 모갑자(某甲子)’라고 쓰고, 15일에는 어째서 ‘모월(某月) 15일 모갑자(某甲子)’라 하지 않고 ‘모월삭(某月朔) 모갑자(某甲子) 15일 모갑자(某甲子)’라고 쓰는가?"

하니, 좌우(左右)가 대답하기를,

"삭일(朔日) 뒤에 반드시 삭일(朔日)을 밝혀서 쓰는 것은 그 달[月]을 지칭하는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만일 그 달을 지칭하는 것이라 한다면, 이미 모월(某月)이라고 일컬었는데 어째서 반드시 ‘삭(朔)’자를 쓸 필요가 있겠는가? 또 제법(祭法)에 삭(朔)과 망(望)이 있는데, 초1일은 ‘삭(朔)’이라 쓰고, 15일은 ‘망(望)’이라 쓰지 않는 것은 또 무엇 때문인가?"

하고, 예조(禮曹)에 명하여 다시 예전 제도를 상고하여 아뢰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8책 19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37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

○丁酉朔/上親祭于文昭殿。 先是, 祝文書初一日朔某甲子, 役朔校書校勘李賴, 只書朔字, 不書初一日三字, 蓋疑其言之重複也。 上奠爵, 大祝讀祝文訖, 上還至拜位, 乃曰: "予嘗疑其朔與日疊書, 今不書日, 固當。" 禮畢, 上謂代言曰: "宗廟之祭, 太尉、司徒、司空、太常、光祿卿, 皆天子之官也。 今以諸侯之國, 用此官名, 豈禮也哉? 又宗廟行祭之日, 若値雨雪, 庭中無庇雨之所, 霑服失容, 恐誠敬不至, 神人不能安也。 宜考諸侯祭儀。 予昔者奉使天朝, 親見高皇帝廟制, 宮內有廟, 午門外亦有之。 豈其無據? 亦稽古制以聞。" 乃召禮曹正郞郭存中諭旨。 於是, 河崙請改太尉爲初獻官, 太常光祿卿爲亞ㆍ終獻官, 司徒爲奉俎官, 司空爲行掃官。 又言: "《朱文公家禮》, 有階下以屋覆之之文, 宜作庇雨之所。" 上然之。 禮曹啓: "謹稽古文, 《家禮》祠堂註云: ‘階下以屋覆之, 令可容家衆。’" 上曰: "此乃家衆序立之地, 非拜位也。 更詳定以聞。" 上又曰: "吾觀禮曹詳定祝版書法, 初一日則不書一日, 但書某月朔某甲子, 十五日則何不曰某月十五日某甲子, 乃書某月朔某甲子十五日某甲子也?" 左右對曰: "朔日之後, 必原朔日以書, 擧其月也。" 上曰: "若謂擧其月, 則旣稱某月, 何必書朔? 且祭法, 有朔望, 初一日則書朔, 十五日則不書望, 又何歟?" 命禮曹更考舊制以聞。


  • 【태백산사고본】 8책 19권 28장 B면【국편영인본】 1책 537면
  • 【분류】
    왕실-의식(儀式)